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51. 게스트하우스 '春子' 2장 <Members Only>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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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워드


'Members Only’



"여기는 멤버십 회원들만 올 수 있는 곳인가 보죠?"



멀린은 대문 기둥에 적혀 있는 'Members Only’라는 문구를 보고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통의 숙소들이 예약제로 운영되기는 하더라도, 대놓고 'Members Only’를 표명하는 곳은.. 그러니까 일종의 클럽, 나이트클럽이든, 사교클럽이든, 비밀클럽이든 아무튼 무언가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 느낌은 이중적이기도 합니다. 매우 고품격이거나 매우 컬트스럽거나, 하이 소사이어티의 느낌이기도 하면서 또한 언더그라운드적이기도 한.. 어쨌든 이런 곳에 들어가는 일은 특별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말일 테니까요.



멀린의 질문에 회사원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대문 어딘가를 몇 번 터치 하더니, 서까래 상단의 어딘가를 응시하였습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초인종이나 호출 버튼을 누른 듯하고, 서까래 상단 어딘가에는 신원을 확인하는 CCTV가 숨겨져 있는 듯합니다. 잠시 후 서까래 상단에서 뭔가 푸른 불빛이 반짝하더니 육중한 대문이 스르륵 열렸습니다. 그 움직임은 기계적이면서도 또한 누군가 사람의 손으로 가볍게 잡아 여는 듯한 인간적인 느낌을 동시에 주었습니다.



"자, 들어가실까요."



회사원은 멀린에게 안으로 들어갈 것을 청하고는 먼저 앞서서 대문 속의 세계로 사라져 들어갔습니다. 멀린은 잠시 주저하다 큰 결심이라도 하듯 한숨을 쉬고는, 회사원을 따라 마치 이상한 나라에 진입하는 앨리스처럼 대문 너머 어둠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대문 너머의 세계는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아담한 일본식 정원이 펼쳐져 있고, 정원의 가장자리로는 본채로 보이는 일본식 전통가옥으로 이어지는 나무 보행로 데크가 놓아져 있었습니다. 일본식 정원의 군데군데에는 크고 작은 석등이 놓여져 있고, 석등의 조도는 매우 낮게 유지되고 있어 겨우 건물과 보행로의 윤곽만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가옥의 건축 연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만큼의 삐걱거림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멀린과 회사원의 발자취를 따르고, 수십 걸음을 정도를 걷자 현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격자무늬의 미닫이문으로 생긴 현관에는 안면인식 기능이 있는 센서가 달려 있는지, 회사원은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 보고 있었습니다.



"이게.. 제가 오랜만에 온 터라 인식을 잘 못 하는 것 같군요."



회사원은 여러 차례 얼굴을 들이 밀어보고 돌려보았지만, 센서가 반응을 하지 않자, 격자무늬 현관문 틀 중 한 곳에 검지 손가락을 얹었습니다.



"지문인식도 하나 보죠?"



"네, 예전에는 지문인식으로만 되었었는데, 요즘은 위조 방법이 하도 발달해서 다중 보안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걸로 될지 모르겠네.."



몇 차례의 전자음이 들리고 승인되었다는 긍정적 느낌의 신호음이 나자, 이번에는 다른 쪽 격자 틀의 일부가 회전되더니 키패드가 드러났습니다. 아마도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주문인 것 같습니다.



"하.. 참. 이거 복잡하게도 해 놓으셨네. 요즘 이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텐데.. 쩝, 패스워드, 패스워드가 뭐더라.."



회사원은 조금 당황한 듯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더니 패스워드를 떠올리느라 애를 쓰고 있습니다. 멀린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지만 회사원을 방해하지 않으려 한 걸음 물러나 주위를 돌아봅니다. 어둠이 짙어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지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흐릿하고 거뭇한 것들 사이로 건물과 정원의 윤곽이 차츰 드러나는 보입니다. 비밀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전체적인 인상은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의 일본식 전통가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밤하늘에는 초승달이 엷게 떠 있고 칠흑 같은 어둠 덕분에 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멀린은 별들을 바라보며 회전운동을 하며 토성까지 날아갔던 마법사들의 행렬이 떠올렸습니다. 아울러 현대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먼 미래, 모든 것이 생생하게 살아 있던 창조의 일곱째 날의 광경을 떠올려 보려고 애를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과 느낌뿐. 명확한 광경이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아마도 돌아오는 길에 레테의 강을 건넜나 봅니다. 멀린은 창조의 일곱째 날 떠올리기를 포기하고 다시 마법사들에 대한 생각에 잠겼습니다. 거미 대장은 그대로 죽고 만 것인지, 이도는 어떻게 되었는지, 찰스와 남준, 아이작은 모두 자신의 지역으로 잘 돌아갔는지. 그리고 저 정체 모를 회사원과 앞을 보지 못하는 택시 운전기사, 이 비밀스러운 숙소까지.. 정리하고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멀린을 압박해 왔습니다.



