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다 #5-4. [싱가포르] 더 풀러턴 베이 VS 마리나 베이 샌즈. 극과 극 체험.
싱가포르. 한국에서 6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그곳에 다시 가게 된 것은,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 10여 년도 더 지난 후였다.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은 학비와 용돈을 지원해주셨던 친척 분 덕분에 대학 생활 중 유일하게 돈 걱정이 없었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빈부격차를 여실히 느꼈던 시기이기도 했다. 명품 백은 기본이고, 심지어 주말이나 방학에 가까운 휴양지나 호주로 여행을 가자던 친구들. 싱가포르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 대부분이 주변 국가의 부유층이었기에 함께 공부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자주 함께 어울려 다니기에는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웠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싱가포르만큼은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이후에 여행을 갔으면 했다.
2박 3일의 이번 싱가포르 여행은 관광보다는 그리웠던 음식에 대한 맛집 투어에 가까웠지만, 하루 종일 먹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예전에 가보지 못한 곳, 또는 그간 새로 생긴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의 경우 그 좁은 싱가포르에서 숙소를 옮겨 다니는 것도 우습지만, 머물고 싶은 곳이 두 군데나 있어 각 호텔에서 1박씩 머물기로 했다. 한 곳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였고, 다른 한 곳은, 비 오던 날 도서관에서 바라보며 그 불빛에 반했던, 그리고 그 당시에는 내가 저곳에 머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더 풀러턴 호텔 싱가포르(The Fullerton Hotel Singapore)였다.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도착하기 한 시간 전쯤, 남편 휴대폰에 있던 구글맵을 구경하던 중 오늘의 숙소가 더 풀러턴 호텔 싱가포르가 아닌 더 풀러턴 베이 호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예약은 내가 직접 했지만, 뭔가 이유가 생겨 남편이 이전 예약을 취소하고 새롭게 예약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이름이 비슷한 다른 호텔을 예약해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그 호텔 2층에 있는 야외 수영장에서 싱가포르 강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수영할 것을 상상하고 있던 터라 기분이 상해 결국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삐져있었다. 그리고 공항에 내려서 와이파이에 연결되자마자 더 풀러턴 베이 호텔을 검색했는데, 원래 가려던 호텔보다 더 좋은 곳이어서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돈 관리를 따로 했던 우리는 항상 여행비도 반반씩 지불했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남편이 내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The Fullerton Bay Hotel
이른 아침부터 싱가포르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에 짐을 맡긴 후 여행을 하기 위해 일단 호텔부터 들렀다. 짐을 든 채 호텔 정문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더니, 우리가 숙박객임을 확인 한 직원분께서 안으로 짐을 옮겨 주시며 앉아 있을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편하게 소파에 앉아 있자 서류와 웰컴 드링크를 가지고 오신 다른 직원분께서 체크인을 진행해 주셨고, 이른 시간이라 객실이 남아있지 않다며 일단 짐만 맡긴 후 2시 이후에 와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셨다. 더 풀러턴 싱가폴 호텔과 이곳은 같은 계열이기 때문에 두 호텔을 왕복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며, 그곳의 수영장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덕분에 비행기 안에서 짜증을 부린 것이 더욱 미안해졌다.
3월 초의 싱가포르는 이미 더웠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차이나타운을 구경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대낮부터 호텔에 돌아왔다.
객실을 배정받자마자 어지럽혀서 좀 어수선해 보이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객실이었다. 한 번 에어컨 바람을 쐬고 나니 도저히 더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진 우리는 나머지 시간을 호텔 수영장에서 보낸 후, 시원한 밤에 머라이언 공원에서 마리나 베이 샌즈의 레이저 쇼를 구경하고, 싱가포르 슬링을 마시러 가기로 결정하고 옥상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이곳 호텔은 객실에서 로비로 가는 엘리베이터와 객실에서 수영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분리되어 있어, 수영장을 드나들면서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또한 수영장 이용 후에는 타월 가운을 입은 채 객실로 돌아가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이 서비스를 굳이 적은 이유는 마리나 베이 샌즈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을지도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투숙객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수영장도 한적했다. 수영하며 싱가포르 경치를 감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칵테일을 마시며 쉴 수 있었던,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저녁이 되자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옥상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수영장 끝에는 술집이 있었고, 그곳은 마리나 베이 샌즈의 레이저 쇼를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결국 우리도 다른 계획은 다 취소하고 그곳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샴페인과 두 가지 메뉴를 주문했는데, 싱가포르 자체의 주세가 비싼 것을 감안했을 때 나쁜 가격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편하게 레이저 쇼를 감상할 수 있을 줄이야.
앉아서 쇼를 감상하기에는 유리로 된 낮은 벽이 신경 쓰이기에 쇼가 시작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일어선다.
다음날 조식도 환상적이었다. 고소한 커피와 생과일주스에 반짝반짝한 은식기. 음식 하나하나 모두 맛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트러플 오일과 트러플을 사용한 포치드 에그였다. 이제껏 먹어본 중 가장 호사스럽고 맛있는 포치드 에그였달까.
Marina Bay Sands
조식을 먹고 싱가포르 관광을 한 후, 이곳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마리나 베이 샌즈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피니티 풀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정문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 마리나 베이 샌즈는 그 어느 곳에도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다. 일단 건물이 3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동마다 체크인 카운터가 따로 있는데, 호텔 바우처에 내가 어느 동에 배치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일단 어쩔 수 없이 중간 동으로 가서 한참 줄을 서있었는데, 우리 차례가 되니 굉장히 쌀쌀맞은 "Go there"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 상황이 너무 짜증 났던 이유는 호텔의 높이가 높은 만큼 투숙객이 정말 많은데, 그에 비해 직원의 수가 턱없이 모자랐고, 투숙객이 쉴 수 있는 공간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테리어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호텔에서 이렇게 줄을 서서 체크아웃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로비 층을 모두 음식점과 가게만 있을 뿐, 소파, 아니 나무 의자 하나 두지 않아서 기다리는 이 모두가 그냥 서있어야만 했다. 체크인, 체크아웃 줄이 이 정도이니 짐을 옮겨준다거나 하는 그런 서비스는 당연히 없었다.
