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문학전집/희곡] 앨리스의 리코더 (단편)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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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enzen25

등장인물

  • 김주희 : 27살 취업준비생. 준호와 5년 째 열애중. 하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없이 준호와의 결혼만을 바라보고 있다.
  • 노숙자 : 10대 후반의 여자아이. 갈 곳이 없이 주희의 집에 들어온다.
  • 한준호 : 32살 주희의 남자친구. 현재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고, 주희와 결혼을 하기 위해 그녀의 취업을 돕고 있다. 미신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 수맥사 : 수맥을 봐주며 부적과 수맥 매트를 판다.


목차

  • 프롤로그
  • 1장. 준호와 떡볶이 데이트
  • 2장. 친구의 결혼식
  • 3장. 발견되는 숙자
  • 4장. 준호와의 면접 연습
  • 5장. 숙자와 꿈에 대한 대화
  • 6장. 준호의 분노
  • 7장. 리코더의 완성
  • 8장. 수맥사의 등장
  • 9장. 자유로운 주희


프롤로그



어슴푸레한 빛
침대 위에서 여자가 자고 있다. 어디선가 리코더 선율(할아버지의 탁상시계)이 들려오고, 뭔가 나쁜 꿈을 꾸는 듯 뒤척거리는 여자. 실루엣만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자가 방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침대 커버를 걷고 침대 아래로 들어간다. 음악 멈추고 짧고 높은 리코더 소리 삐익 삐익 두 번 울린다.

잠시 정적.

조명이 켜지고, 여자 일어나 책상에 올려져 있는 검은 봉지 안에 음료수 중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건다.

여자 : 오빠. 있잖아. 나 어젯밤에 자다가 목이 말라서 깼는데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돗물을 마셨는데 너무 비린 거야. 그래서 오늘… 아... 바빠? 아니, 그냥... 어젠 마실 게 없었는데 오늘은 마실 거만 있다, 뭐 그런 얘기야. 좀 이따 올 때 떡볶이 재료 사와. 맛있게 해줄게.

암전.



1장. 준호와 떡볶이 데이트



한 걸음 먼저 들어오는 여자, 남자가 뒤따라 들어온다.

주희 : (투정 부리듯) 여기까진 왜 들어오냐.
준호 : 내가 왜 못 들어가. (봉지를 건네며)
주희 : (받는다) 치. 안돼. 못 들어와. (장난스럽게 방문을 막는다)
준호 : 기껏 떡볶이 재료까지 사 왔는데 이럴 거야? (주희 볼 꼬집으며)
주희 : 이렇게 늦게 오는 게 어딨냐.
준호 : 회식이 길어졌어.
주희 : 그 여자 예쁘더라?
준호 : (사 온 것을 확인하며) 네가 더 예뻐.
주희 : 되게 친해 보이던데?
준호 : 집이 근처라 같이 온 것뿐이야.
주희 : 소개하는 모습이 영 미적지근하더라? 내가 창피해? 창피해? 창피해?
준호 : (웃음) 인마. 무슨.
주희 : 어머. 정말 창피 했나봐? 아… 새로 산 옷 입고 나갈걸.
준호 : 지금도 예뻐.
주희 : 빈말은. 배고파, 오빠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
준호 : 떡볶이 해 먹자.
주희 : (망설이며) 지금 먹으면 살찌는데.
준호 : 많이 먹어. 그래야 힘내서 공부하지.
주희 : 먹어도 별로 힘은 안 나던데.
준호 : 내가 해줄게. (상의 벗는다)
주희 : (받아서 벽걸이에 옷 건다. 새로 산 주희의 면접용 정장과 준호의 옷이 나란히 걸려있다) 좋다. 부부 같은데?
남자 : 결혼이 그렇게 좋아?
여자 : 오빠가 좋은 거지. 바보.

암전.



2장. 친구의 결혼식



결혼식장, 신부대기실.
주희 친구 웨딩드레스 입고 앉아 있다.
한껏 차려입은 주희와 준호, 신부에게 다가간다.

