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Otra Otra Otra..

in stimcity •  3 months ago




Otra Otra Otra..

+ Pyrénées, France


“멀린, 예배는 어떻게 하죠?”

 
독실한 크리스챤이자 교회 사역자인 한스는, 여행의 첫 번째 주일을 어떻게 성수해야 할지 묻고 있습니다.

 

“(그걸 마법사에게 묻다니) 캠핑장에서 드리는 게 어때?”
 
“음.. 그것도 좋겠네요.”

 
덕분에 아직 박스에 묶여있던 악기와 장비들의 봉인이 풀리고, 루르드의 캠핑장에서 유럽 버스킹 투어의 첫 연주이자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Jesus, beautiful savior
God of all Majesty, Risen king ..
How wonderful, How beautiful,
Name above every name, exalted high..

 
아름답고 청아한 한스의 노래가, 아니 찬양이.. 텐트를 넘어 캠핑장과 루르드의 계곡 사이로 흘러갑니다. ‘원죄없는 잉태’를 만났던 베르나데트에게, 그 샘물에 몸을 담그려고 기다리는 아픈 마음들에게, 그리고 직관을 따라 고단한 삶을 살아온 마법사와, 이 모든 역사의 현장에서 묵묵히 인생들의 선택을 감내해 낸 하늘 위 그분의 가슴에까지.. 한스의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멀린은 버스킹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의 목소리에 끌려 돌아보거나, 멈춰 서거나,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버스킹을 봤지만, 노래만으로 바쁘게 지나치려던 사람들을 멈춰 서게 하거나, 뒤돌아서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온전히 그 노래에 담긴 에너지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거든.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었어.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표정하다가 마치 박카스를 한 사발 들이킨 듯,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변화되는 모습은 정말 드라마틱하더군.

 
아름다운 노래는 캠핑장을 돌고 돌아 캠핑장 주인의 귀에 가서 꽂혔습니다.

 

“와우~ 너희 밴드니? 너무 아름다운데.. 괜찮으면 저녁때 우리 레스토랑에서 공연해 주지 않을래?”

 
아하~ 이렇게 유럽에서의 버스킹이 시작되는군요. 루르드가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캠핑과 버스킹의 시작점은 여기라며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나는 사실, 유럽에서 버스킹을 한 번도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허가사항인 곳이 많다고 하고, 경험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별거 아니더라구.. 거의 가는 도시마다 별 제약없이 버스킹을 할 수 있었으니까.

 
막상 부딪혀 보면, 뭐든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용기를 내는 자에게 세상은 알아서 그들의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렇게 별일 없이, 유럽에서의 버스킹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아직 호흡이 잘 맞지 않고, 한스의 목소리도 풀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따뜻하게 이 상처 많은 밴드의 음악을 들어 주었습니다.

 

“저희 밴드는 이 여행을 떠나 오기 전, 헤어짐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저는 그 감정을 노래에 담아 보았어요. 지금 제가 부를 노래입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언제쯤 내 마음의 눈물은 멎을까.
초라한 지하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얻고서,
이것 저것 꾸미면 좋아질 거라
어색한 웃음으로 만들어 갔었지.
너와 함께 해서
초라하지 않았던 이곳은
너 없는 공허한
차가운 무의미함일 뿐.
넌 이미 떠났는데,
난 아직 너의 방인 줄
착각하며 열어 봐.
아직도 니가 보여..
아직도 니가 들려..
아팠던 기억도 묻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인지
이런 내가 낯설고 아파도
너를 간직하며 살까 봐 그래.

