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소녀는 마셨습니다

in stimcity •  3 months ago




소녀는 마셨습니다

+ Lourdes, France



계곡 사이로 그림 같은 절경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캠핑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일행의 첫 번째 캠핑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공간입니다. 자리를 잡고, 텐트를 펴고 하는 일이, 처음이라 서툴지만 또한 즐겁습니다. 잠시라도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는 캠핑은 사람을 정화시켜 주는 듯합니다.

이곳은 '루르드'입니다. 병을 낫게 한다는 기적의 샘이 있는 '루르드의 성모발현지'입니다. 1858년 신의 소녀는, 계시를 받던 때의 쟌다르크만 한 어린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자신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소녀에게 18번에 걸쳐 자신을 만나주기를 청합니다. 14살의 베르나데트는 소녀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소녀가 현현(顯現)했던 그 자리에 매번 찾아갑니다. 그러나 소녀는 물끄러미 베르나데트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방앗간 집 딸이었던 베르나데트는 천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난한 집안 살림을, 생계로 바쁜 어머니 대신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날도 소녀는 2월의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땔감을 주우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신의 소녀가 베르나데트에게 자신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베르나데트는 이 현현한 신의 소녀에게 묻습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니? 나는 너를 뭐라고 부를까?”
 
“나는 ‘원죄 없는 잉태’란다.”

 
현실의 소녀에게는 이름이 필요합니다. 나와 너를 구분 짓고 있는 이 현실의 소녀는, 현현한 신의 소녀가 자신인 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의 소녀는 자신을 구분 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이름을 묻는, 이름을 가진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자신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고 말할 뿐입니다. 신의 소녀는 원죄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잉태되었으나 태어나지 못한, 아니 태어났는지 태어나지 못했는지 아직 알 수 없는 존재.. 그러나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원죄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원죄가 없이 잉태되었다 말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종교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기원을 죄로부터 찾기로 하였습니다. 거대한 결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생(生)의 시작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고, 저주로부터 기원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 대신 사후의 삶을 획득했습니다. 덕분에 생(生)의 도전과 꿈은 가치를 잃었습니다. 축복은 사후로 미루고, 현생의 삶은 원죄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생망(이번 생(生)은 망했어)’입니다. 이후로 종교적 삶은, 생(生)을 저주로 여기고 그 저주에서 구원해 줄 메시야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메시야는 원죄가 없어야 했습니다. 인간의 종교적 논리로는 말입니다. 그 메시야는 그래서, 단지 인간들이 스스로를 원죄의 후손으로 여기는 탓에, 십자가에 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부활 당했습니다. 이 타락한 세상의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죽었다가, 다시 소환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더러운 성(性)적 과정 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생(生)을 축복으로 여기던 시절, 탄생은 경이로운 것입니다. 죄가 결부될 곳이 없는 매우 신성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생(生)을 저주로 여기는 인류의 관념에, 그 생(生)의 시작을 결정짓는 ‘성(性)’은 더럽고 타락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아울러 그 원죄로 물든 생명체를 잉태한 여성의 자궁과, 잉태를 준비하는 월경은 또한 더럽고 불결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생(生) 이 축복이던 시절의 사람들은 월경을 성(聖)스러운 것으로 여겼어. 그 피를 받아다 농사짓던 밭에 뿌리기도 하였지. 다산은 축복의 상징이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현재의 삶을 누리고 즐겼지. 그러나 원죄를 전면에 내세우고 등장한 종교들은, 인류의 생(生)에 브레이크를 걸고, 모든 삶의 기쁨과 열정들을 천국으로, 다음 생(生)으로, 사후로, 노년으로, 나중으로, 내년으로, 내일로 미루어 두게 만들었지. 사람들은 욕심이 난 거야. 현세의 노력으로는 얻지 못할 것 같은 보상을, 천국에서는 면류관으로, 다음 생(生)에서는 임금님으로, 노년에 누리는 안락한 삶으로, 나중에 타게 될 연금으로 보장받게 될 거라는 환상에 빠져든 거야. 그래서 악마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고 말았지. 악마가 요구한 것은 이것뿐. 성(性)을 죄의 도구로 만드는 데 합의하는 것이지.

 
이 통제된 인류의 근원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생(生)의 에너지를 공급해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곡된 관념은 자신들의 존재 근원이자, 생(生)의 에너지가 되어 줄 성(性)을 죄악시함으로써, 불행하고 병든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던 베르나데트에게 신의 소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어. “구덩이를 파고 고인 물을 마시렴.” 그러나 베르나데트는 그 물을 마실 수가 없었어. 너무 더러웠거든. 손으로 물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가 구역질을 하며 쏟아내기를 반복한 끝에, 결국 베르나데트는 더러운 샘물을 마실 수 있었어. 그 이후로 그 구덩이에 물이 샘솟기 시작했고, 그 물에 몸을 적신 사람은 병이 낫게 되었지. 죽어가던 아이가 살아나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되었어. 그러자 아프고 병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기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어.

