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18. 다 돌아와요. 갈 데가 없거든요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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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세계의 무리 짓기


"외로운 사람들은 자신을 방호벽 속에 가둡니다. 안전하지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세계. 그러나 그곳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보호해 줄 사람은 나 혼자뿐이니까요. 나 혼자뿐인 세계라고 상처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서 받는 상처는 더 크고 아픕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어 나오고 또 기어 나옵니다. 상처받고 돌아 들어가고, 다시 상처받고 철벽을 치고.. 그러니 관계없이 살아갈 수 있나요?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온라인 세계의 출현은 외로운 이들에게 중간지대를 만들어 주었어요. 피상적 관계로라도 관계의 끈을 이어갈 수 있는 안전지대.. 그러나 그곳 역시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공갈빵 같은 곳이죠.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캐릭터들의 가면무도회. 캐릭터 01, 캐릭터 02, 캐릭터 03, 박순열 04, 박순열 05... 사람은 만나야 해요. 같이 손잡고 밥 먹어야 해요. 그것이 비의에요.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비의."



그래서 그들은 만나고 밥 먹고 정보를 교류하고 커넥션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그 커넥션에 들어가고 싶어서 스펙을 만들고 시험을 보고 성과를 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멀어지는 것이 그 커넥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디 저 멀리 고관대작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공간, 같은 조직, 인간이 무리를 짓는 어떤 곳이라도 인사이드가 생겨나고, 그곳에 포함되려는 경쟁이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취향과 세계관에 따라, 이익과 이상을 따라.. 무리에 속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갑니다. 무리가 나를 욕할까 봐. 이상한 신고식도 합니다. 무리에 끼려고..



진화하는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무리 짓는 법을 발전 시켜 왔지만, 현대인류에게 새롭게 등장한 이 온라인 가상세계의 무리 짓기는 매우 독특합니다. 그것은 뭐랄까? 외로운 이들의 마약 같다고 할까?


"마약입니다. 그것은 마약이에요. 그들은 환각과 환상에 중독되어 있어요. 피상적 관계, 이미지뿐인 관계를 진짜로 착각하고 서로를 애무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돌변해서 뒤통수를 치거나 배신을 하고 공격을 합니다. 그래도 괜찮으니까요. 현실 세계에서의 처벌이 따라오지 않으니까요. 그것은 법을 만들고 제도를 강화해도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무한히 증식해 냅니다. 도망갈 곳이 없는 현실 세계와 달리, 이 온라인의 세계는 무한하고 또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이죠. 180번째 박순열 따위는 로그아웃하고 접속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든요. 진실된 관계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실망하고 금방 떠나가지만, 피상적일지라도 관계에 목마른 이들은 금방 뜨거워졌다 금방 차가워졌다 하며, 로그인과 로그아웃, 가입과 탈퇴를 반복합니다. 할수록 허탈해지기만 하는 그 짓을 멈추지 못하고 반복합니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죠. 받아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에요."



F는 마법사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러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험을 들려주며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좀 지나면 다 돌아와요. 갈 데가 없거든요.."


"그도 그래 보였어요. 갈 곳을 찾아다니는 듯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상처받아도 떠날 수 없는 이 온라인 세계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법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그는 개인정보보호에 병적으로 집착했어요. 심지어 다수가 모이는 자리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타났어요. 바이러스 때문이냐구요? 아니요. 함부로 신분을 노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 이 사람 상처가 많구나' 할 수도 있지만 '아.. 이 사람 어디서 사고 친 거 아니야?'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진위는 누구도 알 수 없죠. 그러나 그의 그러한 태도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면 상대도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경계하는 만큼의 거리를 이쪽에서도 함께 둘 수밖에 없죠."



