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71. 지친 풍총수와 그를 자극하는 운명의 부름 (4)
전 우주적 풍총수의 계획
열심히들 지껄여봐라.
인간의 의지라는 것은, 전 우주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시답잖은 뇌수 찌꺼기에 불과한지 모르지만 평범한 유인원들이 믿는 미신 체계보다는 강하다. 현실에 반하는 결과가 닥쳤을 때, 사람들은 더 믿음에 집착한다. 이교도가 짓밟고 들어오자 성당이나 모스크에 뭉쳐 기도하던 비잔티움이나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그러했다. 한데 뭉쳐있던 그들은 마치 축사의 가축마냥 도축당하고, 겁탈당하고, 팔려갔다.
한 해 수만명의 사람들을 인신공양하던 거대한 제국은, 원래 돼지를 치던 천출, 출세욕에 불타던 한 인간의 의지와 단 오백 명의 용맹한 군인들로 인해 절멸되었다
_ 기독교를 떠나며 / 풍총수
그는 지쳤습니다. 인간 풍총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는 그를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내가 아는 '전 우주적 풍총수'는 반복되는 싸움과 전쟁으로 지쳐버렸습니다. 그의 마음은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나는 싸움으로만 인생을 지새우는가..
그는 천사의 부름 앞에 그렇게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반복되는 전쟁과 상실. 영혼은 그것을 모두 짊어질 수 없습니다. 영토와 업적은 쌓여가지만, 그에 비례하여 적들도 함께 늘어가고,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은 희생과 헌신 속에 죽어가고 사라져 갑니다.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면 그들에게 많은 보상을 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권력의 자리는 빼앗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고, 지키지 못할 때에는 빼앗을 때보다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하여야 하기에, 남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잔인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독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외롭고, 쓸쓸하며, 탄식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 역시 끝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사랑하는 것인지,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그 사랑과 관심이 언제 돌변하여 자신의 목을 겨눌지 언제나 경계를 멈출 수 없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싸움을 멈춘다는 것은 곧 삶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 자리는.. 그래서 이번 생 '전 우주적 풍총수'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반복되는 전쟁과 상실을 멈출, 헛되고 헛된 정복전을 멈출, '평범'한 인생을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유년 시절, 내 아버지는 서울에서 차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지방에 발령받아 10년 가까이 그곳에 홀로 거주하셨다. 그 아버지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차로 직접 운전하여 서울에 있는 집에 올라와 일요일 저녁이면 내려가곤 하셨다. 그 10년 가까이, 그러지 않았던 날은 정말 손에 꼽는다.
힘들게 서울로 올라와봤자 나와 남동생은 컴퓨터 게임만 하며 뒷통수로 아버지를 맞이했을 뿐인데 왜 그랬을까. 당시 벌었던 돈 중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 쓴 것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은 나와 내 동생 교육비로 지출되었다. 나는 나이가 먹어, 아버지에게 왜 내게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만들었냐고 격하게 항의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당시 그 시간이 후회스럽지는 않았을까.
결혼과 육아에 경험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부와 권력이라는 반석 위에 남을 가문을 만드는 게 목표였던 조지프 P. 케네디는 아들 하나를 대통령 만들고 하나를 국무장관을 만들었지만 둘 다 자신보다 먼저 요절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살았던 타이윈 라니스터는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 둘째 아들에게 살해당했으며, 고려의 시조 왕건의 자손들은 왕조 멸망에 따라 모두 몰살당했다. 스케일은 작다만, 우리집을 포함해 대부분 투자한 교육비만큼은 못 건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한 번 태어난 인생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게 가치있는 일이라면 결혼을 해서 자녀를 가져보는 게 제일 느끼는 것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어차피 사는 건 의미가 없고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더 어렵다면 그냥 미학적으로 폼나게 살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늙그막에 딸 뻘 여자랑 노는 것보다 내 아버지처럼 살아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게 제일 폼나지 않나.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횡령을 한 사실을 알고 자기라면 부끄러워 자살을 했을 거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나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다. 아버지보다 내가 그걸 먼저 깨달았다.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에 대해 훨씬 잘 몰랐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버지가 살았던 삶을 지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자랄 때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그 면만은 참 폼나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번은 따라해보고 싶다.