띠 띠디~



"아, 이거 안되네. 전에는 맞았는데.."



"안되나요? 그럼 어떻게 다른 숙소를 찾아볼까요?"



"아,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죠. 일부러 여기까지 모셨는데, 시간이 늦어서 안에 아무도 없는지.. 누가 나와볼 만도 한데.. 잠깐만요. 제가 다시 시도해 보구요."



"아, 네. 그럼 그러시죠. 저는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하셔도 돼요."



"음… 뭐더라.. "



회사원은 키패드를 붙들고 연신 숫자조합을 넣어보고 있습니다. 3번을 실패하면 키패드가 잠기는지, 기다렸다 다시 눌러보고, 또 실패해서 기다렸다 다시 눌러보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멀린은 뒤에서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지만, 속으로는 뭐 하는 짓인가 하는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포기할 만도 한데, 지독하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그렇지! 저기.. 혹시 생일이 어떻게 되시죠?"



"네? 제 생일이요? 왜 그러시죠?"



"아.. 혹시 몰라서 그러는데, 생일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월과 일, 4자리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아.. 네.. 뭐, 5월 1일인데요. 그러니까 0.5.0.1."



"아, 0501!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띠 띠 디띠
띠리리~



키패드 번호판에 멀린의 생일인 '0501'을 넣자, 경쾌한 신호음이 울리며 현관의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그리고 문 뒤에는 어떤 노년의 남자가 말쑥한 턱시도를 입고 서 있었습니다.



수상한 주인장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게스트하우스 '春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아니면 매니저쯤으로 보이는 노년의 남자는,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일본인 특유의 폴더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마스터님 오랜만입니다. 제가 너무 오랜만이라, 들어오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회사원은 노년의 남자를 마스터라고 부르며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멀린은 노년의 남자가 굽힌 허리를 일으켜 세우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레이트 마스터 이도였던 것입니다.



"어..어어 이도. 이도 마스터시여!"



멀린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쪽 무릎을 꿇고 노년의 남자에게 꾸벅 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어어 왜 이러십니까? 손님,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입니다."



꾸벅 절을 해버린 멀린과 노년의 남자를 마스터라 부른 회사원, 그리고 이도의 모습을 꼭 닮은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 세 사람 모두 당황한 채로 어쩔 줄을 모르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오호.. 혹시 두 분이 아시는 사이?"



회사원이 이 상황이 흥미로운지, 주인장과 멀린이 서로 아는 사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글쎄요? 저는 초면인 것 같은데. 한국 분들이 가끔 저를 어디서 많이 봤다며 낯익어하시기는 하는데.."



"아.. 저기, 마스터 이도가 아니십니까? 마법사가 아니시냐구요?"



멀린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물었으나, 주인장은 매우 당황해하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마스터라고 불러서 혹시 착각하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주인장 어른께 한국어를 배웠던 터라, 마스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한국어를 아주 제대로 마스터하셨거든요."



"아. .네.. 그래서 마스터라고.."



"그렇군요. 그래서 오해를.. 제가 한국어를 좀 좋아합니다. 말도 아름답고, 그 한글은 아주 품격이 넘치거든요. 미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그래서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익혀 왔지요."



회사원은 주인장에게서 한국어를 배웠고, 그래서 주인장을 한국어의 마스터라는 의미에서 마스터라 부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스터라는 호칭 때문에 멀린이 주인장을 이도로 착각한 것은 아닙니다.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외모가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분과 너무 닮으셔서 그만.. 그런데 한국인은 아니신가요?"



"아.. 글쎄요. 제 국적은.. 어쨌든 한국인은 아니지만, 저희 외가 쪽 조상 중에 조선인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임진년 해전 때 일본에 오게 되셨다는데.."



"아, 일단 들어가실까요.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회사원이 주인장의 말을 끊더니 안으로 들기를 청했습니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 양국의 불편한 역사를 언급하기에는 자리가 적절치 않아 보였나 봅니다.



"아, 네 그러셔야죠. 제가 손님들을 모실 생각도 않고 현관에서 이러고 있었네요."



주인장은 살짝 당황하며 회사원과 멀린을 이끌고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인도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는 일본식 전통가옥의 구조를 그대로 보존한 채로 운영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멀린은 이렇게 일본 전통가옥을 직접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한 듯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몇 개의 미닫이문을 지나자 2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나오고,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삐걱거림을 느끼며, 일행은 2층 로비로 올랐습니다. 멀린은 맨 뒤에서 따라 올라가다가, 계단 난간 사이로 1층 한쪽 벽에 붙어 있던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에는 한 서양 귀족 여인이 온몸에 쇠사슬을 감은 채 황홀경에 빠진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림 아래쪽 프레임에 영어로 카사노바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카사노바의 여인들 중 하나의 모습인 듯했습니다.