외로운 이의 위험한 시도



그토록 개인정보보호를 외치는 그는, 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면서까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을까요? 그의 외로움은, 그를 마스크를 착용하면서까지 무리로 돌진하도록 추동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마법사라는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가 그토록 신경쓰던 단톡방의 친구들이, 정신병자들이 아니냐며 손가락질하는 이 위험한 무리에 속하려 애쓰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외로워서겠죠. 그는 관계에 목말라 있는 것 같았어요. 온라인 세계의 허위로 채워지지 않는 그것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충족시키려는 듯, 스팀잇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어요. 처음 만나던 날도 코엑스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하고 왔다더군요. 스팀잇의 아트 동호회가 참가하는 행사라며.. 그들의 응원 해야 한다며.. 뻘쭘하게 정승처럼 서 있었다고 하면서도 이틀 간의 행사에 모두 참석했대요. 왕복항공권과 숙박비와 회식비까지 지출해가면서.. 제주도에서 열린 한 스티미언이 주최한 행사에서는 기부까지 했는데, 서운한 감정만 안고 돌아왔다고 했어요.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안쓰러워집니다. 마법사도, F도, 총수도, 고래도 어차피 우리 모두 외로운 사람들 아닙니까?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더이상 외롭지 않은 세상이 올까요? 마법사의 생각은 틀려먹은 생각까요? 그러려면.. 그러려면.. 우리는 붙든 손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갈등과 상처를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일이에요. 멱살 잡고 싸우더라도 소통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해요. 욕하고 뒤돌아서더라도 관계의 끈만큼은 포기하지 말아야 해요."



F는 자신에게 프레임이 씌워졌다던 그날 밤, 마법사와 총수를 비롯한 운영진들과 격렬하게 부딪혔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어설픈 배려와 위장된 눈치싸움을 멈추고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니까요. 힘이 들고 상처가 생겨나는 일일지언정, 어둠 속에서 발효되지 못하도록 갈등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커뮤니티를 건강하게 하니까요.


"우리는 이런 대화를, 이렇게 채팅으로 이어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대화를 멈추고,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죠. 언제든 F가 서울에 올라오게 되면, 모두 만나서 이 문제를 좀 더 심도 깊게 논의해 보자며 대화를 마쳤어요. 그러나 그는 바로 다음 날, 문제의 포스팅을 했죠. <여러분, 저는 스팀시티 프로젝트에서 빠지기로 하였습니다.>라며.."



'빠지기로 하였다.' 그것은 F가 시작부터 가지고 있던 스탠스입니다.


F :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 차이가 있어요. 우리 둘.

마법사 : 어떻게 생각해요?

F : 아닙니다. 마법사님 말씀이 맞겠네요. 포스팅에 동의합니다.

마법사 : ㅎㅎ 그렇게 표현하시면 곤란하고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이게 다 과정이죠. 메일이 편하시면 메일로 주시고

F : 표현이 곤란한 부분이 "아닙니다. 마법사님 말씀이 맞겠네요, 포스팅에 동의합니다" 부분인 거죠?

마법사 : 그럼요. 흔쾌하지 않으면 될 때까지 소통해요.

F : 그럼 흔쾌히 동의하기 위해 몇 가지만 더 물어보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마법사 : 넵

F : 총수라는 사람이 뭔가 특권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고 말 그대로 함께 하는 위치인 것이죠? 간단하게 비전을 함께 제시하고, 플래닝을 함께하고, 매니징을 함께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보면 될까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요.

마법사 : 이런 얘기를 만났을 때 해야 하는데 총수의 역할에 대한 정의와 각자의 생각 말이죠. 지금부터 하죠.

F : 네, 우선은 마법사님 생각부터

마법사 : 저는 특권 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그보다 더 주체적이라고 생각해요. 책임의 최종자로서 권한도 그만큼 그러나 위임은 본인 선택.

F : 특권 부분도 생길 수 있는 부분으로 봐야 하는 거지요?

마법사 : 그럼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용의 철학

F : 음... 제가 이 질문들을 하면서 순간적으로... 내가 왜 이런 질문을 예민하게 할까 생각했는데... 좀 더 생각해보니 애정이 있어서거나 계속 함께할 생각만 하고 있었나 싶습니다. 빠질 때 되면 빠져야 되는데 말이죠. ....