_ 아버지의 폼나는 인생 / 풍총수
아버지와 자신은 다른 부류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삶을 따라 해보고 싶다는 그는, 이번 생은 안정과 사랑 위에 새로운 삶을 경험해보려 무지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살고 장수는 전쟁터가 집이듯, 자신의 성향과 반대되는 삶을 살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 때문이었다면 너무도 잘 선택한, 매우 종교적이며, 매우 안정적인 가정환경은, 그를 튀어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올무가 되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모태신앙이었다. 독실한 어머니 밑에서 매일 성경을 읽으며 그 방침대로 살 것을 강요받았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종교적 학대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자신이 예언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이단 종파의 신도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정통 기독교의 대형교회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꽤 많다), 내게 그 예언대로의 삶을 종용했다.
일례로 내 어머니는 내가 수시 면접을 보러 가기 1시간 전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으니 탈락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어머니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후일 결국 정시로 들어가게 된 그 대학이 당신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누군가 그런 자기중심적인 악담을 퍼붓는다면, 그런 의도까지 생각이 미칠 것이고 아마 그 사람 인격을 비웃고 말겠지. 하지만 소심했던 10대 시절 내게는 어려서부터 믿었던 신의 이름을 내세운 그 묵시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고 면접에서 죽을 쑤고 말았다.
그래서 어머니의 그 예언은 맞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어머니의 그 묵시들은, 반항적인 10대를 벗어난 지 꽤 오래된 지금 생각해도 꽤 비합리적이었고, 시간이 지나 제 아무리 변명하기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맞았다 틀렸다 중 하나로밖에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또 신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곱씹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아마도 이게 내 인격의 성장 수준이 평균보다도 꽤 뒤처져 있었던 결정적 이유 아니었을까. 내 괴팍한 성격을 아는 사람은 그저 핑계 취급을 할지 모른다만, 글자를 읽을 수 있을 무렵부터 매일 성경을 한 시간씩 읽은 아이의 정신 상태가 다른 아이들과 같았을 거라고 쉽게 추단하지는 말아라.
어린 시절부터 내가 보고 느낀 신은, 아주 살벌할 만큼 도덕적인 결벽이 심했다. 그래서 마스터베이션 한 번을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고, 분노를 느껴도 거친 말로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다.
특히 기독교의 신을 믿는 것은, 2가지 지속적 문제를 제공하였는데, 하나는 도덕적 강박으로 인해 내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직면할 기회를 놓치게 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에 언급한 모든 과정이 예민하던 어린 시절 상상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이 내게 요구하는 삶은 붓다가 버린 고행과도 같았다. 이유도 모른 채, 그저 미래에 내가 널 높이 세워주겠노라 그러니 지금은 무조건 참아라, 이런 식이었다.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내게 상존할 컴플렉스들은 대부분 이때 만들어졌다.
_ 기독교를 떠나며 / 풍총수
"지친 풍총수는 이번 생을 평범하게 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려면 생존환경을 잘 조성해야 할 텐데, 부모의 역할이 아무래도 절대적이겠죠. 전쟁에 지친 장수가 현대에 다시 태어나며 일반적인 가정환경을 선택한다면, 풍총수의 선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안정된 가정환경과 컴플렉스를 조성하는 종교적 분위기. 현대에 있어 주류적 가정환경에서 컴플렉스로 자신을 무장하려면 이만한 선택이 없지요. 이 두 조건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난과 결손은 평범한 인생을 살기에 매우 위험한 결핍 조건이 되니까요. '니가 돈이 없니? 배경이 없니?' 이것만큼 강력한 올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난하고 의존적인 홀어머니 밑에서 고학을 해야 한다면 그는 다시 전쟁터에 나서고 말 겁니다. 그렇다고 재벌가에 태어났다면 그건 또 전쟁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가난하지도, 지나치게 부유하지도 않은 환경을 선택한 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거기에다 종교적 억압까지 옵션으로 선택했으니 이건 뭐.. 금상첨화죠."
현대 한국사회의 주류적 조건 중 하나인 종교적 가정환경을 그는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함부로 튀어나오지 못할 충분한 컴플렉스들을 심어 주었을 겁니다. 컴플렉스.. 결핍은 성장의 동력이지만, 컴플렉스는 현대인의 필수품입니다. 정도와 상대의 차이가 있을 뿐 컴플렉스 없는 인간이 없을 터인데, 종교적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컴플렉스는 상대가 신이 되기에,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잔인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주류의 조건이기도 하면서, 평생 헤어 나오기 힘든 노예 시민권의 올무이기도 합니다.