주희 : 축하해! 너 너무너무 예쁘다!
준호 : 축하해요!
친구 : (호들갑) 주희야, 왔어? 준호씨, 오셨어요?
주희 : (옅은 미소로 작게) 응… (다시 기운 내 밝게) 너 너무 예뻐.
친구 : 너도 예뻐.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어. 두 분 너무 잘 어울려요.
준호 : 저희 결혼식 때도 오시는 거죠?
친구 : 어머, 날 잡으셨어요?
주희 : (약간 놀란 듯 준호 바라보며) 오빠!
준호 : 내년 10월쯤에요. 주희가 드레스를 너무 좋아해요.
친구 : 얜 말도 없이. 하긴 부케 받는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짓궂은 표정으로) 얘 요즘에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 났잖아요.
주희 : (당황한 듯) 아냐.
친구 : (옛 생각에 젖은 듯) 결혼 준비하는데 옛날 생각나더라. 초등학교 때 너 진짜 귀여웠는데.
주희 : (무마하듯) 야아, 초등학생 때 안 귀여운 애가 어딨냐?
친구 : 너도 그때 생각나지?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난 듯) 나도 오늘 너한테 부탁할걸!
주희 : (약간 짜증난듯) 됐어. 옛날 얘기 그만해!
준호 : 뭔데요?
친구 : 궁금하죠? 주희 얘가 정말 특이한 애에요. 유명했다니까요.
주희 : (서두르며) 너 친구들 계속 들어온다. 우리 나가볼게.

주희와 준호, 무대 정면, 가로질러 걸으며.

준호 : 무슨 부탁하려고 했던 건데?
주희 : 비밀. 근데 오빠 우리 내년 10월에 진짜 결혼해?
준호 : 응?
주희 : 아까 그랬잖아.
준호 : (웃음) 그때까지 설마 취업 못 하겠어?

주희, 발걸음 멈춘다.

주희 : (흘겨본다) 꼭 내가 취업해야 결혼하겠다 이거지?
준호 : 그니까 열심히 하세요!
주희 : 치. 알았어. (말 바꾸며) 그나저나 축의금, 내가 냈어야 하는데, 꼭 갚을게.
남자 : 됐어. 우리 사이에 뭘. 지갑이나 잘 찾아봐. 맨날 칠칠맞게 흘리고 다니고.
주희 : 내가 그렇지 뭐.
남자 : 아, 그리고 잊지 말고 이번 달 토익 등록해.
주희 : 알았어.

무대 왼쪽에서 친구 부케 던지고 무대 오른쪽에서 부케 받는 주희.

주희 : (꽃냄새를 맡으며) 너무 예쁘다. 우리 진짜 당장 결혼해버릴까?
남자 : (빤히 보다가 이마를 살짝 밀며 가볍게 장난치듯) 김주희씨, 취업이나 하세요.
주희 : (뾰로통하게) 산통 깨기는. 기분 한창 좋았는데.



3장. 발견되는 숙자



무대 왼쪽에 침대, 오른쪽에 책상이 있다. 침대 밑 공간은 숙자의 행동이 잘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높다. 책상에 앉아있는 주희와 침대 아래 엎드려 있는 숙자에게 각각 조명. 침대 커버는 반쯤 거두어져 있고, 그 틈으로 숙자가 보인다.
침대 아래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가지고 노는 숙자. 그중에서 리코더가 제일 마음에 드는 듯 옷으로 닦고 입에 갖다 대기도 한다.

주희 : 자, 지원 동기는? (에이포 용지 보고 한참을 중얼중얼하다가 종이 내려놓고) 저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 무역학과를 통해 국제적 안목, 실무지식을 배웠습니다… (다시 종이 들어 바라보며) 아… 진짜 안 외워지네…

머리를 쥐어 싸고 있다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들어 친구에게 카톡 한다. 타이핑 효과음 들린다. 몇 초 후 카톡 알림음 경적소리(삐삐)가 난다. 카톡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타이핑 효과음과 경적소리. 숙자는 카톡 알림음을 따라 리코더를 살살 불지만, 주희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주희는 점점 더 빠르게 타이핑, 경적소리도 빠르게 이어지자 듣기 싫어진 숙자. 자기도 모르게 리코더를 삑 불어버린다.