 
한스는 아직 아픕니다. 상처는 부정-분노-좌절-수용의 단계를 거치며 나아지는 데, 아직 수용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는 더 아프고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버스킹이 끝나자 어떤 영국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인사를 합니다. 가사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입니다. 한스는 버스킹 중에 자신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와 함께 샘 스미스의 ‘I’m not the only one’을 자주 불렀습니다. 이별의 아픔이 담긴 두 곡 모두 한스의 사연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어떤 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밴드의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또 어떤 이는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서서 공연이 끝나도록 노래에 집중해 주었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나 다양한 아픔이 있고 상처 난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순례를 떠납니다. 아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구멍 난 마음을 조금이라도 메워 보려고, 그 아픔과 상처의 현장을 떠나 세상 다른 곳에서 하염없이 걷고 또 걷습니다. 멀린은 그런 순례자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고단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내는 가련한 영혼들에게 ‘괜찮다 괜찮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루르드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알려진 스페인의 순례길의 시작점이자 경로입니다. 루르드보다 더 먼 곳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루르드를 지나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피레네산맥의 초입에 위치한 생장드피에르포트에서 순례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장드피에르포트를 떠나, 피레네산맥을 넘어서는 첫 고갯길에 오리손 산장이 있습니다. 순례를 시작한 순례자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육체적 한계와 맞닥뜨리게 되는 오르막길의 끝부분에 위치한 오리손 산장에서, 이들은 두 번째 버스킹을 열었습니다. 한스는 노래를 합니다.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육체의 고통으로 전환하여, 눈물 대신 땀을 쏟아내고 쏟아내어 스스로를 위로하는 순례자들을, 따뜻하게 다독이는 노래를 부릅니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순례를 시작하지만, 육체의 한계를 만나면 마음은 하나같이 ‘그만 둘까..’를 되뇌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수도 없이 붙들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상처 난 마음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히려 어려운 도전과제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상처 난 마음 붙들고 앉아 백날 울어봐야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눈물을 땀으로, 마음의 고통을 육체의 고통으로 전환하여 한발 한발 나아가면, 나도 모르게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가뜩이나 지친 마음을 붙들고 더 큰 도전을 향해 가는 것은, 잔인한 일 같이 여겨지고 마음이 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처 입은 한스 또한 매번 버스킹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버스킹을 하는 게 어때? ”
 
“ … ”

 
직관을 따라, 멀린은 매번 버스킹 장소를 찾아내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한스는 말이 없습니다.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일단 버스킹을 하면 에너지를 얻고 마음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하면 할수록 더 알아집니다. 그러나 왠지 자신이 없고 내키지가 않습니다. 마음에 부담이 되는 환경들이 눈에 들어오고 온갖 핑계거리들이 유혹처럼 맴돕니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는 매번 반복됩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한스는 왜 자신이 없을까요? 왜 마음이 내키지 않을까요? 노래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시작한 청춘의 시간을 이미 많이 지나왔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또 이런저런 깨달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자제하고 기다려 왔습니다. 어쩌면 이제 기다리던 그때가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막상 주어진 환경은 탐탁지 않고 풀어가야 할 상황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이유를 따지자면 천 가지도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노래하려고, 그렇게 하고 싶던 노래를 하려고 유럽까지 왔습니다. 완벽하게 갖춰진 무대는 아니지만, 내가 노래하면 듣는 사람들이 있고 감동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유럽에서 말이죠. 그래도 영 내키지가 않습니다.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듯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간절히 원하고 염원하던 일이 막상 벌어지면 당황합니다. 그리고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매우 오랫동안 추구하던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좋다고 신나서 반기기보다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워하며, 심지어 물리고 싶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실은 그 간절히 염원하던 것들을 최대한 미뤄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삶에 가져오려고 한 발 한 발 달려온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매우 멀리 두고 다가서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그러다 누군가 내 뒷덜미를 붙들고 성큼 원하던 그곳에 가져다 놓으면 심지어 화가 납니다. 사실은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꿈에서, 내 소원에서, 실은 우리는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질까 두려워 도망치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잘 이해가 안가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서 꿈을 성취하려 들지 않고 소망의 영역에 가두어 놓습니다. 이것은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불가능의 영역에 남아있어야 하고, 그래야 매일매일 나는 그것을 꿈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우리는 자꾸 도망치게 됩니다. 누군가 내 꿈을 이뤄줄까 두려워 도망치게 됩니다.

아마도 한스는 사역으로, 공동체로, 자꾸 도망쳤던 것 같습니다. 노래하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지만, 그 자리에까지 올라가기 위해 감당해야 할 순간들과 감정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과 감정들을 지금 버스킹의 현장에서 계속 직면하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버스킹을 하기만 하면, 에너지를 얻고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도망가고 싶습니다. 사역으로, 공동체로.. 그리고 여기 여행 중에 한스는 자꾸 요리로 도망갔습니다. 의무 속에 자기 마음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제가 식사 담당이잖아요. 제 맡은 역할을 다해야 하잖아요.”