"자.. 여기 소파에 앉으시죠. 일단 제가 차를 좀 내오겠습니다."



주인장은 멀린과 회사원을 로비 소파로 안내하고, 차를 내오겠다며 주방으로 보이는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멀린은 소파에 몸을 털썩 기대며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회사원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저기.. 근데 여기는 회원제로만 운영되나 보죠?"



아까 대문 앞에서 답을 듣지 못했던 질문을 회사원에게 재차 묻습니다.



"아, 예. 아까 물어보셨는데 제가 답변을 못 했네요. 맞습니다. 여긴 멤버십으로만 운영되는 게스트하우스입니다. 그런데 저도 어떻게 멤버십이 되는지는 몰라요."



"네? 그럼 어떻게 여기 회원이 되신 거죠?"



"저도 처음에는 아는 지인의 소개로 여기에 오게 되었는데, 저 주인장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친해지고, 또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자주 드나들게 되었죠. 처음에는 꼭 그 지인과 함께서만 이곳에 올 수 있었어요. 보셨다시피 여기 들어오는 과정이 좀 까다롭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날 주인장께서 여기 회원이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신청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뭐 조금 일방적이긴 하지만, 이곳이 워낙 매력적인 곳이라 그런 걸 따질 필요도 없이 감사하다고 했죠. 여기 회원이 되고 싶어 대기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저는 뭐 따로 신청한 적은 없지만.."



"네.. 그렇군요. 그럼 여기는 사람들이 항상 북적이겠네요. 회원들로요."



"글쎄요. 저도 요즘은 자주 못 들렀지만, 한때는 거의 매 주말마다 여기에서 머물다 가곤 했는데 한 번도 다른 손님을 본 적이 없어요. 그게 저도 좀 이상하긴 하더군요. 숙박 일정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이상하게 다른 손님과 마주쳐 지진 않더라구요. 그래도 계속 운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손님이 있다는 얘긴데.. 소문에는 여기 주인장 어른이 야쿠자의 퇴역한 두목이라는 소리도 있고, 전 세계 암시장의 큰 손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누군가는 뭐라더라.. 북아프리카에 유전을 수십 개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더군요. 뭐 다 카더라 통신입니다만. 아, 카더라 통신! 이거 맞는 말이죠? 한국말 말이에요."



"아.. 네. 그런 말도 아시네요."



"하하 네, 그 말도 주인장께 배웠죠.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카더라에 민감하다면서요."



"네.. 쫌 그렇죠. 근데 아까 패스워드 말이에요. 그게 어떻게 제 생일인 줄 아셨죠?"



"아, 그거요. 그건 이따 주인장 어른 나오시면 저도 여쭤보고 싶은 건대. 그게 예전에도, 제 지인이랑 지금같이 못 들어오고 있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게 아마 제가 정식으로 주인장께 한국어를 배우기로 한 첫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갑자기 지인이 제 생일을 묻더니, 그걸 입력하자 문이 열린 적이 있었어요. 마침 그때가 생각나서.. 근데 생일이 정말 5월 1일이세요? 메이데이에 태어나셨네요?"



"네 그렇죠. 메이데이, 노동절에 태어났답니다. 뭐 덕분에 생일이 휴일이긴 한데, 프리랜서 마법사로 살다 보니 노동자의 날이랑 상관없는 일들을 해와서.. 제대로 휴일이자 생일을 즐긴 적이 없네요. 학창 시절에는 항상 중간고사 기간이었구요."



"이크 저런.. 생일을 통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하셨군요.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제 생일은 7월 20일이라.. 항상 휴가 기간이긴 했죠."



"7월 20일이요? 아 그럼 다음 주네요?"



"어, 그런가요? 벌써 그렇게 됐네. 한주만 늦게 만났으면 제가 생일턱 크게 쏘는 건대. 아쉽네요 하하하"



"아.. 네."



"이거 두분이서 서로 아시는 사이가 아니셨나 봅니다. 뭘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대화를.."



"네. 실은 저희도 교토로 오는 기차에서 만난 사이라.."



주방에 들어갔던 주인장이 매우 고풍스러워 보이는 은색 쟁반에 종이컵 두 개를 담아서 로비로 내오고 있었습니다. 차를 준비하겠다길래, 일본 전통 차나 손으로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내오는가 생각하고 있던 멀린은, 은쟁반에 담긴 종이컵을 보고는 이게 뭔가 싶어졌습니다.



수상한 웰컴티



"자.. 제가 특별히 손님을 위해서 각별하게 아끼던 차를 웰컴티로 준비했으니 드셔보시죠."



