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술] 와인의 기원 조지아에서 와인을 마시지 못했다.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5 years ago (edited)

어떤 여행도 후회해 본 적이 없지만 두고두고 한이 맺힌 적은 있다. 바로 코카서스 3국 중 하나, 조지아에서였다. 술을 마시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만큼 내 모든 여행에 술이 뒤따랐지만 유일하게 그러지 못했던 곳이 조지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와인의 기원이라 여겨지는 그곳에서 난 술을 한모금도 먹지 못했다. 조지아는 소비에트 연방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한 인구 400만 남짓의 작은 나라로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남동쪽은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터키에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향하는 버스를 탄 건 해가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버스 안의 대부분의 사람은 터키 사람이거나 조지아 사람이었고 여행자는 우리밖에 없었다. 새카만 밤에야 국경에 도착했고 출입국 도장을 찍기 위해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터키 쪽 출입국 사무소 건물에는 꽤 그럴듯한 면세점도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국경에는 조지아로 가는 컨테이너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조지아로 물자를 수송하는 차량일 터였다. 작고 허름한 출입국 사무실에서 도장을 찍으니 한 나라는 끝이 나고 다른 나라가 시작되었다. 크고 작은 빨간 십자가 5개가 수놓아진 난생 처음 보는 국기가 어둠 속에서 펄럭였다. 터키 트라브존에서 10시간 만에 도착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침울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오랜 이동 끝에 공복 시간은 길어지고 이미 해가 중천에 떠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있었기에 우리는 배낭을 메고 우선 눈에 보이는 곳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배가 상당히 고팠고 짐도 무거웠기에 아무 데나 들어가려 했지만, 정말 아무 곳도 없었다. 식당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예 안 보였다. 터덜터덜 한참을 걸어가서야 겨우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어렵게 들어갔지만 밥은 맛이 없었다. 날도 흐릿하고, 밥도 맛 없고, 사람들도 침울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분이 가라 앉았다. 바로 직전까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고, 활기찬 터키에서 여행을 했기에 더 비교가 됐다.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 역시 심상치 않았다. 어중 띈 시간 때문인지 활기차지 않은 도시의 골목길은 스산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내내 골목길을 뛰노는 아이들도 사람들의 수다스러운 대화도, 부산스러움도 없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길에 회색의 빛바랜 건물들은 마치 시체처럼 서 있었다. 높지 않은 시체의 숲을 찬찬히 살피며 우린 목적지를 향해갔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허름하고 음산해서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굉장히 자세하게 적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참을 헤매며 혼란스러워했다. 골목을 돌고 돌다 가까스로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우린 조금 망설였다. 모두가 죽어야 끝이 나는 공포 영화 속 집에서 풍길 것 같은 불길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침한 우리의 목적지에서는 웅장하다 못해 비장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 맞지?"

“응. 이 지도가 정확하다면”

우리는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피아노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아무도 우릴 반기지 않았다. 조금 언성을 높이고 문을 두들기며 초인종을 누르기를 여러 번 하자, 이윽고 피아노 소리가 멈추고 슥삭 거리는 느리고 둔탁한 슬리퍼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붉은 머리 할머니가 서 있었다.

“가발줘봐”

누군가 조지아의 인사말을 외우기 쉽게 표기한 한국어 그대로 우리는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표정의 변화 없이 무뚝뚝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들어오라 눈짓했다. 한껏 발랄하게 건넨 인사가 갈 곳 없이 공중으로 흩어졌고 머쓱해진 우리는 허둥지둥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크지 않았다. 부엌, 거실, 그리고 안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방 너머로 누워있는 사람이 언뜻 보였다. 거실에는 삐거덕거리는 낡은 간이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할머니는 손짓으로 우리에게 각각 침대를 지정해줬다. 그리고 할머니는 거실 한 켠에 있는 피아노에 앉아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짐을 넉넉하게 풀 공간도 없는 협소한 곳에서 밤 버스로 인해 여독이 풀리지 않았던 우리는 침대에 털썩 누워 암울하면서도 비장한 선율을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다. 죽은 도시와도 같던 트빌리시 풍경의 이유를 알게 된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내가 조지아를 방문한 때는 2009년 여름으로 짧지만 그 피해까지 작지는 않았던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이 끝난 지 딱 1년 되던 해였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날 러시아와 조지아는 남오세아티아 지역을 놓고 전쟁을 시작했다. 분리 독립을 원한 남오세티야와 조지아의 충돌로 수천명의 남오세아티야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러시아의 개입으로 이뤄진 전쟁은 5일만에 끝났고 150여명의 조지아 민간인이 희생됐으며 남오세티야 지역에 살던 조지아인들이 쫓겨나 3만 명 정도의 난민이 생겼다. 당시에, 그러한 배경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조지아로 왔던 것이다. 네리다리 게스트하우스는 문을 열어준 빨간 머리 네리 할머니와 안방에 누워있던 금발 머리 다리 할머니 두 분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딱히 간판이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니었으니 아마 여행객들이 자매인 할머니의 이름을 붙여 부른 게 아닌가 싶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낮잠을 자던 우리를 깨운 건 흐느낌 소리였다.

