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93. 모두가 결국은 만난다 그러므로

in #stimcity6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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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만남



멀린 : 자리를 좀 옮길까요? 어떠세요? 시간은 괜찮으세요?



아이작 : 그럴까요? 좀 시끄럽죠. 아, 시간은 충분합니다. 저야 뭐 출장을 마쳤으니 돌아가서 쉬면 되니까요. 로마에 하루 이틀 더 있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멀린 : 그렇군요. 잘됐네요.



멀린과 아이작은 시끌벅적한 각종 커뮤니티들의 대화를 뒤로하고 조용한 공간을 찾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멀린은 어디서 많이 맡아 본 향인데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며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멀린과 아이작이 걷고 있는 공항 복도 정면에 두 사람의 동양인이 자신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게스트하우스 '春子'의 주인장과 그의 아내 나나상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이 의외의 우연한(?) 만남에 놀라 얼어붙은 듯 서 있었습니다.



주인장 : 마법사님.. 이렇게 또 뵙게 되는군요.



멀린 : 아, 네.. 두 분이셨군요. 어디서 많이 맡아 본 향이 난다 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여기를.. 아, 휴가 오신 건가요?



주인장 : 네, 뭐 겸사겸사.. 아닙니다. 마법사님을 쫓아 왔죠. 아니 운명을..



멀린 : 네? 저를 쫓아 왔다구요?



주인장은 반가운 듯 멀린의 두 손을 맞잡으며 멀린을 쫓아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옆에 선 나나상은 얼마나 반가운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발짝 멀린의 뒤에 서 있는 아이작은 얼어붙은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주인장 : 실은 마법사님이 떠나신 뒤로, 저희도 계속 드라마로 [스팀시티]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위즈덤 레이스>가 시작된 뒤로는 더이상 업데이트가 안되는 거예요. 궁금해 죽겠는데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날 글쓰기 유랑단을 시작한다는 예고편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저길 꼭 따라가야겠다고, 합류할 수는 없더라도 여정의 뒤를 쫓기라도 해야겠다고 하는 바람에, 뭐 그러자고 하고 무작정 떠나 왔죠. 그런데 대체 어디 계신지 찾을 수가 있어야죠. 유럽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요. 혹시나 마주칠까 하고 말이죠. 결국 안 만나지길래, 로마에서 줄곧 기다렸죠. 로마가 마지막 행선지라고 해서. 그런데 마지막 날, 여기서 보네요. 저희도 오늘 교토로 돌아가는 날이거든요.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나상 : 마법사님 잘 다녀오신 거죠? 어디 다치신 데는 없고요?



멀린 : 아, 물론입니다. 아주 좋은 시간이었고 훌륭한 여행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줄 알았으면 함께 다녀도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연락할 길이 없으니..



나나상 : 네.. 마법사님 많이 섭섭하고 서운해요. 물론 저희가 합류할 자격은 없지만. 팬으로서 멀리서라도 지켜보고 싶었는데..



멀린 : 아, 내 정신 좀 봐. 여기 이분은 제 친구 아이작입니다. 인사하셔요. 여기는 교토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시는 주인 내외 이시구요.



아이작 : 반갑습니다.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아이작은 창백해진 얼굴로 손을 내밀고 주인장은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경직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나상. 나나상과 목례를 하는 아이작은 이내 눈물을 터뜨리기라도 할 듯 잔뜩 격앙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작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나상의 눈빛 역시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매우 당황스럽고 또한 착잡하며 묘한 흥분이 교차하는 매우 이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멀린 : 아, 이럴 게 아니라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잔하시죠.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주인장 : 그러실까요? 그래 주시면 저희는 감사하죠. 못 뵙고 가는 줄 알았는데..



아이작 : 아, 저도 끼어도 되겠습니까? 실례가 아니라면..



주인장 : 실례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법사님의 친구라면 저희의 친구이기도 하죠. 이렇게 뵌 것도 인연인데, 저희랑 커피 한잔하고 가시죠.



