느긋하게 시작하는 하루
오늘 아주 느긋하게 시작하는 날이다.
다섯 시에 일어나 어머니랑 시간반정도 놀아 드리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이유는, 어제 너무 고단한 날이었지 하는 생각이 있어서이다.
어제는 들깨도 꺾어 다 털었지 고구마도 캐서 가져왔지
급하게 생각한 가을걷이 반은 한 거 같으니 마음이 느긋해졌다.
연일 오는 비로 들깨는 꺾어 놓지도 못했고 고구마는 캘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날이 제법 들어, 아니구나 들깨는 그제 꺾어 털다가 덮어 놓고 들어 왔구나, 그래서 어제 아침 일찍 가서 덮어놓은 들깨를 열어 보니 잔뜩 눅어 있어 깨 털기를 포기하고 고구마를 서둘러 캤는데 그걸 헷갈리니 이젠 나도 늙었나 보다.
여하튼 어제 아침에는 고구마 캐가지고 플라스틱 큰 박스로 두 박스를 가져왔고 들깨는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또 서둘러 가서 털었다.
오전에 다 털려고 기가 나서하다 보니 어지간한 운동한 것보다 땀은 더 쏟았다.
그렇게 가까스로 오전에 끝내고 이국장은 점심도 못 먹고 중랑 센터에 갔고 나는 어머니 점심 식사 챙겨 드리고 부탁받은 헤모힘 우체국 택배를 하고 나니 3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제는 너무 힘도 들었지만 그 시간까지 세수도 못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세수도 못하고, 그것도 고구마 캐고 깨를 털고 한 그 상태로 다녔으니 보는 사람입장에서는 꼬락서니가 왜 저 모양이야 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 같고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바쁠 때는 쉴 틈도 없다.
오후 4시 전후하여 나가는 산책도 못 나가고 샤워를 하고 한숨 자고 싶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저녁에 녹초가 되어 잠드는 건 인지 상정이다.
그렇다고 초저녁부터 잘 수도 없는 여건이고 빨리 잔다고 잠자리에 든 게 10쯤인 거 같다.
곤하게 자고 있는데 어머니가 뭐라 하시기에 일어나 보니 어머니는 깨를 키질하러 나가야 한다고 일어나려 애를 쓰고 계셨다.
살펴보니 한찬동 안 씨름을 하신 거 같다.
들깨를 털어서 가져왔다고 하니 어머니는 당신이 키질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일어나려 하시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그런데 발단은 어제 이른 아침에 깨를 털러 간다고 내가 이국장이랑 나가고 나니 혼자 주무시다가 꿈속에서 밭엘 오신 거다.
그런데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하셨는지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시는 것 같다.
밭에 갔다 왔다고 하시는데 아니라 하면 아니야 나 갔다 왔어, 그러니 일으켜줘 봐 내가 나가서 키 질을 하면 돼,라고 하시는 거다.
하여 어제 요양 보호사님 하고도 실랑이가 많았나 보다.
밭에 가야 한다고 일으켜 달라하시니 일으켜 드린다고 일으켜지는 몸이 아니니 두 분 다 힘만 드시는 거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어머니는 밤에도 깨를 키질하는 것만 생각하신 거 같다.
자려는 내게도 그러시는데 지금은 밤이니 내일 같이 가요 하고는 일단 주무세요 하고 나도 잤는데 어머니는 내가 일어나 데리고 가주기만을 기대하셨는지 새벽에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니 이건 소풍전날 잠 못 자는 소녀처럼 목소리가 들떠있는데 그냥 잘 수가 없어 한참 놀아 드렸다.
들깨는 어제 며느리가 다 까불러 놓았다고 하니 그런 거짓말하지 말라며 일으켜 달리 신다. 이젠 시간 감각도 떨어지시니 지금이 몇 시야 물으시기에 새벽 5시예요 하니 지금이 새벽이야 저녁때가 아니고 하신다.
이렇게 들떠 계실 때는 거기에 맞춰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주 행복해하는 모습의 어머니 모습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졸음을 밀어 내고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일만 하고 있으면 행복해하시던 어머니다.
그래서 슬쩍 물어보았다.
엄마는 언제가 행복했어, 하고 물으니 난 늘 행복했지
그럼 엄마 소원은 뭐야. 하고 물으니
난 소원 다 이루었어 하나만 빼고 하신다.
소원이 뭐였는데 하니 난 자식들 건강하고 손주들 건강한 게 소원이었는데 다 이루어졌고 밭에서 일하다 죽는 게 소원인데 그건 안되네 내가 지금 밭엘 갈 수가 없잖아 하시며 서운해하신다.
일하다 죽는 게 소원이었던 어머니, 사실 이 이야기를 어머니가 지금에 나보다 더 젊었을 적에도 노래를 하시듯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 몸이 이토록 늙고 병들어 움직이지를 못하시는데도 그 꿈이 이루고 싶으신지 뭔가 일하러 가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새벽에 나누는 대화는 짠하면서도 행복한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서 행복을 찾으셨던 어머니 그 속내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를 유추할 수 있고 또 많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일이란 것, 노동에 대하여 가장 존경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자식, 그것도 큰 자식이란 것에 무한 자긍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엄마 자랑은 책으로써도 몇 권은 쓸 거 같은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여하튼 오늘은 늦잠을 자고 아주 느긋하게 지내고 있다.
어머니 옆에는 지금 그 좋아하는 아들보다 더 좋아하는 며느리가 있다.
감사합니다.
2025/10/22
천운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This post has been upvoted by @italygame witness curation trail
If you like our work and want to support us, please consider to approve our witness
Come and visit Italy Community
@cjsdns, what a heartwarming glimpse into your life and your mother's! This post beautifully captures the essence of family, hard work, and the simple joys of life. It's so relatable how you detailed the exhaustion of the harvest and the mix-up with the 들깨 (sesame seeds) – we've all been there!
But what truly shines is your tender portrayal of your mother. Her unwavering spirit, her longing to work in the fields, and her deep love for her family is so moving. The conversation you shared about her happiness and her unfulfilled wish is incredibly touching.
Thank you for sharing such a personal and authentic piece of your world. It's posts like these that make Steemit special. I'm sure many others can relate to your experiences. I encourage you to keep writing about the everyday lives of your family, perhaps even sharing old photos. It would make for a great s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