"으흐흐흑 으흐흐흐흑"

단조로운 음의 구슬픈 울음 소리가 집 전체를 가득 메웠다. 소리를 쫓아 가보니 다리 할머니가 전화기 앞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한참을 울던 할머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수화기에 다다다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쉴새 없이 했는데 그건 분명 신세한탄이었다. '전화로 신세한탄'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주특기였기에 25년 가까이 봐온 숙련자로서의 '감'이다. 할머니들은 영어를 하지 못해 무엇이 그녀를 슬프게 하는지 묻지 못했으나, 나는 그 서글픈 울음의 이유가 혹시 5일 전쟁과 관련된 것은 아닌지 뒤늦게 지레 짐작을 하기도 했다.

"이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나요?"

"노 잉글리쉬"

저녁이 되어 배고픈 우리의 질문에 네리 할머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고 우리는 배를 문지르며 손을 오므린 채 입에 갖다대며 무언가를 먹는 시늉을 했다. 할머니는 알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작은 빵 두덩이를 꺼내와 우리의 입에 각각 넣었다

"노노. 레스토랑"

나는 손가락으로 창문 너머를 가르키며 다른 한 손은 오므린채 입에 갖다대는 시늉을 하면서 본능적으로 한입 베어문 빵을 우물우물 씹었다. 빵은 어찌나 딱딱하고 퍽퍽하던지 씹을 때 마다 턱소리가 떡떡하고 났다. 살면서 이렇게 아무 맛도 나지 않고 질긴 빵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순간, 구소련의 낡아빠진 수용소에 수감되어 창살 사이로 간수가 던져준 빵을 먹고 있는 내가 눈 앞에 그려졌다. 그만큼 맛이 없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내 질문을 이해한 네리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일자로 한번 뻗고 ㄱ자로 한번 꺾었다. 나가서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꺾으라는 얘기였다.

"나불러봐"