"종교적 억압은, 웬만해서는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돌덩이도 씹어먹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딸딸이 한 번에 눈물 한 바가지를 쏟으며 회개기도를 해야 하는 조건이니, 그건 말이죠. 손오공 머리에 씌워진 금고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게다가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관념으로 심겨져 버리기 때문에, 신의 CCTV 아래 24시간을 감시당하는 그 느낌은 정말.. 짜릿하죠! 그만한 억압이 없습니다. 이 장수로 하여금 그가 그토록 꿈꾸던 '평범'한 인생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게, 자신의 삶을 표준(?) 속에 강력히 구속해 놓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것을 신과 함께 감시해주는 가족들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그런 조건을 하나하나 뒤집어 버렸습니다. 컴플렉스를 극복해 버린 것입니다. 장수가 이번 생은 그러지 않기로 하고선, 개버릇을 못 버리고 극뽁!을 해댄 것입니다. 오호.. 통재라 그래선 안되었습니다. 그는 컴플렉스를 풀어버려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삼손에게 머리를 기르게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언과 오류
간단히 말해 기독교란, 내 인생 모든 문제의 원죄와 같은 존재였다. 그것만 없었다면 내 삶은 더 행복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나는 막대한 리스크를 안고 기독교의 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_ 기독교를 떠나며 / 풍총수
"쯔쯧.. 신앙은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없으면 그의 삶은 행복해지겠지요. 그가 탄식하던 멈추지 않는 싸움 속에서 말이죠. 기껏 잘 선택해 들어간 동굴을 마다하고 왜 원죄의 올무로부터 벗어나려 했을까요. 어머니의 예언 때문일까요? 그를 면접에서 떨어뜨린 어머니의 예언은, 그 이전에 어머니의 예언을 따랐다가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어버린 실패의 전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의 예언이 맞지 않아 실패했고 다른 한 번은 어머니의 예언대로 되어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했던 또 하나의 예언이 있었습니다. '너는 대통령이 될 거야.' "
"꿈이 뭡니까?"
"뭐.. 다 컸는데 꿈이.."
"아니 뭐 어렸을 때 꿈이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아.. 그거라면 대통령이요. ㅎㅎ 어릴 때 꿈은 대통령이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예언을 좀 하시는 데, 너는 커서 대통령이 될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죠. 그런데 제가 볼 때 어머니의 예언은 하나도 안 맞았어요."
아.. 이건 웬 말입니까? 아버지처럼 살고 싶은 풍총수에게 대통령이라니요. 그것은 유혹입니다. 아들에게 목숨을 교도소 담장에 얹어 놓고 살아가야 하는 대통령의 길을 예언하시다니요. 그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위험한 예언을 해대시는 어머니로부터 도망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선택한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 솔로몬조차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다 가져 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번 생 대제의 꿈은 헛된 야망을 버리고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거대한 야망의 바다로 끌려나가지 못하도록, 안정된 가정환경으로 묶고, 종교적 억압으로 결박한 채, 가족들로 하여금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도록 설정까지 하고 태어났는데.. 그 선택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영혼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공부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예쁜 여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귀여운 얼굴의 헬스 트레이너가 부럽다고 인정했고 사실 정말 부러웠다(전통적으로 사람들이 선망하던 직업을 이십대에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시에는 별 관심사가 아니었다). 늘 형이하학적이었고, 남의 어떤 가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나 가슴 또는 허리 아래가 요구하는 게 뭔지 늘 스스로에게 솔직했고, 통상 그렇듯 나 역시도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더 시선을 주었기에 그만큼 깨질 일이 많았다. 화들짝 놀라 정신 승리를 시전하며 자신이 가진 것 테두리 내에서 살기에는 호기심이 컸으니까. 그래서 굴욕적인 순간들도 많았다만 그래도 이십대 후반 잠깐 동안은, “저는 제가 꿈꾸던 것은 전부 현실로 만들어보았습니다.”라는 말을 해볼 수 있었다.
_ 다시 쓰는 협상론 "서문" / 풍총수
아아.. 이것은 위험한 신호입니다. 그는 정신 승리를 시전하며 가진 것 테두리 내에서 살기로 계획하고, 이 세상에 온 것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전 우주적 풍총수'의 계획따윈 잊고 컴플렉스를 하나하나 처리하며, 심지어 내가 꿈꾸던 것은 전부 현실로 만들어 보았다고 표효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선 안됩니다. 그는 이번 생, 짐 같은 자식, 교도관 같은 마누라와, 아버지처럼 바르고 충실한 인생을 살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회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외모와 학벌 컴플렉스로 자신을 무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종교적 억압으로 단도리를 쳐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놈의 호기심이 새어 나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놈의 컴플렉스를 극복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스팀시티] 총수에까지 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