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노란불에 서는 사람, 노란불에 달리는 사람, 노란 잠수함에 사는 사람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5 years ago (edited)


싱크홀.jpg



신호등에 노란불이 들어오면 누군가는 서고 누군가는 달린다. 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지나간다거나 계속 간다거나가 아니라 '달린다'이다. 노란불에 설게 아니면 달려야 한다. 곧 빨간불로 바뀔 테니까. 규정에는 노란불에는 서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무조건 서다 보면 교차로 한 가운데 서거나 급정거를 해서 뒷차에 받히게 된다. 노란불은 예비 동작이고 징조이고 징표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



초보에게는 그것이 어렵다. '교통의 흐름을 따라' 이 말이 초보에게는 가장 어렵고 무서운 말이다. 교통의 흐름을 읽을 정도면 이미 초보가 아니니까. 서야 할지, 달려야 할지 딱 정해서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규정을 따랐다가 낭패를 본 초보라면 현실의 세계란 규정 밖에 존재한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된다. 젊음이 느끼는 당황함이란 그런 것이다.



이 영화, 매우 전형적이다. 차승원이 나오는 영화 아닌가. 신파도 있고 전개도 뻔하다. 결말은 뭐 안 봐도 비디오. 그런데 기분이 좋다. '코미디 재난 영화'를 쟝르로 하고 있다고 피식거리는 웃음쯤으로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오히려 억지만 남발되면 불쾌해진다. 그런데 이 영화 기분이 좋다. 뻔한 인물들의 뻔한 스토리가 지루할 만도 한데, 그렇다고 기가 막힌 CG로 마구 떡칠을 한 것도 아니다. 요즘 영화들치곤 엉성하기 이를 데 없지만, 기분이 좋다.



차승원의 연기는 여전히 똑같다. 그런데 그래서 기분이 좋다. 그가 그간 예능에서 구축한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한 듯해 더 기분이 좋다. 예능이 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허구가 아닌가. 기왕에 만드는 허구, 기분 좋은 허구는 왜 못 만들까? 그런 영화를 본 지 오랜 거 같다. 사회고발, 정의 남발이야말로 더 허구스럽고, 어설픈 사랑 이야기, CG 떡칠을 한 우주 이야기는 가슴에 와 닿질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매우 전형적인데도 기분이 좋다. 그 전형이 바로 우리들 주변의 이야기여서 그렇다.



사람들은 이웃 간에 정이 없고 사람들 사이에 날 선 눈치싸움만 남은 현대사회에 실망하고 좌절해 있다지만, 진짜 현실도 그럴까? 우리는 여전히 어르신이 앞에 서면 자리를 양보하고,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선뜻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는 안타까움부터 느끼는 인간이다. 호모 사피엔스, 악랄하기 그지없다는 자연 지배종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한 방법은 '사회화' 그것이 아니었는가.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연약한 육체와 피부로는 천적들과 싸울 수 없으니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고, 함께 해야 한다고. 그 전략으로 수없이 긴 세월을 버티며 지구를 정복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게 다 사라져 버렸다고? 그럴 리가.



방식이 달라진 거겠지. 그리고 달라져 가는 과정이겠지. 농경사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도, 산업사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도 다 그렇게 생경했을 거다. 그러나 인류는 어떤 시대가 열리든 그 안에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또 찾아냈다. '공진화', 그것이 우리의 DNA에 고정된 절대적 생존 법칙이니까.



싱크홀에 빠진 이웃들이 어떻게 서로 돕는지, 대부분의 재난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저 혼자 살겠다고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는 그런 인물이 이 영화에는 없다. 물론 현실에는 있을 거다. 그러나 이건 영화잖아. 영화는 허구니까 그런 거 없는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거잖아. 그러면 무슨 대한뉘우스 찍냐고 유치하다고 할만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럴 만하다.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할 것 같다. 너는 그렇게 안 할 건가? 너만 살자고 모두를 곤경에 빠뜨릴 인물인가, 너는?



노란불에 서야 할지, 계속 가야 할지 판단해야 할 사람은 운전자 본인뿐이다. 그리고 교통의 흐름이라는 건 공동체의 흐름이고 우리들의 흐름이다. 그것을 읽는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 부르고 인간은 대대로 어른에게서 지혜를 배워왔다. 그러나 어른이 사라진 이 시대에는 노란불에 서야 할지, 달려야 할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절망만 하고 있으면 뻥 뚫려 싱크홀이 생겨버린 인간의 가슴은 그대로 폭주를 하거나 두려움에 멈춰서거나 해서 모두의 삶을 마비시켜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뻥 뚫려버린 가슴으로 진흙탕이 밀려들어 와 숨을 못 쉬게 막아도, 그 위로 마구 절망과 좌절의 폭우가 쏟아져 내려도, 우리는 우리들만의 노란 잠수함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비현실적이게도 그런 순간에는 꼭 차승원이 등장하는 것이다. 슈퍼맨처럼.



우리는 그런 영웅을 기다리기도 하고 노란 잠수함을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멀리 있겠는가? 마주 잡은 손이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인간이 아닌가.



내가 태어난 마을에서
바다를 항해했던 사람이 살았어요
그는 우리들에게
'잠수함들의 나라'에서의
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초록빛 바다를 찾을 때까지,
태양을 향해서 출항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파도 아래,
우리들의 노란 잠수함 안에서 살았죠.

노란 잠수함
노란 잠수함

그리고 우리 친구들 모두가 승선해요.
다음 칸엔 더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죠.

노란 잠수함
노란 잠수함

우린 모두
노란 잠수함 안에서 살아요.

_ Yellow Submarine, 비틀즈



세상이 아무리, 진정성 있는 연대와 꿍꿍이가 없는 '함께' 따위는 없다고 우리를 속여도, 그 속에서 노란 잠수함을 찾아내는 건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노란 잠수함. 밴드가 연주를 하는 노란 잠수함, 그곳에 나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아이고' 하더라도 가슴을 펴고 걷는 거다.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17. 싱크홀


Human Library

Sort:  

안녕하세요 mmerlin님

랜덤 보팅 당첨 되셨어요!!

보팅하고 갈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Turtle-lv1.gif

 5 years ago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꼭 봐야죠^^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77
BTC 65642.15
ETH 1719.47
USDT 1.00
SBD 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