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 신기했어. 마치 자매처럼 마주보고 앉아서 자신의 모든 사생활을 속닥이는 모녀들이. 비밀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학교에서 생겼던 일 하나하나, 좋아하는 남자애 같은 걸 사소하게 공유하는 게. 난 어렸을 때부터 내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말 하는 애는 아니었고 엄마도 엄마의 속마음을 내게 쉽게 비치지 않았어. 태어나서 평생을 함께 살았지만 우린 참 친하지 않고 서로를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엄마, 내게 가장 익숙한 엄마의 모습은 늘 거실에 앉아 여행 프로그램을 보던 뒷모습이야.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저 곳을 가봤냐 물어보면 난 시큰둥하게 아니, 어 대답하기 일쑤였지. 엄마가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엄마랑 여행할 생각은 한번도 못했어. 나 스스로 여행하는 것만으로 벅찼거든. 아니면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고. 크루즈 세계일주를 하면서는 언젠가 언젠가 크루즈는 꼭 태워드려야겠다는 다짐을 처음 했었어. 그만큼 좋았거든.
그래서 이번 여행이 내겐 너무 뜻 깊었어. 엄마의 무수한 처음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모녀의 첫 여행, 엄마의 첫 크루즈, 첫 코스 요리. 첫 자유 여행. 무던하고 무심해 서로 보이지 않았던 마음이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보이더라. 내가 몰랐던 엄마의 모습들을 알게 되어 신기했어. 몰랐는데 우린 꽤 닮은 점이 많더라.
엄마, 엄마는 참 예뻤어. 빛 바랜 사진 속 흰 피부에 뽀글 뽀글 파마를 하고 환하게 웃던 엄마의 모습은 어린 내게 꼭 미스코리아 같았어. 그와 동시에 내가 엄마를 닮지 않은게 늘 원망스러웠어. 그런데 말야. 이번에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보고 친구들이 그러더라. 붕어빵이라고. 내가 봐도 우리가 닮았더라. 난 한번도 엄마랑 닮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말야.
엄마, 모녀의 여행이란 참으로 이상해.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 되기 바빠. 엄마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습관으로 딸의 행동과 옷매무새를 지적하고 정돈하려 해. 딸은 엄마의 노쇠한 육체가 해를 입을까 노심초사하며 보좌하게 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어. 길가다 작은 턱에 걸려 넘어져 발가락이 퉁퉁 붓고 바다에서 파도에 속절없이 휩쓸려 무릎에 큰 생채기를 얻은 엄마를 보며 얼마나 심장이 쿵 떨어졌는지 몰라. 엄마는 강가에 내놓은 아이더라. 루지를 타며 천진난만한 엄마의 모습을 볼 때는 엄마와 함께 에버랜드에 가서 해맑게 놀던 어린 시절의 내가 겹쳐 보였어. 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 나의 울타리이자 전부였던 엄마가 어느새 작고 한 없이 약해졌다는 걸 실감하고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더라. 이제는 내가 엄마를 위한 새로운 울타리를 쌓아야 할 때 인가봐. 모든 것이 순환인 삶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딸이자 엄마야. 이제 내가 엄마을 위한 울타리를 만들어볼게.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아. 당연히 거기 있던 존재가 당연히 거기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차오를 때야 비로소 ‘당연히’라는 단어가 지워지나봐. 엄마는 당연한 사람이 아니야. 하나밖에 없는 나의 소중한 엄마야.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다행이다라는 말은 못하겠어. 낯 간지럽기도 하고 다른 엄마의 딸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거든. 짧은 여행에서 나는 그저 하나도 닮지 않은 것 같던 우리가 생각보다 많이 닮아있다는 것, 우리가 같이 해보지 않은 것이 많아서 함께할 처음이 많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어. 매일 밤 나누던 다정한 대화로 우리는 더 많아 친해질 수 있을 거 란 것도 알았거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우린 서로 일상의 풍경이 되었지만 이 추억을 자주 얘기하고 더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도록 할게.
함께 여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엄마의 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