 
바게트 빵에 쨈만 발라먹어도 된다는 멀린과, 뭘 먹거나 차라리 자빠져 있을 자유시간이나 좀 더 줬으면 좋겠는 잭에게, 한스는 자꾸 명품요리를 선사합니다. 마라톤보다 입 떼는 게 더 힘든 두 사람에게, 자꾸 요리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아야 하는 부담을 가득 선사합니다. 참다못한 멀린이 말합니다.

 

“한스, 차라리 식당을 차려.”
 
“ ... 그 소리를 또 듣네요.”

 
한스는 그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답니다. 그러면 요리사가 되고 싶은 건가요? 식당이나 차리면 될까요?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도망치는 한스를 붙든 건 그의 아내였습니다.

 

“여보, 차라리 신학교를 가.”

 
공동체로, 사역으로 도망치던 한스를 붙든 아내의 한마디. 한스는 그 길로 달려 나와 이 밴드를 결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한스는 노래를 해야 합니다. 한스는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저렇게 사람들이 감동하는 데, 한스의 노래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저렇게나 기다리고 있는데.. 한스는 그런데 그런데 또 도망갔습니다. 기껏 밴드를 만들어 놓구서는 노래는 안 하고 사역을, 공동체를 또 시도합니다. 밴드와 노래를 해야 할 텐데. 밴드를 붙들고 사역을 합니다. 공동체를 합니다. 아~ 한스를 어떻게 할까요? 자꾸 도망가는 한스를 어떻게 할까요? 요나처럼 고래 뱃속에라도 처넣어야 정신을 차릴까요? 결국 자꾸 사역을, 공동체를 하는 데 밴드는 깨어져 나갑니다.

 

‘노래를 해야지. 한스야 노래를 해야지. 네가 노래를 했으면 밴드가 깨어졌겠니..’

 
그렇습니다. 밴드와 노래를 했으면, 이렇게 거리에 나가 버스킹이라도 했으면, 밴드는 깨어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모르는 사람도 감동시키는 그의 노래가 팀을, 밴드를, 하나로 묶어 내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멀린과 한스, 잭, 세 사람의 여행 중에도 여러 스트레스의 순간들이 있고 갈등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한스가 노래하던 그 시간에만 이르면 모두가 녹아내렸습니다. 다시 하나 되고 다시 나아가고..

한스는 모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그래서 한 달란트를 소홀히 여겼던 그 일꾼처럼, 한 달란트도 아닌 다섯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어두려고 합니다. 한스는 모릅니다. 자신의 노래에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한스가 사역을 멈추고, 공동체를 내려놓고, 요리로 도망치지 않고, 노래를, 노래를 했더라면.. 밴드는 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모든 멤버와 함께 버스킹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유럽을 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도망치던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에서, 자신을 직면하고 도망쳐 왔던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여전히 도망치고 있을지, 이제는 기쁨으로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들을 경험하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또 도망치다간 갈 곳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안되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창피를 당할까, 망신을 당할까 두려워 도망쳤던 모든 장면들 속으로 용기를 내어 들어가야 합니다. 다시 붓을 잡고, 마이크를 잡는 그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세상에는 오로지 걷고 있는 자신만 남습니다. 피레네산맥의 안개를 뚫고 뚜벅뚜벅 걸어 나온 순례자의 발걸음만 남습니다.

 

마음의 구름은 피레네산맥에 걸려 넘지 못하고
환하게 걷힌 네 마음은 너만 생각하여라.

 
세 번째 버스킹이 있었던 스페인 팜플로나의 이루나 카페 앞에서, 두려움의 안개를 뚫고 나온 한스에게,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Otra, Otra, Otra..”
“앵콜! 앵콜! 앵콜..”
“노래해! 노래해! 노래해..”

 
그렇습니다. 한스는 노.래.해.야. 합니다.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Otra Otra Otra..

이전글 | 글목록 | 다음글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