주희 : (카톡을 멈추고 의심스럽게 두리번거린다) 뭐지?
숙자 : (깜짝 놀라 입을 막고 숨을 죽인다)

주희 다시 카톡을 시작해 타이핑 효과음과 경적소리 이어지고, 숙자 숨을 멈추고 있다가 딸꾹질을 한 번 한다. 주희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나고, 숙자 재빠르게 침대 커버를 내린다. 천천히 벽으로 다가가 옆집에서 무슨 소리가 나나 귀를 기울여본다. 천천히 방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숙자 : (크게 딸꾹질 두 번)

주희 동작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침대로 시선을 서서히 옮긴다. 겁에 질린 얼굴로 침대로 한발짝 한발짝 발을 뗀다. 천천히 허리를 숙여 침대 커버를 들추어 들여다보고 숙자를 발견,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주희 : 도… 도... 도도둑... (뒷걸음질 치며 손으로는 바닥을 더듬어 무언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숙자 : 아...아냐! 나 도둑…
주희 : (손에 잡힌 옷걸이를 숙자에게 겨누며) 그걸 믿으라고?
숙자 : 훔친 거 없어.
주희 : 이제 훔칠 거잖아!
숙자 : 언니, 돈도 없잖아.
주희 : 거 봐. 이미 뒤졌네.
숙자 : 아니! 언니! (갑자기 생각난 듯) 지갑 없어졌지?
주희 : 내 지갑 내놔. 이 도둑년아!
숙자 : 책상다리 밑!
주희 : 뭐?
숙자 : 거기 있다구.

주희 여전히 두 손으로 옷걸이를 쥐고 노숙자를 겨누며 뒷걸음질로 책상 쪽으로 향한다. 책상다리 밑에서 지갑을 발견. 오른손으로 옷걸이를 겨누고 있고 왼손으로 지갑을 줍는다.

숙자 : 거 봐. 그리고 서랍장 밑에. (주희 다가가고) 귀걸이! (주희 귀걸이를 줍는다) 그리고 이거. (침대 밑에서 물건을 던져 준다. 책, 머리끈, 거울 등 잃어버린 물건들이다)

주희 : (지갑과 귀걸이를 손에 든 채로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바라본다. 의아한 마음) 너 거기서 뭐해?
숙자 : 얼어 죽을 거 같아서.
주희 : 집에 가면 되잖아.
숙자 : 집 없어.
주희 : 그럼 친구네라도 가. 아님 찜질방이라도.
숙자 : 친구 없어. 돈도 없어.
주희 : 나보고 어쩌라고.
숙자 : 나 여기서 나가면 얼어 죽어. 그거 살인 방조야.
주희 : 나가. 안 그럼 신고한다.
숙자 : 아, 언니. 인심 한 번 더럽다.
주희 : 여기서 인심 쓰는 사람이 미친 거지.
숙자 : 나 못 나가. 아니, 안 나가! (리코더를 삑 분다)
주희 : (움찔하며) 리코더, 어디에 있었어?
숙자 : 여기 안에. (‘학교 종’ 멜로디를 리코더로 분다)
주희 : 이리 내.
숙자 : 싫어. 어차피 불지도 않으면서. 나 가질래.
주희 : 아냐, 불어.
숙자 : 진짜 치사하다. 내가 잃어버린 거 다 찾아줬는데.
주희 : 잃어버린 거 아니야. 내 방 안에 있었으니까.
숙자 : 억지 쓰는 거 봐.
주희 : 내놓고 나가.
숙자 : 싫어. (리코더를 등 뒤로 숨긴다)

주희가 침대 아래에 몸을 들이밀고 빼앗으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옷걸이로 침대 안을 휘젓는다. 숙자는 맞지 않기 위해 리코더를 내세우고, 옷걸이와 리코더가 칼싸움하듯 팽팽하게 맞서며 긴장감이 흐른다.