빠질 때가 되면 빠져야 한다



빠질 때는 언제일까요? 왜 빠져야 할까요? 왜 [스팀시티]의 무법자 마법사를 탄핵하고, 고발하여 실각시키지 않고, 자신이 빠지려고 할까요? 그것은 편안한 방법입니다. 손쉬운 방법입니다. 반발하고 반박하며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상대의 만행을 멈추게 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듭니다. 그것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에는 위험이 발생합니다. 안전한 일은 빠지는 일입니다. 손쉬운 일은 빠질 때 빠지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겸손을 가장해야 합니다. 겸손을 가장하며 결정하는 위치에 서 있지 않아야 합니다. 말하고 결정하는 일에는 책임이 따르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겸손을 가장한 채, 수많은 경우의 수를 손에 쥐고 눈치를 봅니다. 빠질 때를 알아채기 위해 요리 살피고 조리 살핍니다. 그러다 마침내 빠질 때에는 조용히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고 폭탄을 투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폭탄은 상대에게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오고 맙니다.


"F는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빠져나갈 자리를 확보한 채, 자신의 낄 자리를 살피는 듯. 행사가 끝난 다음 날, 그는 갑자기 말을 걸어, 고래들이 [스팀시티]의 인적 자산을 다 빼갈 것 같다며 주의를 주었어요. 고래들이 [스팀시티]의 총수와 스탭들을 접촉하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그만큼 이번 행사가 잘 치러졌다는 얘기이고, 또 고래가 [스팀시티]의 인재들을 알아보았다는 것 역시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니까요. 게다가 스카웃을 하면 또 어떻겠어요? 고래가 한다는 데. 돈도 못 대주는 마법사보다야 훨 낫겠죠. 그렇다면 마법사도 처음 의도한 대로, 여러 시도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으니 이만 출구전략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일이었어요. 뭐, 물론 기분 좋을 일은 아니지만, 마법사도 나름 행사과정에서 한계를 느끼기도 했던 터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죠. 오히려 고마운 일일 수 있죠.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인데..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 고래들과 연결되고 싶었던 이가 F였다는 거에요. 고래들과의 협업을 생각하고 있다며.. 그래서 고래와의 접선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면밀히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어요. 마법사는 알지도 못하고 있는 일들까지..

아.. 이런, 언제는 고래들이 [스팀시티]의 인적 자산을 빼가려 한다며 주의를 주더니.. 네, 그건 또 뭐가 문제겠습니까? 갈아타면 갈아타는 거고 다 몰려가도 좋은 일입니다. 어차피 어디서든 열심히 하면, 스팀의 시세는 올라갈 테고 커뮤니티의 가치는 높아질 테니, 마법사는 제자리로 돌아가 닭이나 처먹으며 보팅과 댓글만 즐기면 되는 일이죠. 그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마법사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며 고래를 찾아갈 일이지.. 고래의 눈에 띌 기회를 노렸던 건지, [스팀시티]의 성과에 얹혀 가고 싶었던 건지, 왜 이제 와서 속보이게시리.. 아.. 이건 뭐 속 좁은 생각 ㅎㅎ"



그래도 마법사는 마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외로운 F의 허둥지둥이 안쓰럽게만 보였기 때문이죠. 그것은 처음부터 예상되었던 스탠스이고, 다만 무엇도 좋으니 계속 소통하자며 보챘던 이는 마법사였으니까요.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F :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마법사님의 말씀에는 동의하고 차후에 또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그때 또 말씀 나누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막 그렇게 모든 사안에 구체적인 생각을 나누기는 힘들 것 같아요. 큰 가이드를 그리고 나중에 채워 넣는 식으로 계속 의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마법사 : 그런데 오히려 초반에 나누지 않으면 큰 불씨가 돼요. 그러다 암 걸렸어요. 저한테 멈출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F : 그러니 초반부터 의견 교환하면서... 수시로 의논을 하면서 함께 만들어나가야겠지요. 그래서 뒤늦게 서로 너무 먼 길을 따로 달려가지 않도록요.

마법사 : 지금도 차이가 있는데 얘기를 나눠야 할 듯

F : 네.

마법사 : 버거우세요?

F : 아직은 아닌데요. 언젠가 올지 모르죠? (사람 앞일은 모르니 확정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마법사 : ㅎㅎ 그럼. 지금 치열하죠?

F : 삶이요?

마법사 : 아니 치열하게 대화하자구요.

