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비건에게 불온한 여행 가이드
부산에서 만난 마틴은 부쩍 야위어 있었다. 원래 마른 편이긴 했지만 처음 만났던 크루즈에서도, 그가 사는 베를린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이 정도로 앙상하지는 않았다. 한국을 오기 전 일본을 여행하던 마틴은 일본어로만 적힌 식당에 가서 음식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 편의점에서 과자나 바나나, 젤리 같은 걸로 끼니를 부실하게 떼웠다고 했다. 그 와중에 뭘 잘 못 먹었는지 배앓이를 심하게 해 며칠 간은 숙소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화장실만 들락날락 거린 결과가 그의 몸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것도 아닌, 여행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닌 마틴이 일본 식당에서 아무 메뉴나 골라서 먹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비건이기 때문이다. 일본어 메뉴판에서 무엇이 비건 메뉴일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편의점 음식만을 안전하게 골라 먹은 것이다.
마틴과는 술을 같이 마시면 마셨지 크루즈 뷔페 외엔 밥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난 그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한국에서 만나고야 알았다. 한국에 왔으니 삼겹살을 첫 끼로 대접하고, 치맥을 먹이고, 온갖 기름지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이겠다는 나의 계획은 단숨에 사라졌다. 여행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비건 친구를 맛있고 배불리 먹이는 방법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했으니. 울산에서 카페를 하는 y의 집에 묵은 이틀은 그래도 손쉬웠다. y가 카페 메뉴로 비건 케익을 만들어 팔기도 했고 채식 카레나 반찬을 y의 어머니가 손수 해주셨기 때문. 문제는 밖에서 먹는 밥이다. 울산 바다를 보며 돗자리를 깔고 맥주를 마시다 올라오는 허기에 떡볶이 집에 갔다. 떡볶이와 김밥을 시켰고 서비스로 어묵 국물이 나왔다.
“마틴, 떡볶이 안에 어묵은 생선으로 만들었으니 안되고 떡만 먹어보는 건 어때?”
“아냐, 같이 있으니 먹을 수 없어.”
“그래, 그럼 김밥만 먹어.”
서로 주린 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던 사이 마틴은 어묵 국물을 홀짝홀짝 떠먹고 있었다. 우리는 눈으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서로 말하지 말자는 것에 동의했다. 부산부터 울산, 서울까지 같이 여행하며 우린 많은 곳을 함께 다니고 많은 끼니를 함께했다. 묵, 파전, 비빔밥, 두부 김치 같은 한국 요리부터 피자나 빵까지 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것을 찾아 먹었지만 어묵 국물 같은 함정은 도처에 숨어있었다. 김치가 그랬다. 어디서나 김치를 늘 맛있게 먹는 마틴에게 혹시 젓갈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니 먹지 말라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한번 놓치니 더 말할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지역에 따라 젓갈이 들어가지 않는 김치도 있긴 하니.'
합리화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날은 서울에 와서 처음 놀러 나간 날이었다. 마틴에게 좀 더 많은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었던 나는 모든 만남에 새로운 친구를 불렀는데 그 날은 k가 함께였다. 남산에 올라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마틴은 ‘북한은 어디 쪽이냐?’, ‘저 높은 건물은 뭐냐’ 질문을 쏟아냈고 서울 지리에 능한 k는 열심히 답을 했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남산에 올라가서도 맥주를 마시며 연애 얘기, 여행 얘기, 일 얘기 등을 나눴다. 그리고 마틴과 나는 단 둘이 홍대의 썰스데이 파티를 갔다. 술도 싸고 외국인도 많고 가볍게 춤도 출 수 있어 어렸을 때 친구들과 자주 가던 펍이다.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어깨동무를 하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다 우리는 한껏 취한 채로 밖에 나갔다. 비틀거리며 걷는데 허리 정도 오는 높은 화단에 마트에서 파는 플라스틱 김치통이 버려져 있었다. 아니 근데 거기에 김치통이 왜 있냐고 대체.
“와, 김치다.”
술에 이성이 마비된 우리는 길가에 놓인 김치통의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순수하게 달려들어 뚜껑을 열었다. 꽤 긴 시간 방방 뛰며 놀았던 터라 배가 많이 고팠다. 우리는 좀비처럼 손을 벌겋게 물들이며 우걱우걱 김치를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지 그 어느 때 먹던 김치보다 더 꿀맛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홍대 길거리에서 k-먹방을 신나게 했다. 그 짠 걸 밥도 없이. 모르긴 몰라도 그날 마틴은 멸치든 새우든 젓갈에 든 생선 열마리는 더 먹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배가 찬 우리는 김치통을 버리고 나는 집으로 마틴은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깨름직한 느낌으로 깨어난 나는 빡빡 씻지 못해 고추가루가 남아 있는 손을 보고 어제의 기억이 탁 스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어이가 없어 미친 듯 웃었다. 아무리 취해도 길에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은 적은 없는데…마틴과 함께 여서 할 수 있었던 미친 짓이었다. 나중에 마틴은 카우치 서핑 호스트인 테오에게 김치는 젓갈이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더 이상 먹지 않겠다 말했다. 하지만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