호텔을 예약할 때 조식을 포함할까 고민했는데, 그때 유독 눈에 띄던 몇 개의 댓글이 있었다. 조식 뷔페 또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 서서 기다리느라 힘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이곳을 예약할 때는 조식을 제외했는데, 정말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들어간 방은 너무 심한 방향제 냄새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짐만 두고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밖으로 피신했다.
MBS에 체크인을 했지만, 동시에 풀러턴 베이에서 체크아웃한 날이었기에 밤 12시까지는 그곳의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어 오후에는 꿈에 그리던 더 풀러턴 호텔 싱가포르로 향했다. 이곳 역시 사람이 별로 없어 휴식을 취하기 좋았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MBS로 돌아왔고, 그 유명하다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했던 것은 사람들이 타월 가운이 아닌 호텔 룸에 있던 잠옷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거이었다. 수영장에서 타월 가운도 빌려주는데 대체 저걸 왜 입고 다닐까 싶었는데, 세상에! 호텔 측에서는 사람들이 타월 가운을 훔쳐쳐갈 것이라 예상해서 수영장 밖으로 나가기 전 반납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수영장 면적이 넓어도 호텔 높이가 높은 만큼 수영장엔 사람이 가득했다. 이 호텔에 숙박하는 이유가 모두 이 수영장 때문이라 당연한 듯도 하지만. 하여튼 밤하늘을 감상하며 휴식할 분위기는 절대 아니라 결국 얼마 머무르지 못한 채 객실로 내려왔다. 마리나 베이 샌즈. 세계에서 제일 높은 인피니티 풀이 아닌, 세계에서 제일 높은 목욕탕을 보고 온 기분이랄까.
그래도 딱 하나 좋았던 점은 가든스 베이에서 해가 뜨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체크아웃은 앞에 적었듯이 줄이 길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그보다 더 별로였던 것은 컨시어지에 짐을 보관하는 것이었는데, 보통은 체크아웃 장소 옆에 컨시어지 팀이 있는 반면, 이곳의 컨시어지 팀은 건물 밖에 있었다. 결국 한참을 걸어나가서 짐을 맡겼지만, 불친절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 호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친절함이다. 아무래도 호텔 크기에 비해 직원 수가 너무 모자라서 너무 많은 사람을 상대하느라 지친 듯.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피니티 풀에서의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이 호텔에 머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한 장의 사진이 50만 원의 가치가 있을지는 고민해 볼 일이다.
이전 글 : [싱가포르] 나머지 기억들
다음 글 : [말레이시아] 낯선 사람의 호의는 거절하세요. 조호르바루.
맛집 리스트
[싱가포르] 2,400원에 맛보는 기막힌 락사. SUNGEI ROAD LAKSA
그 외 여행기
[뉴질랜드] 뉴질랜드 여행 일정, 비용 및 후기
[UAE] UAE 여행기를 시작하며
[오만] 오만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지 정보
● Collyer Quay, The Fullerton Bay Hotel, Singapore
● Bayfront Avenue, Marina Bay Sands, Singapore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도 MBS 호텔은 카지노와 식당만 갔던듯..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완전 옳으신 선택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간 MBS에 묵는 날이 오리라 희망을 가져봅니다~
야경 사진이 참 멋집니다~^^
엉엉 미스티님.. MBS가 정말 이제까지 묵어본 곳 중 최악이었어요.
멋지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 이용객들 에겐 요런 불편함도 있었군요 ^^ 그래도 한번은 가보고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욕탕에서 셀카도 찍어보고 음파음파도 하고 말이죠 ㅎㅎ
네. ㅎㅎㅎ 날씨가 안 좋아서 투숙객이 적은 시기에 가면 좀 낫다고는 하더라고요. 저는 3월 초에 갔는데........ -. -;; 그때는 꼭 피하시길.
호텔에 묵기보다 수영장에 사진 찍으러 간다고들 하더라고요 ㅎㅎㅎㅎ 그래서 수영장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던 것 같아요.
음... 아녜요. 수영장은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어서, 그래서 호텔이 저따위로 서비스를 하고도 먹고 사는거였어요.
ㅋㅋㅋㅋ 그러고보니 그 말씀이 50만원짜리 day pass 였을 수도 있겠군요.
Hi @realsunny!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3.343 which ranks you at #7804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not changed in the last three days.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187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93.
Evaluation of your UA score: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
호텔은 불친절한데 SNS하는 사람들은 꼭 갈꺼같은데요?ㅎㅎㅎㅎ
전 스팀잇만해서 ㅋㅋ 안갈꺼같아요 나중에 써니님이 추천해주세요.
ㅋㅋ 저는 풀러턴 베이 적극 추천드립니다.
드디어 제가 가본 여행지가 나왔네요!!! 싱가폴!!!ㅋㅋㅋ
방가방가^^
기억에 남는건 주랑세공원??인가?? 거기랑 나이트사파리가 지금막 기억나네요ㅎㅎ
오호 +_ + 전 그 두군데 모두 너.......무 오래전에 다녀와서 그냥 두곳 다 참 넓고 동물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는 기억만 남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