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의 여행 - 샹보르 성

in #tripsteem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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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성




꼬마는 아주 어릴 때부터 뾰쪽한 첨탑으로 이루어진 성을 동경했다. 그 꼬마가 언제부터 성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마 11살 때였을 것이다. 그 때 꼬마는 겨울 방학때 만들기 숙제로 멋진 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 난 푸른 지붕이 있는 성을 만들고 싶어.”

그림책을 펼친 꼬마는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내가 이런 성을 만들 수 있을까?”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꼬마의 엄마는 너무 어려우니까 좀 더 쉬운 걸 시도해 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꼬마는 정말 성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반드시 누구든지 한 번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큼 정교한 성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고민을 해봐야 별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꼬마는 그냥 직관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꼬마는 문방구에서 골판지와 색종이, 딱풀을 샀다. 안방 한 가운데에 상을 펴고 그 위에 딱딱한 나무판을 놓았다. 흰 골판지를 말아 원형탑을 세우고 그 탑 둘레에 둥근 고리로 만든 발코니를 붙였다. 원형탑 8개가 나무판 위에 세워지자 꼬마의 머릿속에만 있던 성이 뼈대를 갖추기 시작했다. 신이 난 꼬마는 파란 색종이로 고깔 모양의 지붕도 만들어 탑의 꼭대기에 살짝 씌웠다. 마지막으로 성냥개비에서 빨간색 황을 제거하고 깃발을 만들어 붙였다. 드디어 완성이었다! 고작 종이와 성냥개비로 만든 성이었지만 스스로 몰입해서 완성한 꼬마의 첫 작품이었다.





photo by @michellbarry





성을 거닐다



생 폴 역 근처에 있는 작은 아파트. 며칠동안 좁은 부엌과 아늑한 침대에 잘 적응한 우리는 여행 속의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루아르 강을 따라 흩어져 있는 수 십개의 고성 중에서 가장 유명한 샹보르성이었다.





photo by @michellbarry




우리는 햇살이 쏟아지는 샹보르 성 앞에 서있었다. 푸른 하늘 밑에 자리잡은 흰 성채를 바라보는데 어디서인가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라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빨간 망토를 휘날리는 백마의 기사가 나타났다. 코스튬의 퀄리티가 높아서 진짜 중세시대에서 튀어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photo by @levoyant




쉬농소 성이 우아하다면 샹보르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프랑수와 1세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성답게 메인 파사드 길이가 156미터에 이르고, 426개의 방, 282개의 벽난로, 무려 77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공간을 맛보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성 안의 모든 공간에 다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계단을 오르며 돌을 만지고 불을 때웠던 흔적이 있는 벽난로의 검댕을 살피고 벽에 걸려 있는 사냥개의 그림과 박제된 전리품을 눈에 담았다.




상상속의 살라맨더



성 안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게 되는 것은 도마뱀이었다. 문과 천장, 벽, 그림, 테피스트리 곳곳에 불을 뿜고 있는 도마뱀이 쏟아져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동물은 좋은 불은 살리고 나쁜 불은 삼키는 상상 속의 동물 살라맨더였다. 이 동물은 샹보르성 건축을 명령한 프랑수와 1세를 상징했다.



photo by @levoyant





1515년 21세의 혈기 왕성한 나이로 왕위에 오른 프랑수와 1세는 마리냐노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이탈리아 건축에 매료되어 르네상스 양식으로 샹보르 성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해서 이탈리아에서 데려온 건축가와 장인을 포함해서1,800여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이다. 1519년에 시작해서 중단과 증축을 거듭하며 1658년에 완공되었으나 정작 프랑수와 1세가 사냥을 위해 머무른 날은 70여일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중나선 계단



성 안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했다고 추정되는 계단이 숨어 있었다. 이 두 개의 계단은 대칭구조로 되어 있는데 동시에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이 건너편으로 서로의 실로엣을 볼 수 있지만 마주칠 수는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나는 계단을 오르면서 서로의 모습만 쫓다가 제일 위층에서 만나서 밀회를 나누었을 연인을 상상해보았다.





photo by @levoyant




성 안에서 시간도, 세월도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긴 복도를 걸으며 창이 너무 커서 무척 추웠을 500년 전의 겨울을 생각했다. 그 시절에도 창을 투과한 빛이 예뻤을까? 문득 안으로 열린 창을 바라보았다. 한참 보고 있자니 기억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공간이 열렸다. 그곳은 망각의 강을 떠돌고 있던 종이성이었다. 나는 다시 꼬마가 되었고, 미래에 도착해서 기분이 좋았다.

성을 완성한 꼬마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진짜 성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을 해보았다. 나는 그 꼬마에게 네가 만든 종이성의 모델인, 푸른 지붕의 노인슈반슈타인성을 이미 2012년 가을에 다녀왔으며, 2015년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무렵엔 프랑스에 있는 샹보르성에 가보라고 속삭였다.


“작은 꼬마야, 졸지마. 계속 상상하렴.”




photo by @levoyant







여행 속의 여행 - 샹보르 성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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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글을 읽고 잠들었는데 어릴적 예쁜 공주님이 사는 성을 동경했던 저의 어린시절로 돌아갈수 있었습니다 ^-^

반님도 어린시절 성을 동경했군요! 꼬꼬마 시절의 반님에게 안부전하고 싶어요 ^^

글도 사진도 최고예요~~

항상 감사합니다:)

저만의 성을 만들고 말겠어요! :D

꼭 만드실 거예요^^

안녕하세요. @trips.teem입니다. 정말 여행기글이 탄탄하십니다.~^^ 정성이 담긴글 너무 감사합니다.!

트립스팀 댓글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와 흡입력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머릿속에 꼬마의 상상이 아른거리네요.
by효밥

꼬마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이 너무 멋져요
살라만다가 요렇게 생겼군요
게임에서만 봐서 ㅎ ㅎ

게임에도 살라맨더가 나오는군요:)

전 살라만다를 게임에서 배웠는데 히히
불의 하급 정령 살라만다 ㅎㅎ
원조 살라만다 그림을 보고 좀 놀랬어요 ㅎㅎ 비슷하면서도 안비슷해서

꼬마의 첫작품이었다. 하고 아래 사진이 꼬마가 만든건줄 알고 깜놀했습니다.ㅎㅎ

ㅎㅎ 그럴리가요!

사진도글도좋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정성이 듬뿍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냥 넘 좋아요. 제가 어린 소녀가 된 기분이에요:)

전 라나님 안의 어린 소녀가 가끔 느껴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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