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3일 뒤면 인도이다. 한 달 전만해도 인도에 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짧지만 무거운 해외 여행이 6월 앞뒤로 계획되어 있었기에 더더욱이 중간에 어딜 나가겠다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2020년 카페 두레 10주년을 맞아 라다크를 방문하려 했지만 코로나로 좌절되고선 라다크행은 막연함에 갇혀버렸다. 언젠가 가긴 가겠지 하는 체념도 섞인 채. 춘자와 라다크의 개정판 회의를 하며 우리는 돌덩이 처럼 딱딱하게 굳은 우리의 뇌를 한참이나 탓했다. 개정판에 새로 실을 글이나 부록 아이디어는 진부하다 못해 구려 터졌다.

"라다크에 가자. 그러면 특별한 얘기가 생겨날거야."

뾰족한 수가 없자,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갑자기 계획에도 없는 라다크행을 결정했다. 라다크에 간다는 말을 입에 담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춘자와 나는 회의를 하고, 회의 뒤풀이로 와인을 마시면서 연신 울렁거림을 호소했다. 그리고 한달이 되어서 라다크에 갈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여전히 울렁거리고 도통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히말라야 고원의 사막에서 '카페 라다크'는 문 닫은지 10년 만에 다시 레에서 카페 두레를 재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서 나온 글은 <한 달쯤, 라다크> 재출간의 부록으로 텀블벅 펀딩 후원자에게만 제공된다. 하지만 카페 두레의 메뉴를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라다크에서 접할 수 없는 한국의 디저크와 커피를 메뉴로 구성하기로 했다. 팥빙수와 호떡, 커피 믹스, 달고나 등등. 오늘은 눈여겨 봤던 빙수기를 당근 마켓으로 구매했고 필요한 재료를 쿠팡에 가득 담아 두었다. 물건을 하나하나 사들이다 보니 카페 두레를 준비하던 2010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우리는 '카페 두레'가 어떠한 장소에 자리잡고, 어떤 형태가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순우리말로 이름을 짓겠다며 몇일 동안 끙끙거리며 아이디어를 냈지만 통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손에 쥔 '카페 두레' 이름과 메뉴에 오를 무언가를 만들 짐 뿐이었다. 메뉴 자체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인도에서 구하기 힘든 것 위주로 재료를 사들였다. 제빵기와 커피 머신, 머핀틀과 케익틀을 비롯한 각종 베이킹 도구. 그러고도 모자라 델리에서 미니 오븐을 사고 각종 컵과 식기 등을 샀다. 그 무지막지한 짐은 결국 델리에서 레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에서 10만원도 넘는 추가 차지를 낳기 까지 했다. 상식적으로 카페를 오픈하려는 사람들의 수순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보통은 업종을 정하고 그에 맞는 지역을 정하고, 살가 매물을 보고, 공간을 확정한 뒤에 인테리어를 하고, 필요한 기기를 갖추고 메뉴를 구성하고 가게를 오픈한다. 우리는 처음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그 때와 같다. 필요한 기기와 재료를 대강 갖추고 무작정 비행기부터 탄다. 장소는 없다. 그때는 그래도 비지니스 비자를 받았고, 렌트할 돈도 두둑하게 챙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름 내내 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고작 하루 이틀, 팝업 스토어를 열것 이다. 운이 좋게 빈 가게를 빌릴 수 있으면 좋고 그게 안되면 야채 파는 할머니들 옆에 노상을 깔 수도 있을 것이다. 팥빙수 얼음을 공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즐거운 이야깃 거리다. 그래서 우리는 가뿐한 마음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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