 
한 소녀의 순종과 용기로 말미암아, 루르드에서 생(生)은 축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은 성(聖)스러운 것을 더러운 것으로 여겼던 인류의식의 전복으로 가능했습니다. 쟌다르크처럼 순종했던 어린 소녀 베르나데트가 구역질을 견뎌내고 더러운 그것을 마심으로써, 생(生)의 기적을 루르드의 작은 샘에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원죄 없는 잉태’라고 자신을 소개한 신의 소녀는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역할은 거기까지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원죄 없는 잉태’로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이, 베르나데트 그리고 쟌다르크와 같은 소녀들의 충성과 용기로 말미암아, 생(生)을 다시 축복으로 여기는 세상으로 돌아와야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性)을 저주의 도구로 여기기를 멈추고, 생(生)의 축복과 삶의 기적, 사랑의 도구로 받아들이게 되는 그때에 말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몸을 담그려는 기적의 생수는, 사실 마시기도 어려울 정도로 더러워 보이던 구정물이었어. 아니 베르나데트의 관념 속에서 그렇게 여겨졌겠지. 땅에서 솟아난 물이 더러워 봐야 얼마나 더럽겠어. 지금처럼 화학물질로 오염되어 있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나 소녀는 관념을 극복했지. 그리고 신의 소녀를 신뢰했어. 그 믿음이 소녀와 그의 마을, 그리고 나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순례를 멈추지 않는 병든 신도들을 구원했던 거야.

 
베르나데트에게 신의 여성성이 소녀의 모습으로 현현하기 4년 전, 로마의 종교지도자들은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 를 선포합니다. 교리적으로는, 원죄 없는 신의 아들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 또한 원죄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원죄 없이 태어났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여성성은 루르드의 작은 산골마을의 어린 소녀에게 현현하여, ‘잉태하는 일에 원죄 따윈 없단다.’라고 비의를 알려 주었습니다.

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닙니다. 신은 남성이고 여성이고, 또한 그 둘을 합하고 넘어선,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관념 속에, 신은 남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남성은 창조의 신비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잉태할 수도 낳을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잉태되고 태어날 뿐입니다. 여성에 의해서 태어나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남성성은 창조를 모르고 잉태를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심판과 보상뿐입니다. 태어난 존재가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은,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후, 버려진 아이들처럼 결핍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전원을 차단당한 전자기기가 휴대용 배터리에 목을 매듯,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버림받은 아들들은 자신의 탄생을 저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모태로부터 격리되고 배척당한 아들들은 생(生)을 저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속에 침잠하고 모든 생(生)을 분노하며 저주합니다. 한없이 유약하고 의심 많던 샤를 7세처럼, 자신보다 낮은 존재들 속으로 숨어듭니다. 그리고 그런 버림받은 아들들은 자신의 존재를 한눈에 알아보는, 자신을 원죄 없이 태어난 존재로 여기는 성녀들을 통해서만.. 자신의 탄생 방식을 죄로 여기지 않는, 그래서 승리를 위해서라면 규율을 어기고 남성의 복장을 착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율법을 넘어선 마녀들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난 침수의식에 참가해 보려고 하는 데 너희들은 어떡할래?”
 
“저희는 기다리고 있을게요.”

 
멀린은 루르드 성지의 침수의식에 참가하기로 합니다. 침수의식은 기적의 샘물에 발가벗고 들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담그는 의식을 말합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멀린은 자신을 자연으로 돌려줄 이 의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시작한 캠핑 또한 인류가 잊고 있는 자연의 삶을 경험하게 해 주는 좋은 의식입니다. 흙에서 나온 자가 흙으로 돌아가고, 물에서 나온 자가 물로 돌아가는 일. 이미 결정되었고 흘러가고 있을 뿐인 탄생과 죽음의 경로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 근원을 잊지 않고 되새겨 보는 일은 기적의 여부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일입니다. 멀린, 어떻습니까? 기적의 샘에 몸을 담그니 몸이 좋아지던가요?

 


몰라, 시원하긴 하더라. 옷을 다 벗고 물에 들어가려는데, 물 위에 앞 사람들의 털들이 둥둥 떠다니더라구. 나 참..

 
멀린.. 베르나데트는 그걸 마셨답니다.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소녀는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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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그물을 어떻게 마십니까 .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