주희 : 야, 조심해! 그러다 고장 나겠어.
숙자 : (뭔가 눈치챘다는 듯) 왜애…? 고장 나면 안 돼? (눈치 보며 긴가민가 떠본다) 나 내쫓으려고 하면 이거 부러뜨릴 거야.
주희 : (곤란하다는 듯) 안 돼.
숙자 : 그러니까 며칠 밤만 있게 해줘. 그럼 무사히 돌려줄게.
주희 : (갈등)
숙자 : 언니, 나 진짜 나쁜 사람 아니야. (리코더의 머리 부분을 주며) 우선 이거 줄게.
주희 : 정말 며칠 만이다?
숙자 : 응, 고마워. 언니! 쥐죽은 듯 있을 테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침대 커버 내린다)



4장. 준호와의 면접 연습



무대의 오른쪽에 의자가 놓여있다. 정장 상의만 입은 주희, 침대 옆 스툴 위에 앉는다. 주위를 살피며 자세를 정돈하는 모습. 준호는 책상 의자에 앉아있다. 침대 밑에 숙자.

준호 : 자신 있게!

억지로 자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주희

준호 :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습니까?
주희 : 저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 무역학과를 통해 국제적 안목, 실무지식을 배웠습니다. 글로벌 회사로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귀사에서…
준호 : 너무 뻔해.
주희 : (시무룩해져서) 그런가?
준호 : 목소리에 자신감도 없고.
주희 : 자신이 없는 걸 어떻게 해...
준호 : 다음 질문. 학점이 그리 좋지 않은데… 이를 커버할 만한 김주희씨의 특별한 능력이 있나요?
주희 : 뭐? 아, 전… 그게…
준호 : (다그치며) 당황하면 어떻게 해!

주희 화난 듯 말이 없다.

준호 : 주희야,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면접관이라도 너 안 뽑아. 우리 정신 좀 차리자. 응?
주희 : (기운 없이)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오빠 오늘 집에 가서 할 일 있다며. 어서 가, 이제.
준호 : (손목시계 보며) 그래, 가봐야겠다. (일어선다)
주희 : 그래, 가.
준호 : (신발 신으며) 근데 집에 좀 이상한 냄새 안 나?
주희 : 응? (당황한 듯 웃으며) 냄새는 무슨. 빨리 가!

준호 퇴장. 주희 맥 빠진 듯 의자에 앉는다.

숙자 : (침대 커버 걷고) 언니 짱이다.
주희 : 뭐가.
숙자 : 면접이란 거 꼭 그렇게 해야 해?
주희 : (한숨 쉬며) 그렇지... (일어나 면접 때 입을 정장을 살펴본다)
숙자 :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따라 하며) 제 취미는 클래식 듣기입니다? 웃기시네. 맨날 카톡만 하면서.
주희 : 취미 아냐.
숙자 : 안 들어?
주희 :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뭐.
숙자 : 그럴 줄 알았어. (사이)

주희 에이포 용지를 보며 면접 예상 답안을 외운다.

숙자 : 시끄러워. 그거 듣기 싫어!
주희 : 듣기 싫으면 나가!
숙자 : 어? (리코더를 흔들면 짓궂게) 며칠만! 밖에 춥잖아.

계속 면접 예상 답안지를 보며 외우는 주희.

숙자 : 아, 배고프다 배고프다 배고프다!
주희 : 야!
숙자 : 머리가 없으니까 불 수도 없네.
주희 : 내일 면접이라니까?
숙자 : 나도 떡볶이 만들어줘. 떡볶이 주면 몸통 줄게.
주희 : 뭐?

암전.



5장. 노숙자와 꿈의 대화



침대 위에 조명 들어온다. 침대 밑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 숙자 몹시 기뻐 보인다.
리코더 두 조각을 합체시키고 바라보고 있는 주희, 옛 추억에 젖은 듯, 묘한 표정이다.

숙자 : 진짜 맛있다!

주희, 리코더를 손에 쥔 채로 스툴에 앉아 다시 면접 연습을 하는 듯 포즈를 잡는다.

주희 : 감사합니다.
숙자 : 언니 요리 좋아하나 봐.
주희 : 클래식 듣는 걸 좋아합니다.
숙자 : 근데 아까 그 오빠랑 결혼할 거야?
주희 : 그렇습니다.
숙자 : 결혼하는 게 꿈이구나?
주희 : 그렇습… (말을 멈춘 채 생각에 잠긴다)
숙자 : 매워. (손부채 부치며) 물. 언니 물 줘.
주희 : 나가.
숙자 : 무울.
주희 : 시끄러워!
숙자 : (놀란 듯. 세 개로 분리된 리코더의 꼬리 부분을 쥐고) 부러뜨려 버린다?
주희 : 작아서 힘들걸?

