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94. 모두가 결국은 만나지 못해도

in #stimcity6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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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택, 다른 우주



멀린 : 자리를 좀 옮길까요? 어떠세요? 시간은 괜찮으세요?



아이작 : 네. 저야 뭐 출장을 마쳤으니 돌아가서 쉬면 되니까요. 로마에 하루 이틀 더 있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좀 시끄럽긴 하지만 다른 곳도 비슷할 텐데. 음.. 그러지 말고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시죠. 제가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거든요.



멀린 : 아, 그럴까요? 그럼 먼저 나가 계시겠어요? 저는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아이작은 담배나 한 대 피우자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멀린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그때 흡연 구역에서는 초로의 동양인 남성 한 명이 카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동양인 남성은 흡연 구역으로 걸어오고 있는 아이작의 뒤편 카페에서, 혼자 서성이고 있는 다른 동양인 여성 한 명에게 손을 흔들며 거기 있으라고 손짓을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스쳐 서로의 길을 걸었습니다.

운명이 뒤바뀌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매우 사소하고 단순한 선택에 의해 엇갈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목격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하고 시간을 따라 선택을 이어갑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인지된 선택의 국면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이 그냥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흐르기 전에, 그 흐름에 올라타기 전에,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그런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주저하는 일은 그가 얼마나 의지 없이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엇갈린 걸음, 아이작과 멀린이 떠난 자리에는 초로의 동양인 부부 한 쌍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앉고 있었습니다.



주인장 : 나나상 여기 좀 앉읍시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에서 마법사님 만나긴 틀린 것 같소.



나나상 : 그러게요. 아이고 다리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것은 아쉬운 일일까요? 잘된 일일까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입장 역시 영혼의 추구를 따르는 일이니, 잘잘못을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저 우리는 생을 따라가 볼 뿐입니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모르는 마법사 아이작은 신기한 물건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습니다.



아이작 : 이 담배가 말이죠.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담배라는군요.



멀린 :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구요?



아이작 : 놀란 마법사 아시죠? 왜 그 영화감독 한다는.



멀린 : 아, 놀란 감독이요. 알다마다요. 아이작 친구 아닌가요? 그분 소개로 '킹스맨' 자문도 하신 거잖아요. 엄청 바쁘시다면서요. 마법사직은 잠시 휴직하셨다고 들었는데?



아이작 : 네. 워낙 잘나가니까요. 마법사가 뭐 성에 차겠습니까? 아니 그런데 그 친구가 요즘 새로 준비하고 있는 영화가 있는데, '리버스 유니버스 Reverse-Universe' 그러니까 뒤집힌 세계에 관한 영화라는군요. 그것 때문에 특이한 기술을 개발했대요. '인버전 inversion' 이라고.



멀린 : '인버전'이요? 그게 뭐죠? 거꾸로 돌아가는 기술인가요?



아이작 : 그러니까.. 이게 그 기술이 적용된 담배인데요.



멀린 : 이건 그냥 꽁초잖아요?



아이작 : 네. 지금은 꽁초죠. 근데 이걸 이렇게 훅~하고 빨면 다시 담배가 원래대로 자라나요.



아이작이 꽁초를 입에 물고 한 모금 빨아들이자 담배가 쑤욱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빨기를 반복하자 담배는 점점 자라나 멀쩡한 한 개비의 담배로 원상복구 되었습니다.



멀린 : 아앗! 이거 요물이네??



아이작 : 신기하죠? 요즘 영화감독들은 과학자보다 낫다니까요.



멀린 :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죠? 시간을 뒤로 돌리는 건 봤어도 물체 하나에만 리버스를 먹이는 게 가능하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아이작 : 그러게요. 이게 동편과 서편의 차이 아니겠어요? 관념으로 하는 것은 생각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엄청난 수련이 필요하지만, 물리현상을 다루는 것은 수치만 뒤바꾸면 되니까요. 물론 그것에도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만.