F : ㅋㅋㅋㅋ 이게 치열한 건가요? 아닌데요. 늦은 오후에 햇살 받아 가며 홍차 마시면서 대화하는 느낌입니다. 아마 나중에 치열하게 대화 나눌 일이 생기겠죠. 빠르던 늦던... 그래도 대화는 치열하게 나눠야지요.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흔쾌히 동의할 때까지 대화 나눈다는 부분에 저도 동의하거든요.

마법사 : 음.. 이렇게는 진행할 수 없어요. 이것은 F님의 상처인 듯해요.

F : 아, 제가 공대 감성이라 잘못 오해하고 자꾸 답변할 수도 있습니다.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시지요.

마법사 : 저는 허심탄회하게 다 말했는데, 궁금한 몇 가지를 더 풀어 보시죠. 일단 그럼 총수의 역할정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F : 궁금한 것 있으면 그때그때 바로 물어보는 성격이고, 궁금한 게 없으니 질문을 안 하는 것이고,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더 추가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비전을 그리고, 계획을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저는 마법사님께 위임하는 편입니다. 저는 그리고 있는 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술지원이나 도움을 드리는 입장이고요.

마법사 : 많이 당황스러울 거에요. 저를 욕하고 저주할지도 몰라요.

F : 그런가요. 그 부분들이 당황스럽고 걱정스러운데요? ㅎㅎㅎ

마법사 : 그러니까요. 그래서 초반에 저를 드러내고 있어요. F님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죠. 선택의 국면입니다. 그래서 길게 포스팅을 해온 거고 저는 직관을 벗어날 수 없어요.



직관을 벗어날 수 없는 마법사는 스카웃 제안을 받은 [스팀시티]에게 출구전략을 제시했습니다. 'Everything이 아니면 Nothing'이라며.. 그리고 쏟아지는 비난을 안고 동쪽으로 소환되었습니다. 그리고 뒤로 미루었던 소통은 결국 겸손의 경우의 수와 결합하여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출구에 서 있던 이는 F였어요. 그는 역설적으로 [스팀시티]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빠지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며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책임이라니요. 회피하는 것이 어떻게 책임지는 자세입니까? 겸손을 가장한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F는 여지없이 사용했어요. '난 빠지겠다.' 그러면 남은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 가세요. 안녕~' 합니까? '가지 마세요. 왜 그래요? 뭐가 문제였죠? 얘기를 들려주세요~' 애원해야 합니까? 무엇을 요구하는 거죠? 그러나 마법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이미 충분히 말했거든요."


F : 혹시라도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분들과 제 생각이 달라서 둘 중에 하나 선택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가차 없이 저를 버리세요. 저는 도와드렸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합니다. (물론 도움을 많이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 기대치는 저만의 기대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일부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일 수도 있고, 보편적인 기대치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만의 기대치라면 문제는 쉽겠지만... 그게 저만의 기대치가 아닌 다른 사람, 보편적인 기대치인데 그에 부응하지 못했다면 매우 아쉬운 부분이고 유감스러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마법사 :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치고 빠지기를 계속하실 겁니까? 책임감은 전혀 없어 보이는군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 말입니다. 버려도 된다니요.. 그래서 그 멀리까지 스스로를 쫓아 버리셨습니까? F님은 못 도망갑니다. 괜히 마법사를 만난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도망갔습니다. 교통사고까지 무릅쓰고 날아 온 길을, 폭탄 하나를 던져놓고 비행기를 타고 도망가버렸습니다. 그것이 책임지는 모습이라며.. 마법사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마스터 회의에 회부되어 버렸으니까요. 안건은 <마법사의 무책임한 믿음과 직관에 입각하지 않은, 관계에 대한 사적인 태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관심을 갈구합니다. 그런데 잘 몰라요. 어떻게 그것을 충족해야 하는지. 그래서 자신에게 상처를 내요. 그러면 사람들이 봐줄까 싶어서 말이죠.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처음 만난 날, 그는 커뮤니티의 아트 동호회 사람들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며 울먹였어요. 눈물을 삼키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는 진심이었고, 마법사는 그의 진심을 읽었어요. 그래서 [스팀시티]를 시작할 수 있었죠. 그 마음이 동력이 되어 사람들에게 호응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거에요. 분명 [스팀시티]의 시작에 F의 진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어요. 그는 드디어 외로움에서 벗어나 관계의 망 속으로 진입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성급했어요. 모두들 이제 겨우 탐색전을 시작했을 뿐인데, 그는 혼자 환상기를 거쳐 갈등기 속으로 진입해 버렸어요. 그리고는 여지없이 자신을 로그아웃 시켜 버렸죠. 늘 하던 대로.. 안타까워요. 겸손의 경우의 수를 세지 않고, 어차피 받을 상처, 커뮤니티의 성숙을 위한 갈등을 감당하는 에너지로 활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암호화폐의 패스워드, 커뮤니티