숙자 궁지에 몰린 듯 말을 잇지 못한다.

주희 : 어디 지낼 곳을 찾아봐. 이게 뭐니? 앞으로 뭐 하려고 가출해서 이래. 그렇게 살다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게 되는 거야.
숙자 : ...
주희 : 너 꿈은 있니? 나가서 당장 뭐 할지는 생각해봤어?
숙자 : (사이, 생각난 듯) 응! 나 꿈 있어! (가방에서 신문지를 주섬주섬 꺼낸다. 침대 밖으로 건넨다) 앨리스 스프링스!
주희 : 뭐? (신문을 받아든다)
숙자 : 덮고 자다가 심심해서 봤는데, 호주에 그런 게 있대. 사막이 빨갛대. (상상하면서) 빨간 모래. 거기 갈 거야.
주희 : (질책하듯) 그게 무슨 꿈이야?
숙자 : 보고 싶다니까? 신문은 흑백이라 사막이 빨간 지 검은 지 알 수가 없잖아.
주희 : 호주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빨간 모래를 보고 싶다고? 그게 꿈이라고?

사이. 주희 리코더를 만지작거린다. 생각에 잠긴 주희. 조명 어두워진다.

소리 - 주희의 학창시절 회상

(소리) 친구1 : 주희야! 너 장래희망 뭐 썼어?
주희 : 나 리코더 연주자. (리코더 만지작거리며)
(소리) 친구1 : 뭐? 리코더?
(소리) 친구2 : 삐리리 삐리리 그 리코더? 장난치지 말고.
주희 : 장난 아닌데. 나 정말 리코더 연주자가 되고 싶어. 초등학생 때부터 쭉 갖고 있었던 꿈이야.
(소리) 친구1 : 피아노도 아니고, 바이올린도 아니고, 웬 리코더?
(소리) 친구2 : (할아버지의 탁상시계의 멜로디를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며) 이런 거를 하겠다고?

일제히 조롱하는 웃음. 조명 밝아진다.

숙자 : 언니는 꿈이 뭔데? 취업하는 거? 결혼하는 거?
주희 : (걸어놓은 면접용 정장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한다)

잠시 사이. 암전.



6장. 준호의 분노



취한 듯 주희를 부르는 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조용해지고 잠시 후 주희 들어온다. 정장 차림의 주희.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는다. 이내 준호 취한 듯 비틀거리며 뒤따라 들어온다.

준호 : 나 안 취했어. 멀쩡해, 멀쩡해. (넘어진다)
주희 : (놀란 듯) 괜찮아? 잠깐만. (준호를 침대에 누이고 테이블에 있는 물을 가져온다)
준호 : 주희 너, 솔직히 말해봐. 일부러 취업 안 하는 거지?
주희 : 취했어. 이거 마셔.
준호 : 그럼 면접장 앞까지 가서 왜 안 들어갔는데?
주희 : 모르겠어.
준호 : (조소하듯) 모르겠어, 모르겠어! 넌 뭐 맨날 그렇게 모르는 게 많냐. 몰라도 그냥 하면 돼. 내 계획대로라면 너 작년에 취업하고, 올해 우리 결혼하는 거였는데 너 때문에 다 깨졌잖아.
주희 : 이런 얘기 그만하자. 지겨워 죽겠어.
준호 : 면접은 왜 안 본 거야? 응? 회사가 맘에 안 들어?
주희 : 아냐...
준호 :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있잖아. 나도 결혼은 해야겠고, 너도 하고 싶잖아.
주희 : 미안해.
준호 : 난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야... (침대에 걸터앉은 주희의 팔을 끌어 침대에 눕히려고 한다)
주희 : (준호의 손을 살짝 뿌리치며) 하지 마.
준호 : (일어나 앉아, 갑자기 상의 탈의하고, 주희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주희 : (뿌리치며 당황한 듯) 왜 이래. 오늘은 안 돼. (준호, 주희의 상체를 돌려서 키스하려고 하자, 주희 두 손으로 준호 어깨 밀치며) 이러지 마. 정말 안돼, 누가 봐.
준호 : 보긴 누가 봐.
주희 : 누가 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오늘은 하지 말자.
준호 : (감정 상한 듯) 너 갑자기 왜 이러냐? 이런 적 없었잖아.
주희 : (횡설수설) 아니, 왜... 꼭 눈에 보이는 것들만 우리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엿들을 수도 있고.
준호 : (그 모습을 빤히 보다, 걱정스럽다는 듯이) 너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 잠은 잘 자? 누구한테 들었는데, 집에 수맥이 흐르면 기가 허한 사람은 헛것도 보고 그런다고 하더라.
주희 : 아니... 뭐...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오늘은 (이마에 뽀뽀) 이걸로 끝내자.
준호 : (토라진 듯 다시 자리에 누우며) 됐어.
주희 : (울상) 아니... 그게 아니라.