주인장은 아이작의 굳은 팔을 잡아끌며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습니다. 다행히 아직 오픈되지 않은 카운터 주변이라 손님들이 별로 없는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주인장 부부와 마법사들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며 모두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보였습니다. 특히 멀린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주인장 내외는 어떻게 바로 이 시점에 로마 공항에 나타난 걸까요? 그것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두 사람의 계획이었을까요? 그리고 아이작. 그에게는 나나상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그녀가 에이전트 세븐이라는 사실을 아이작은 이미 눈치채고 있는 걸까요? 그러면 나나상은 그가 25세기의 전 연인 아이작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요? 그걸 알고 일부러 여기를 찾아온 걸까요? 옛 연인을 만나러? 멀린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만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개입해야 할지, 아니 아무 개입도 없이 그냥 운명에 상황을 맡겨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아이작에게 말한 것처럼 이번 생은 그냥 지나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때 무거운 침묵을 깬 건 주인장이었습니다.



주인장 : 마법사님. 만나야 할 사람들은 다 만나게 되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멀린 : 네. 물론이죠. 그래서 우리도 또 이렇게 만난 것 아니겠습니까?



주인장 : 저는 이대로 마법사님을 못 만나고 돌아가게 될까 봐 많이 노삼초사하고 그랬습니다만, 이 사람은 결국 유럽 어디선가 반드시 만나게 될 거라고 강력하게 확신하더군요. 그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나나상 : 그건 확신이라기보다 열망이죠. 간절히 원하면 자석에 이끌리듯 서로를 끌어당기게 되어 있으니까요. 세월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공간을 뛰어넘어서라도.. 서로를 간절히 원한다면 말이에요.



멀린 : 그렇죠. 두 분의 열망이 비행기를 연착시킨 것처럼 말이죠. 실은 좀 전에 제 항공편이 연착되었다는 방송을 듣고 자리를 옮기는 중이었거든요. 장기전에 돌입하려고 말이죠.



주인장 : 하하 그랬군요. 비행기 연착이 우리를 만나게 한 거네요. 정말 나나상의 열망은 대단합니다. 사생팬도 이런 사생팬이 없을 거예요. 드라마가 중단될 수도 있고 끝날 수도 있는데, 그 예고편 하나에 여기 유럽까지 달려오자고 하더니, 결국은..



결국은.. 주인장은 '결국은'이라고 말하면서 아이작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바라보는 것인지 노려보는 것인지, 알듯 말듯 한 눈빛은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아이작을 향해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이작은 목이 타는지 한숨에 들이켜 버린 에스프레소 잔으로 연신 헛입질을 하더니, 생수병을 들어 유리잔에 물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물이 넘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말이죠.



만나야 할 때, 떠나야 할 때



나나상 : 앗! 물이 넘쳐요.



나나상은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아이작의 생수병을 맞잡으며 물 붓기를 제지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이 닿았습니다. 여러 세기 만에..



넘쳐나는 물은 아이작의 마음을 담은 듯합니다. 아이작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수 세기를 꾹꾹 눌러온 마음이 일시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할 요원이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은 요원의 평정심을 비웃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과 흔들리는 손은 예상치 못한 운명을 만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아이작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원은 지금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이작 : 아, 이런.. 제가 정신이..



주인장 : 아이고 이거 다 젖었네. 제가 가서 티슈를 좀 가져올게요.



멀린 : 저두요. 같이 가시죠.



주인장과 멀린은 황급히 일어나 티슈를 가지러 카운터로 갔습니다. 그런데 카운터에는 티슈가 다 떨어졌는지 티슈통이 비어 있었고 점원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인장은 옆 점포에 가서 티슈를 가져오자며 멀린을 카페 밖으로 이끌었습니다.



주인장 : 마법사님.



멀린 : 네. 티슈 말고 수건이라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요?



주인장 : 저랑 담배 한 대 피우시죠.



멀린 : 담배요? 아, 네.. 그럴까요?