우리는 어설픈 조지아어로 감사함을 표시했다. 할머니의 말대로 걸어가다 보니 시장이 나타났다. 큰길에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는 노점은 시작은 알아도 끝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컸고 시장은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터키를 떠나온 지 20시간여 만에 처음, 사람 냄새다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시장은 옥신각신 입씨름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고, 과일들의 알록달록한 색감은 경쾌했고. 식욕을 자극하는 맛깔스러운 냄새가 온 사방에 진동했다. 냄새에 이끌린 우린 공중에 소시지와 고기가 주렁주렁 매달린 한 상점에 들어가 바베큐 요리를 빵 속에 낀 음식을 먹었다. 케밥과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조지아의 전통음식이라고 했다. 우리는 간혹 만나는 빵에 환호하고, 한 입이면 끝나는 콩알만한 러시아 라면을 끓여먹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으며 조지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스 신화 속 마을이라는 카즈베기를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조지아 여행 정보도 별로 없었거니와 길을 다니다 문을 연 식당도 잘 찾을 수 없었고 술 마시는 곳은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조지아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다가 그곳이 와인의 기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외항사에서 스튜디어스로 근무하는 친구는 5년 전 쯤 조지아가 요즘 뜨는 핫한 여행지라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조지아란 내 맨체스터 모자를 달라고 쫓아오는 남자, 방공호로 이용하려는 의도로 지어진 깊고 덜컹거리는 지하철, 아무도 살 수 없는 낡고 쓸모 없는 것이 가득있는 골동품 상점. 젊은 여자들에게 추근대는 할아버지들, 길고 진한 수염을 가진 할머니들, 무엇을 먹어야할지 몰라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수북한 해바라기씨 같은 것 뿐인데 그것들이 어떻게 '핫'과 연결될 수 있을까? 아무리 뜨겁게 봐주려고 해도 내 기억 속의 그곳은 미지근한 온도까지도 올라가지 못했다. 핫한 거는 그렇다치고 나는 그곳이 와인의 기원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조지아가 와인의 기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조지아 지역에서 8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인 양조 기구와 토기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와인'이라는 말의 기원 역시 조지아어로 와인인 그비노(Ghvino)라고 한다. 이것이 이탈리아로 가서 비노, 프랑스에 가서는 뱅, 독일어 바인, 영어 와인으로 변화했다고. 아마 그 때 그 사실을 알고 찾아봤으면 분명 와인을 마실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전쟁통과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생명은 태어나고 인간의 곁에는 술이 있다. 전후라는 현실에 사회적 기반과 상업이 위축되어 있을지언정 술이 없을리는 없었을 것이다. 와인의 기원까지 가서 와인 한 잔 마시지 못했다는 사실은 꽤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조지아를 다시 가서 와인을 먹든지, 이 곳에서 조지아 와인을 먹든지 어떻게든 이 목마름을 해소해야만 했다. 코로나로 여행이 요원해진 요즘 나의 선택은 어떨 수 없이 후자 였다. 주류박람회에 조지아 와인을 수입하는 부스에 가서 와인을 한 병 샀다. 조지아의 대표 와인이라는 피로스마니였다. 심수봉의 노래 <백만송이 장미>는 라트비아 민요를 번안한건데 그 실제 모델이 조지아의 화가이자 이 와인의 이름인 피로스마니이다. 그는 평소 연모해온 프랑스 여배우 마그리타가 자신의 동네로 순회공연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팔아 백만송이 장미를 사 그녀가 투숙한 호텔 광장과 창문에 뿌렸다고 한다. 마그리타는 그의 마음을 받아들였지만 결국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떠났다는 일화가 이 와인에 있다. 달콤하고 슬픈 사랑처럼 달콤함과 긴 여운을 가지고 있다는 와인의 소개처럼 누군가 낭만적인 목적으로 그 가련한 화가의 이름을 붙였겠지만 그 스토리텔링이 내게는 유효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전 재산을 팔아 백만송이 장미를 준다면 나는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갈 것이다. 아마 여자라면 대부분 비슷한 감상을 내비칠 것이다. 와인은 나쁘지 않았다. 새콤 달콤하고 쌉쌀하면서 부드럽게 입 안을 감쌌다. 바디감은 가볍지만 마냥 팔랑팔랑거리지는 않고 적당하고 진중하게 입 안을 눌러줬다. 사실, 더 멀쩡한 정신으로 맛과 향을 음미하고 먹으려했지만 술 취한 김에 오픈해 나누어 마셔서 맛을 정확하게 잡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알지 않는가. 한국에 있는 조지아의 온갖 좋은 술을 그러모아 먹어도 조지아에서 우연찮게 먹는 와인 한잔보다 못하다는거. 아무리, 제정신에 집중해서 먹었어도 그 감흥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길 위에서 부지런히 마셔야 한다.

덧 : 옛날에 쓴 글을 재활용한 글이라 좀,,,매끄럽지 않...

Sort:  

조지아가 와인 발생지군요. 처음 알았네요.
근데 조지아 할머니들이 수염이 있어요?ㅋㅋ
아주 잼나게 읽었어요.

 5 years ago 

네, 진짜 많은 할머니들이 인중에 꽤 길고 굵은 수염이 있어서 조지아 여행 내내 그 이유에 대해 탐구하고 고찰하곤 했답니다....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ㅎㅎ

그 참.... 연세 드시고 중성화가 되어서.... ㅋㅋ

Coin Marketplace

STEEM 0.05
TRX 0.33
JST 0.079
BTC 63789.74
ETH 1693.74
USDT 1.00
SBD 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