숙자 킥킥거리는 소리 들린다.

준호 : (경계) 뭐야, 이 소린.
주희 : (당황하지만 이내 시치미) 무, 무슨 소리? 오빠 많이 취했나 봐. 환청도 듣고. 어디서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침대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흔들며 하지 말라는 표시를 한다)
준호 : 환청인가?
주희 : 피곤한데 술까지 마시니까.
준호 : 그렇지.... 이 오빠가 언제나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지… 그러니까아아.
주희 : 응?
준호 : 그러니까아아아.
주희 : 오늘은 좀 그렇다니까.
준호 : 안 돼?
주희 : 응.
준호 : (비아냥거리며) 그러세요? 그럼 되는 게 뭐냐?
주희 : 뭐?
준호 : 공무원 시험도 안 되고, 면접도 안 되고.
주희 : 오빠, 취했다.
준호 : 김주희씨! 당신은 쥐뿔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 한준호랑 결혼할 생각을 하셨습니까? 잘난척 하지마. 응? (옷 챙긴다) 앞으론 면접장까지 들어가는 걸 봐야겠어. (비틀거리며 퇴장)

사이. 조명 어두워진다. 침대 주위에만 조명. 주희 문을 바라 보고 있다. 그때 침대 밑에서 마지막 리코더 조각 굴러 나온다. 주희 리코더 조각을 바라보며 암전.



7장. 리코더의 완성



암전 속에서 프롤로그에 나왔던 노래(할아버지의 탁상시계) 들린다.
조명 들어오면 연주가 끝나고, 스툴 위에 앉아있는 주희 리코더를 무릎 위에 내려놓는다.
반듯하게 누워서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숙자.

숙자 : 벌써 끝났어?
주희 : 응.
숙자 : 언니 잘한다. 진짜. 잠이 솔솔 오네.
주희 : 졸려?
숙자 : 응. 언니 리코더도 완전한 하나가 되었네, 이제.
주희 : 응.
숙자 : 이제 나가야 하나...
주희 : 밖. 아직도 추워. 좀 더 있다 가.
숙자 : 아! 기다려봐.

조각 신문지를 꺼내. 빨간색 색연필로 색칠하는 숙자.

주희 : 뭐 주게?
숙자 : 내 꿈. (진지하게 그리는 숙자)
주희 : (자기 리코더를 본다) 나 이게 꿈일 때가 있었어.
숙자 : 뭐가?
주희 : 리코더. 맨날 입에 달고 다녔어. 음악 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리코더 광이었다니까. 선생님 결혼식에서도 불렀을 정도니까.

숙자 묵묵히 들으며 그림 그린다.

주희 : 너무 예뻤어. 행복하게 웃으며 고마워하던 그 얼굴. 그런 걸 더 보고 싶었는데.
숙자 : 보고 싶었는데?
주희 : 고 1 때 친구들이 장래희망이 뭔지 물어봤었어. 리코더 연주자라고 했는데 애들이 비웃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꿈이래.
숙자 : 원래 꿈은 말도 안 되는 거야. 나는 꿈에서 달나라도 가고, 별나라도 가고 그래.
주희 : (웃음) 그런가.
숙자 : (그림 건네며) 이거.
주희 : (받아서 바라보며) 앨리스 스프링스.
숙자 : 딱 알아보네.
주희 : 붉다. 참 붉어.
숙자 : 이런 느낌일까 싶어서. 색칠해봤어.
주희 : 이건 뭐야? 중간에 점.
숙자 : 언니랑 나. 이젠 다 준 것 같아. 나갈 일만 남았네.
주희 : 나가게?
숙자 : 응.

