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바다 단편선] 세계 최고의 와플과 나이를 잃은 아가씨

in #stimcity6 years ago (edited)

단편선 썸네일.png


세계 최고의 와플과 나이를 잃은 아가씨








“너는 나를 그렇게 맛보고 싶니?”



와플이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소녀는 벌써 며칠째 와플 상점 앞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이 와플 상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플 전문상점입니다. 파는 것이라고는 와플뿐입니다. 너무 맛있어서 와플의 본고장 벨기에의 국왕조차 자기가 먹어 본 와플 중에 제일 맛있다며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맛있는 와플이니 매일같이 사람들이 이 와플을 먹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긴자의 사거리 모퉁이에 점포도 크지 않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좌석도 없는, 오로지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 작은 점포에서 와플은 매일 일정량만 생산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도 이 와플을 먹으려면 줄을 서야 합니다. 물론 사람을 시켜서 대신 줄을 서게 하겠지만 말입니다.


“네가 그렇게 맛있다며? 나는 너를 살짝 맛본 적이 있어.”

“언제?”

“어느 날, 우리 이웃집의 아주머니가 자신이 일하는 집의 주인 심부름으로 너를 사서 가져가다가, 사람들이랑 부딪혀 모서리가 뭉개져 버린 거야. 그래서 그걸 주인에게 주지 못하고 대신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왔다며 내게도 일부를 맛보게 해 주신 적이 있어.”

“고마운 아주머니구나.”

“맞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그날 혀의 감촉을.. 그건 마치 눈송이가 바닥에 닿자마자 사라지듯 내 혀에서 사라져 버렸어. 나는 그 기억을 잊지 못해. 너무도 그리워.”

“고마워 나를 그리워해 주니. 하지만 너는 나를 사서 맛보면 되지 않겠니? 그토록 나의 맛이 그립다면 말이야.”

“…”



소녀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자신이 돈이 없어서 와플을 사 먹을 수 없다는 현실을 와플에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랬다간 영원히 와플을 맛볼 수 없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가치를 가진 것에게 가치를 지불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벨기에 국왕조차 감탄을 금하지 못한 세계 최고의 와플에게,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를 맛볼 수 없다면, 그것은 세계 최고의 와플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마 와플에게 돈이 없어서 너를 맛볼 수 없다는 말을 내어놓지 못합니다. 그것은 소녀의 자존심이 아니라 와플의 자존심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너는 언제부터 그렇게 멋진 맛을 가지게 되었니?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거야?”

“아니야, 나도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는 밀가루 반죽에 불과했어. 나를 만든 나의 마스터도 처음에는 어설픈 빵집 점원일 뿐이었지. 매일 같은 레시피의 빵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대.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노신사가 찾아와서 자신의 손녀가 원하는 빵이 있는데 좀처럼 구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했대. 궁금해진 나의 마스터는 노신사의 손녀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노신사에게 묻기 시작했어. 그런데 신기한 건 그 노신사의 손녀는 맛을 느낄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려 있다는 거야. 그런데 유독 그 빵만 맛을 느낄 수 있었대. 우연히 거리의 노점상 아저씨가 건네준 샘플용 빵조각이었는데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맛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는 거야. 소녀는 너무 기뻐서 노점상 아저씨에게 빵을 사려고 집으로 달려갔어. 가서 그 빵을 살 돈을 가지고 돌아오려고. 그런데 다시 돌아와 보니 노점상 아저씨는 어느새 사라지고 만 거야. 너무 실망한 소녀는 그날 이후로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대. 맛을 느껴 본 입이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없자 말문이 막혀 버린 거야. 그날 일로 그 집안 사람들은 모두 그 노점상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다녔지만, 2년이 지나도록 그 노점상을 찾지 못하고 있었대.”

“이런.. 그럼 그 손녀는 계속 말을 하고 있지 못한 거야?”

“그렇지, 그래서 보다 못한 노신사는 차라리 그 빵을 만들 수 있는 파티쉐를 찾아보자 하고, 이 빵집 저 빵집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나의 마스터를 만나게 된 거지.”

“그랬구나. 그런데 너의 마스터는 그래서 그 빵을 만들 수 있었대?”

“음.. 그게 좀 이상한 사연이 있는데 실은 나의 마스터도 맛을 느낄 수 없는 병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맛을 느낄 수 없는 파티쉐였던 거지.”

“어머, 그렇다면 그 손녀와 같은 병을 가지고 있었네?”

“맞아, 그래서 그 노신사의 부탁을 그냥 거절할 수 없었대.”

“그런데 어떻게 맛을 볼 수 없는 사람이 파티쉐가 되려고 했지?”

“글쎄,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나도 몇 번 마스터에게 물었었는데, 그때마다 마스터는 그냥 빙긋이 웃을 뿐 아무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어. 어쨌든 나의 마스터는 노신사의 손녀의 소원을 해결해서 손녀에게 말 문을 열게 해 주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어.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결심이었는지도 몰라.”