주인장은 멀린을 이끌고 공항 대합실을 빠져나와 흡연구역으로 향했습니다. 멀린은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주인장이 알고 있구나. 그는 나나상에게 전 연인과 함께할 시간을 주고 싶구나 하는 사실을 말이죠.



멀린 : 아시는군요.



주인장 : 마법사님. 여행은 어떠셨어요?



멀린 : 괜찮으시겠어요?



주인장 : 여행이 다 그렇죠. 우리의 삶도 여행이 아니겠습니까? 나나상 역시 자신의 여행을 선택할 자격이 있는 것이구요. 영원한 것은 없는 거잖아요.



주인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담배를 한 대 꺼내 들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장 : '春子'가 떠나면서 제게 알려 주었어요. 로마로 가라고 말이죠. 나나상이 가자고 할 거라고. 그냥 아무 말 없이 따라가 주라고 하더군요. 마법사님이 떠나시고 나나상은 한동안 우울해했어요. 25세기의 그 기억이 계속 더 분명해지는 것 같더군요. 저는 더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뭐 느낄 수 있죠. 나나상의 열정과 열망을 잘 아니까요. 같이 살아 온 세월이 있으니까. 저 사람인가 보죠? 25세기의 그가..



멀린 : 음.. '春子'가 말을 해 주었군요.



주인장 : 네. 떠날 거면 혼자 가지 왜 그런 말을.. 하지만 뭐 저도 용기를 내야지요. 거부한다고 사라질 운명도 아니고. 하지만 좀 가혹한 것 같아요. '春子'도 떠났는데 나나상 마저.. 아니 그런 일은 없는 거겠죠? 마법사님 그렇다고 말해 주세요.



멀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자신들의 몫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선택과 선택 사이에서 운명을 마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선택 역시 소중하고 신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남에게는 운명이 되는 일 일 테니까요.



주인장 : 런던에서 나나상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잃어버렸다며 연신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있었어요. 그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이번 생의 어딘가에서 그들이 자신을 찾고 있을 거라고 말이죠. 저는 그녀의 생에 잃어버린 그들을 찾는 일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죠.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흘렀어요. 나나상은 세계 여기저기에서 흩어진 소울메이트들과 만나고 재회했죠. 그만 빼놓고 말이죠. 그런데 그에 대해선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어요. 본인도 잘 기억하지 못할뿐더러 아마 마음으로는 포기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마법사님이 방문하시고서는 그에 대한 기억이 살아나는 것 같더군요.



멀린 : 제가 원인이었군요.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주인장 : 마법사님 잘못은 아니죠. 때가 이르렀을 뿐이에요. 저는 무엇이 되었든 나나상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나나상에게 그렇게 상실의 시간이 열리지 않았다면, 저는 나나상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멀린 : 주인장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으십니까?



주인장 : 그러지 않았을 거면 로마에 오지 않았겠죠. 나나상 혼자 가겠다 하더라도.. '春子'가 제게 그렇게 얘기했어요. '지금, 이 순간 언제든지 너도 나처럼 집이 될 수 있다고, 바다가, 바위가, 나무가 될 수도 있다고, 그러나 너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고, 않고 있는 거라고. 너는 인간으로 존재하기를 갈망해서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거라고' 맞아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나나상의 파트너로 살았어요. 나나상 역시 저에게 최선을 다해 주었죠. 우리는 언제나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어요. 그런 관계를 또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여한이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제 삶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는 거예요. 일종의 죽음일 수도 있고 새로운 탄생일 수도 있죠. 그건 저와 나나상 모두에게 동시적으로 주어진 거구요. 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어요.



멀린 : 아..



주인장은 길게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시더니 하늘 높이 연기를 놓아주었습니다. 청명한 로마의 하늘은 주인장의 한숨을 받아 안고는 멀리멀리 대기 속으로 그것을 흩뿌려 주었습니다. 이내 주인장의 한숨은 사라지고 다시 청명한 하늘이 드러났습니다. 새로운 하늘이..



그리고 두 사람이 돌아온 자리에 두 사람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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