아이작은 멀쩡하게 원상 복구된 담배를 다시 케이스에 넣고는 태엽 감개처럼 생긴 스위치를 시계방향으로 몇 번 회전시키더니 다시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작 : 이 케이스가 그 인버전 기계인데요. 이렇게 넣어서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다시 순행하게 되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역행하게 되구요. 별거 아니죠? 인버전 된 담배를 다시 순행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불이 붙는 게 아니라 얼어버린다는군요. 담배는 정방향이든 역방향이든 태우는 맛이죠.



아이작은 다시 정방향으로 돌려놓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는, 멀린에게는 인버전된 꽁초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멀린은 신기한 듯 꽁초를 연신 빨아대며 켁켁거렸습니다.



멀린 : 야.. 이거, 놀란 마법사는 정말 놀랍네요. 얼마 전에는 블랙홀에 다녀오더니..



아이작 : 멀린 마법사만 하겠습니까? 멀린은 우주의 좌우를 넘나드시잖아요. 평행우주의 마법사시니까.



멀린 : 태양의 마법사들이 다 그렇죠. 밤도 없이 이 우주 저 우주를 비춰대느라 어지럽기만 해요.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건 정방향이든 역방향이든 인과가 명확하지만, 평행우주를 다니는 건 뒤죽박죽이거든요. 그냥 느끼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습니다. 멀린은 평행우주의 마법사입니다. 시간의 전후, 그러니까 아이작 요원처럼 미래와 과거를 이동하는 마법이 아닌, 좌우로 펼쳐진 수많은 경우의 우주를 넘나드는 마법사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선택의 국면에 등장합니다. 선택에 따른 경우의 우주들을 나열해 주고 주사위를 전해 줍니다. 선택은 자유의지를 따라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론 주사위를 던져서 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이미 다 결정되어 있으니까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그 무엇을 알려면 전후의 우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결론을 알고 보는 영화처럼 재미없는 일이라 멀린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좌우로 펼쳐진 우주 모두, 각각의 과거와 미래를 가지고 있으니 그 모든 걸 살펴보려면 45억년의 시간으로도 부족할 거라는군요. 어차피 선택은 더 어려워지는 거라며, 짜장면, 짬뽕 선택에도 망설이는 인간의 선택 장애로는 말이죠.



선택을 바꾸어도



멀린 : 그럼 이 기계를 대형으로 제작하면 사람도 역행 우주로 갈 수 있겠군요.



아이작 : 이론적으로는 그렇죠. 영화에서는 그런 스토리를 담는다고 하는데. 뭐 영화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니까요. 예산만 충분하다면 말이죠.



멀린 : 그런데 시간의 방향을 바꾸는 건 퇴행이 아닐까요? 선택을 번복하려는 유혹이 들 텐데. 어차피 일어난 일은 모두 일어나는데 말이죠. 이 꽁초도 그렇고. 이 기계만 있으면 담배를 무한하게 피울 수 있는 거잖아요. 인간의 삶도 인버전 기계만 있으면 언제든 선택을 번복할 수 있을 테고. 그래 봐야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 좌절만 쌓이지 않을까요?



아이작 : 그러게요. 이건 영화니까 놀란 감독이 알아서 하겠죠. 그런데 마법사들에게 인버전이 허락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멀린 : 물론 뒤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후회 말이에요. 그렇게 돌아간 우주에서 선택을 바꿔도 바라는 결과를 얻으려면 시간이 다시 순행해야 하잖아요. 순행하는 시간대 내에서 일부의 결과만 수정하고 싶다는 얘기인데. 그것에는 성장이 있을 수 없죠. 아무도 역경과 고난의 장으로 들어서지 않으려 할 테니까요. 그러잖아도 온갖 핑계를 대며 도망 다니는 데.



아이작 : 그렇겠네요. 그래서 리버스 유니버스는 접근이 금지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의 작용과 반작용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멀린 : 과거로 돌아가서 선택을 바꾸려 한다면 그 돌아가는 방향으로 퇴행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하죠. 특히 관계에 있어서는 새로운 이별을 감수해야 해요. 이별을 바꾸었다 해도 그 역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면 만남의 순간이 헝클어질 수 있죠. 물론 그 역행이 순행하는 우주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그러니까 결별의 순간만을 바꾸고 싶어도, 결국 일어난 일은 모두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 역행하는 우주에서 이별을 바꾸어도 순행하는 우주의 역사가 아직 쓰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우주에 의해 예상치 못한 인과가 발생하고 결론은 언제나 동일하죠. 선택은 현재에만 유효한 거예요. 지나간 뒤에는 지나간 시간들의 관성이 반드시 우리에게 보복을 가하게 되죠.