전화 벨 소리 울리고 주희가 전화를 받는다.

주희 : 몸이 안 좋네. 으슬으슬. 아니, 올 건 없고. 화 안 났어. 술 취해서 그런 건데, 뭐. 다시 왔었어? 자느라... 리코더 소리? (당황하며) 무슨 소리야... 오빠. 정말 몸이 안 좋아. 다음에 밖에서 보자. (전화 끊는다)

주희 : 갈 데는 있어? 어디로 가게?
숙자 : 그럼. 다 있어. 걱정하지마.
주희 : 우리 마지막으로 떡볶이 먹을까? 해줄게. 응? 먹고 가.
숙자 : (미소 지으며 주희 바라본다.)
주희 : 잠깐만 기다려. (나갈 채비 한다) 이것저것 좀 사 올게. (지갑을 들고 나간다. 퇴장)

숙자 침대 커버 내린다.



8장. 수맥사의 등장



조명 들어오면 무대 중앙에서 수맥사가 엘로드를 들고 눈을 감은 채 서 있고 그 옆에 준호가 진지한 얼굴로 서 있다. 어쩐지 사이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작.

준호 : 어때요?
수맥 : 어허! 재촉하지 말고.

수맥사 엘로드를 일자로 들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준호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침대 근처로 가자 엘로드가 엑스자로 겹쳐지고 수맥사 몸을 부르르 떤다.

수맥 : 어허! 죽음의 자리로다!
준호 : 수맥이 흐르나요?
수맥 : 흐르고말고! 어디 흐르다 뿐이야? 아주 심각해. 자네, 요새 여기 온 이후로 집중력도 떨어지고, 공부도 잘 안되고, 하는 일마다 꽝이지?
준호 : (동의하는 고갯짓을 크게 하며) 네. 네. 맞아요.
수맥 : 위치가 틀렸어. 저러니 살 수가 있나.
준호 : 뭐가요? 침대가?
수맥 : 집 안에 안 좋은 일이 있지? 누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이상한 일이 생기거나… (눈치 본다)
준호 : 어… (뭔가 말할 듯 말듯) 리코더 소리가 나던데?
수맥 : (기다렸다는 듯) 어! (리코더 소리라는 말에 경직된다) 리코더. 어. 그렇지. 음... 불행의 전주곡이야!
준호 : 네?
수맥 : (다시 엘로드를 들어 침대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계속 엑스자를 만든다) 한 두 군데가 아니야. 지금 수맥이 침대 주변으로 세 군데가 흐르고 있어.
준호 : (자기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역시.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수맥 : 침대 위치를 바꾸고 수맥을 막아야지. (약간 눈치를 보며 가방에서 부적과 매트를 꺼낸다) 수맥을 차단하려면 부적과 매트를 써야 하는데...
준호 : (말을 자르며) 침대를 어디로 옮기면 좋을까요?
수맥 : (약간 실망한 듯 다시 주춤거리고 일어나 엘로드를 들고 성의 없게 돌아다니다 침대 오른쪽에서 멈춰서) 여기네, 여기!
준호 : (침대 쪽으로 걸어가 침대 헤드를 잡으며) 그럼. 당장 옮기도록 하죠.
수맥 : (짐을 옆에 두고 엉거주춤 침대로 가서) 으흠. 이렇게까지는... 보통 안하는데...

둘이 침대를 잡고 옮기려는 찰나 비닐봉지를 든 주희가 들어온다.

주희 : (놀라서 둘을 번갈아 살펴보며) 지금, 뭐 하는 거야? 저 사람은 누구야?
준호 : (당황한 듯) 어, 주희야 왔어? 너 몰래 하려고 그랬는데 일이 이렇게 되네. 많이 놀랐지?
주희 : 뭘 몰래 해?
준호 : 너 요즘, 공부 잘 안되고, 헛거 보고, 잠 잘 못 자는 거 다 네 잘못이 아냐. 침대만 옮기고 수맥만 막으면 돼.
주희 : (당황해서 몸 둘 바를 모른 채) 침대를 옮긴다고?
준호 : 어. 아저씨 하나 둘 셋 하면 들어주세요.
주희 : 왜 오빠 마음대로 침대를 옮겨. 싫어, 안돼!
준호 : 금방 끝나. 하나, 둘
주희 : 하지 말라고!
준호 : 셋!