와플과 소녀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세계 최고의 와플 상점은 그날의 한정량을 거의 다 판매하고 곧 상점 문을 닫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상점이 닫히면 소녀와 와플의 대화도 계속 이어질 수가 없을 텐데 말이죠. 그 사실을 알아차린 와플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곧 상점 문이 닫힐 것 같아. 마저 얘기 할게. 오늘은 너에게 이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으니까. 나의 마스터는 그날부터 세상의 모든 빵을 맛보기 시작했어. 자신이 맛을 느낄 수 있다면 노신사의 손녀도 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찾아 든 골목에서 웬 아가씨가 꽃을 팔고 있는 거야. 그런데 이 아가씨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어. 마스터는 딱한 마음에 꽃을 한 다발 사고는 아가씨에게 물었어. 꽃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꽃을 팔고 있느냐고 말이야. 그러자 아가씨가 이렇게 대답했대. ‘꽃은 보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향을 맡는 것이지요.’ 그 순간 마스터의 머리에 번개 같은 깨달음이 생겨났대. ‘맛은 입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지. 눈으로 보는 것이기도 하지.’라는 깨달음이 말이야.”

“그렇구나! 맛은 보는 것이지. 그러니까 입으로 보고, 눈으로도 보는 것이지. 맞아! 정말 그렇네.”

“그래, 맛은 입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야. 눈으로 보는 것이고 향을 맡는 것이기도 하지. 물론 맛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후각도 함께 무뎌지기 때문에 향을 맡기는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이미 맛을 본 경험이 있다면 더 떠올리기 쉽겠지. 그날 이후 마스터는 노신사의 손녀에게 그때 맛본 빵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자세하게 물었어. 다행히도 손녀는 그날의 경험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빵의 모양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어. 마스터는 그것을 받아 적고는 매일같이 최대한 같은 모양을 구현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계속했어. 그리고 매번의 시제품을 손녀에게 맛보였지. 그러던 어느 날 처음에는 여전히 맛을 느끼지 못했던 소녀가 ‘앗! 이거에요!’하고 맛을 되찾은 순간이 있었어.”

“우와! 드디어 찾아낸 거야? 아니 손녀가 말을 다시 한 거네?”

“맞아 맞아! 찾아낸 거야! 그뿐만 아니라 그 맛을 본 손녀는 ‘앗! 이거에요!’하고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그런데 문제는, 그게 빵을 구울 때마다 모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손녀가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거야. 아주 작은 차이에도 손녀는 맛을 느끼지 못했어. 고심하던 마스터는 결국 빵을 일정한 모양으로 찍어내는 틀을 만들기로 했어. 그래서 매번 여러 가지의 틀을 만들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해서, 마침내 손녀가 원하는 맛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틀을 개발하게 되었지. 그게 지금의 나의 모양이 된 거야.”

“우와~ 그랬구나. 너는 그렇게 해서 태어나게 되었구나.”



와플은 자신의 탄생스토리를 소녀에게 들려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소녀도 동경하던 와플의 탄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한없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사이에 그날 준비해 두었던 와플은 모두 소진되었고 이제 상점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오늘의 판매분이 모두 팔렸네. 어쩌니.. 오늘도 네게 나를 맛보게 해 줄 수 없게 되었어.”

“아니야. 괜찮아. 그래도 오늘은 너의 탄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런데 왜 나를 빨리 맛보지 않는 거야? 매일 너는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사라지곤 했잖아. 줄을 서서 나를 구입하면 나를 맛볼 수 있을 텐데. 왜 바라보고만 있는 거야? 혹, 이건 좀 실례이긴 하지만, 나를 살 돈이 부족한 거야? 그런 거면 내가 마스터에게 얘기해서 싸게 해 줄 수도 있는데.. 아니면 시식용이라도..”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너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해. 이렇게 서 있으면 거리 가득 퍼지는 너를 굽는 냄새를 마음껏 즐길 수 있거든. 비록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야.”

“뭐라고?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고? 무슨 말이야? 매일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잖아?”



소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며 조금씩 와플과 대화를 나누던 상점 창가에서 뒤로 물러서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오늘은 이대로 와플과의 만남을 끝내려는 듯합니다. 와플은 너무 궁금해져서 소녀에게 묻습니다.


“미안해. 내가 실례를 했는가 봐. 하지만 난 늘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 네가 궁금했어. 왜지? 왜 나를 맛보지 않는 거야?”

“미안. 나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아.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 또 올게. 그리고 곧 너를 맛볼 수 있게 될 거야. 내일은 꽃을 많이 팔 수 있을지 모르거든. 이제 곧 봄이 올 테니 말이야.”

“꽃을 판다고 너 꽃을 파는 거야? 그게 너의 일이야?”



계속읽기☞





_ written by 교토바다


[교토바다 단편선]

스타벅스 사내의 행동편향
질투의 화염
세계 최고의 와플과 나이를 잃은 아가씨
스타벅스 사내의 횡재
스타벅스 사내의 슬픈 쌍꺼풀
스타벅스 사내의 귀환




Sort:  

잔잔한 소설이네요
ㅎㅎ 첨뵙고 인사드리고
팔로해요 ^^
저는 수채화그려드기기, 서평, 목공 등 해요
두달 전 쯤 고양이도 그린적 있지요 ㅎㅎㅎ이제 또 뵈어요~

저도 일본 단편 소설 참 좋아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5
JST 0.030
BTC 59025.51
ETH 2591.97
USDT 1.00
SBD 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