멀린은 주인장이 자랑스럽게 내온 종이컵을 받아들고는 실소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어느 골목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인스턴트 믹스 커피였기 때문입니다.



"아, 이거 믹스 커피! 역시 커피는 맥심이죠."



회사원은 덥석 종이컵을 받아들고는 매우 귀한 차를 대접받는다는 몸짓으로, 종이컵에 든 믹스 커피를 홀짝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멀린은 당황스럽고 피곤한 일정의 연속에서 만난 익숙한 믹스 커피가 반갑기도 하면서, 이 상황이 우습게 느껴져 어쨌거나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떠세요? 한국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특별하게 준비한 차랍니다. 이게 저희도 찬장에 넣어놓고 아주 특별할 때만 꺼내 마시는 매우 귀중한 차랍니다. 한국에서는 이걸 꼭 종이컵에 담아 마신다고 해서, 저희도 꼭 종이컵에 차를 내오죠. 어떠신가요, 손님? 한국에서 드시던 그 맛인가요?"



'한국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내가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멀린은 마치 자신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다는 듯한 주인장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일일이 묻기에는 아직 어색하고 피곤합니다



"아.. 네, 네.. 그렇네요. 요즘 한국 사람들은 이 믹스 커피보다는 스타벅스 커피를 더 선호하긴 하지만.. 뭐 아직도 일터에서는 다들 즐겨 마시기는 합니다."



멀린은 어쨌거나 익숙한 믹스 커피가 이름 모를 일본 전통차보다 피로 회복, 아니 정서 회복에 좋으리라 생각하며 한 입 머금어 봅니다. 앗! 그런데 이것은 생전 처음 맛보는 절묘한 맛. 한국의 자판기에서 뽑아먹던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믹스 커피에 천연 MSG를 뿌린 듯, 한국의 믹스 커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감칠맛이 혀끝에 맴도는 게, 마치 마약을 들이키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습니다.



"이야.. 이건 맛이 좀 다른 데요. 오~ 이거 맛있네."



"아, 그렇습니까? 이거 본토인이 칭찬해주시니 감개무량하군요."



"그렇게요. 오늘따라 커피 맛이 더 좋은대요."



믹스 커피에 무엇을 탔는지, 멀린은 생전 처음 맛보는 커피의 맛에 전신에 긴장이 풀어지고 편안해져 오는 안락감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 편안한 느낌이 지나쳐 혹 무엇을 탄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손님, 며칠을 묵으실 예정인가요?"



주인장은 심하게 릴렉스해지고 있는 멀린과 회사원을 흐뭇하게 쳐다보더니, 로비 데스크에서 숙박부로 보이는 태블릿을 들고 와 멀린에게 묻고 있습니다.



"아.. 네. 일단, 제가 일정을 아직 확정한 게 아니라.. 얼마나 묵을 수 있습니까?"



"그거야 손님이 원하시는 만큼 묵으실 수 있습니다."



"아.. 요즘은 예약 손님이 별로 없나 보죠?"



회사원이 게스트하우스의 예약상황에 대해 묻자, 주인장은 갑자기 정색을 하며 그런 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시간에 오신 손님이라면 매우 특별하신 분임에 틀림이 없다며, 모든 일정을 취소하더라도 최대한 손님의 상황에 맞추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네. 그래 주시면 저는 감사합니다만.. 너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이건 저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편하신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최대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임무? 임무라구요? 무슨 임무.."



주인장은 이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회사원도 임무라고 하더니, 주인장도 임무라고 하는 것입니다. 멀린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임무에 대해 묻자, 주인장과 회사원은 묘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아..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요. 게다가 함께 모시고 오신 저희 회원님의 입장을 고려해서라도,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네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여기는 ‘Members Only’를 중요하게 여기는 게스트하우스이니까요. 모든 것은 여기 주인장께서 알아서 다 잘해 주실 겁니다."



"네.. 그러면 감사하긴 합니다만..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무슨 궁금한 점이라도.."



"아니 저기 아까 현관에서 패스워드가 안 맞아서.. 계속 시도하다가 제 생일을 넣었더니 열리길래요. 패스워드가 '0501'이 맞습니까?"



멀린은 주인장에게 패스워드에 관해 물었습니다. 마치 자기가 이곳에 올 줄 알았다는 듯,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자신만 모르는 어떤 일들이 배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만.."



"네? 주인장께서 패스워드를 모르시면 어떻게 열리는 거죠?"



"아, 그게 실은.. 저게 랜덤으로 패스워드가 정해지거든요."



"네? 랜덤이요?"



랜덤으로 정해지는 패스워드? 그럼 이곳의 회원들, 주인장은 어떻게 매번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문을 여는 걸까요?



"그게 저.. 이 집은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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