준호와 수맥사 주희의 말을 무시한 채 침대를 옮긴다.

주희 : 안돼!!

침대 아래에 아무도 없다.

주희 : (노숙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서) 어디… 갔어? 얘... 얘…! 너 어디 있니? 내가 너 만들어주려고 떡볶이 재료도 사 왔어. 어디, 어디 갔어?
준호 : 그게 무슨 소리야?
주희 : (화를 내며) 오빠가 쓸데없는 짓을 해서 애가 없어졌잖아. 걔 갈 곳 없는 애야. (숙자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나가려 한다)
준호 : (주희를 막아서며 손목을 잡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주희 : 말 그대로야. 집 없는 애 돌봐주고 있었다고.
준호 : (분노에 차서) 넌 어떻게 된 애야!!!

사이.

준호 : 모르는 애 돌보면서, 면접도 안 가고 집 안에 쳐박혀 있었던 거야?
주희 : 그게 중요해? 애가 지금 없어졌다니까?
준호 : 자선 사업가 나셨네. 그래, 자선 사업하다 보니 좋디? 너보다 못 나고 불쌍한 사람 뒷바라지하니 성인군자라도 된 기분이냐? 그래, 이딴 식으로 노숙자나 집으로 끌어들이고 보살피는데 공부가 되겠냐? 넌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

사이.

준호 : (주희 어깨를 부여잡고) 취업도 하지 마. 그냥 결혼하자. 안 되겠다. 내가 너무 욕심부렸나 보다.

주희 준호 손을 뿌리치고 못 참겠다는 듯 달려가서 리코더를 미친 듯 불어 재낀다. 다가가서 준호 말린다. 저항하는 주희.

준호 : (주희의 어깨를 미친 듯이 흔들며)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주희 : (삐- 리코더를 분노에 차 아주 크게 불고, 심호흡한 뒤 말한다) 날 좀 봐.
준호 : 너, 미쳤구나.
주희 : 아니, 나 안 미쳤어. 그리고 안 할 거야. 취업도, 결혼도.

주희 리코더로 신들린 듯한 클래식 연주를 시작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준호,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치다 문을 꽝 닫고 나간다. 주희 계속 리코더를 불다가 주저앉는다. 수맥사. 눈치 보다가 부적 한 장을 남겨 놓은 채 퇴장한다.

수맥 : 소원성취부.

주희 울음을 참는다. 수맥사가 던져두고 간 소원성취부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주희 : 내 소원이 뭘까? (사이, 밝고 크게 말한다) 모르지 뭐, 이제부터 알게 되겠지. 그렇지? 응?

(소리) 숙자 : 응. 알게 될 거야.

주희 침대 아래로 들어간다. 그 모습이 숙자와 닮아있다.

암전.



9장. 자유로운 주희



모래바람 소리 들린다. 붉은 조명, 와글와글 사람들 소리 들리고 이내 멀어진다. 주희 홀로 등장한다. 주위를 둘러보는 주희, 더운 듯 옷깃을 당기며 손을 이마에 얹어 그늘을 만든 채 태양을 바라본다. 눈부신 듯. 그러나 도착한 것이 기쁜 듯.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무릎 꿇고 앉아서 모래를 살펴본다. 주머니에서 휴대폰를 찾더니 그 주변을 빙 영상을 찍는다. 그 영상이 무대 화면에 뒤 스크린에 재생. 그리고 셀카 모드로 다시 바꿔서 자기 모습과 사막을 찍으며 말한다.

주희 : 정말 붉지?

스크린 속에 밝게 웃는 주희의 얼굴이 크게 보인다.
조명 더 강하게 붉어지다 암전.

스팀문학전집_@zenzen25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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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먹먹해집니다~

스팀 문학전집 시작했군요. 잼나게 읽을게요. ^^

왠지모르게 숙자는 주희가 만들어놓은 정신분열적 자아인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중의 한곡!

소원성취부!
수맥사 귀여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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