온라인 세계에 수많은 외로움들이 몰려듭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가면들이 준비되어 있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방식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거나 쓰고 아무 데서나 낄낄대다가 제멋대로 로그아웃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다 또 어디에선가 출현하고, 또 깔짝대다가, 또 어디론가 도망쳐 버립니다. 그렇게 버려지고 소모되는 박순열018, 박순열180들이 디지털 쓰레기로 네트워크망에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흔적들에 불쾌해하며, 인터넷 쓰레기 사이에서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그아웃하고 사라진 외로움들은, 편의점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벗하며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스크 안 썼으면 어쩔 뻔..'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죠.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시스템은 그것을 사용하는 커뮤니티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동전만 덜렁 만들어 놓고, '이게 돈이요' 한들 뭔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커뮤니티는 반드시 현실 세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동전에 가치를 부여했다 한들, 어느 날 사라지는 관계들 속에 놓인 동전이 어떤 신뢰를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금처럼 은처럼, 실물과도 연결되지 않은 무형의 가치를 무엇으로 담보하겠습니까? 달러와 같은 법정 화폐들조차, 석유와 국가권력이라는 실체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기득권의 사기라고들 의심스러워하는데, 가상의 화폐는 무엇으로다가 신뢰를 담보하겠습니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온라인의 가상 커뮤니티로 어떻게 그 신뢰를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커뮤니티에서 책임은, 로그아웃하지 않음으로써 증명하는 것입니다. 커뮤니티에서 빠지는 것이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싸우고 갈라서더라도, 체인에 남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신뢰를 보증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가상의 커뮤니티를 넘어서 진실된 관계망을 연결함으로써, 이 암호화폐에 걸린 인류 진화의 패스워드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싸움박질을 하고 핏대를 싸우며 갈등하더라도 아무도 로그아웃하지 않는, 아무도 빠질 때라고 핑계 대며 빠져나가지 않는 진짜 '커뮤니티'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쉽게 떠나갔습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행위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법사는 더욱 그를 붙들어 놓고 싶었습니다. 그가 화상 전화 속 박순열이든, [스팀시티]의 총수추대위원 F이든 상관없이, [스팀시티]의 <미니스트릿> 현장에서 붕대를 감은 손으로 열정적으로 일을 도우던 그와 함께, [스팀시티]의 시민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스팀방송국, 스팀시티 프로젝트를 믿고 지지하고 응원해준 분들이 꿈꾸던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것>이지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그가 즐겨 쓰는 단어에요. 외로운 그는 늘 '함께', '함께'를 외치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정작 그는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마스크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며.. 개인정보보호를 명분으로 우리에게서 거리를 띄우고는.. 겸손을 가장한 경우의 수를 가득 쥐고서 눈치를 살필 뿐이었어요. 우리는 그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요?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방법을 모색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그는 사라져 버렸어요."



'함께'를 주장하던 F는 그 이후로 스팀잇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모두의 의견이라며 강조하던, 사라진 수면 아래 어두운 그림자들의 놀이방에서는, 그의 성 정체성에 관한 말도 안 되는 루머와 이상한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에 일그러진 영웅은 씁쓸한 뒷모습만 남긴 채 사라졌지만, 지금도 온라인 세계 어디선가, 또 다른 어떤 이름으로 '함께'를 외치고 있을 겁니다. 쓸쓸히 마스크를 쓴 채로..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좀 지나면 다 돌아와요. 갈 데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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