아이작 : 아.. 어렵군요. 역시 놀란 마법사는 어려워요. 이런 얘길 왜 영화로 만들려는 거죠?



멀린 : 하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도 전 그의 팬이랍니다. 그리고.. 그만큼 삶도 어렵죠. 이건 현실이고 선택의 순간은 지금뿐이니까요.



멀린은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아이작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먼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뱉고 있고, 그런 아이작의 모습을 바라보는 멀린은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이작과 에이전트 세븐이 같은 시공간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멀린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피했지만, 그것은 아이작이 담배를 피우고 오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인장과 아이작이 마주치는 일이 일어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 당사자가 아닌 멀린은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자리를 피했고 두 사람은 지나쳤으나 마주쳐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에이전트 세븐은 그 선택의 장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습니다. 현재의 선택권은 두 남자에게만 주어져 있고 선택의 순간은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멀린은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는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기에,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경과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선택은 두 사람의 몫입니다. 아이작이 무언가를 느끼고 갑자기 카페로 돌아가자고 하거나, 주인장이 다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와서 멀린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나나상, 에이전트 세븐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달려오거나.. 무엇이든 멀린은 선택에 개입하지 않은 채 제삼자로서 한 걸음 물러나 있을 뿐입니다. 매개체에게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매개체가 당사자로 나서는 순간, 두 사람의 우주는 붕괴하고 여러 관계들이 뒤섞이는 복잡한 아마겟돈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은 이루어졌습니다.



아이작 : 그만 들어갈까요? 벌써부터 이렇게 푹푹 찌니, 올 여름 유럽은 무지하게 덥겠군요.



멀린 : 네 그러죠. 16세기 기후는 어땠나요?



아이작 : 이렇게 덥지는 않았어요. 에어콘 없이도 견딜 만 했는데. 암튼 세상이 더 살 만해지는 건지, 살기 어려워지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 멀린. 기왕 이렇게 된 거 식사나 하시죠. 출장 기간 동안 인스턴트 음식이 얼마나 그립던지. 피자? 햄버거?? 괜찮으세요?



멀린 : 하하 그랬겠네요. 전 뭐든 괜찮습니다. 역시 중독성은 정크푸드 만한 게 없죠.



아이작은 공항 2층에 햄버거 맛집이 있다며 멀린을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선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시간 카페에 앉아있던 동양인 부부는 오사카행 항공편의 체크인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주인장 : 나나상, 체크인 시작했나 봐요. 빨리 가서 창가 좌석 달라고 합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로마 야경 보고 싶다고 했잖소.



나나상 : 그럴까요? 그런데 이렇게 그냥 떠나자니 뭔가 서운하네요.



주인장 : 왜 아니겠소. 어렵게 왔는데. 아쉽지만 그래도 인연이면 어디선가 만나게 되겠죠.



나나상 : 그렇긴 하지만..



주인장은 먼저 일어서 나나상의 캐리어를 잡아 끌며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나상은 못내 아쉬운지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어디선가 본 듯한 사내 두 명이,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뒷모습이 눈에 비쳤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로마입니다.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운명이라면, 만나야 할 때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나상은 진리와 같은 이 말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발길을 돌립니다.



'모두가 결국은 만난다.'



나나상 : 아니 그새 어디 가셨지? 이 양반이.. 아, 저기 가네. 여보~ 같이 가요.



성큼성큼 걸어가던 주인장은 사랑하는 아내가 부르는 목소리에 뒤로 돌아서서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듭니다. 마치 오랜 세월 떠나갔다 다시 돌아온 연인을 마중 나온, 그리움에 사무친 남자의 손짓처럼.. 어느새 주인장의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장 : 이리 와요! 어서 와요! 내가 여기 기다리고 있잖소! 아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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