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살색의 마법사 멀린과 조카튼 살색의 인간들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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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하나 내놓으라 하면, 좋아 씨발 다 가져가라며 팬티까지 다 벗어 던진다. 운명이 이별이다 하면, 좋아 씨발 독고다이다 하며 모든 연락을 끊어 버린다. 운명이 가난이다 하면, 좋아 씨발 거지가 되어주마 하며 전 재산을 날려버린다. 운명이 고난이다 하면, 좋아 씨발 바닥을 뚫고 처박혀버리자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운명이 질병이다 하면, 좋아 씨발 이참에 죽어버리자며 가차 없이 몸을 굴린다.



그렇게 살았단 말이다.



사람들은 운명과 싸우지 말라며, 운명을 거스르지 말라 타이르지만, 이 새끼가 나를 쥐좆으로 보는데 머 하자고 그것을 따른단 말인가? 내가 따르는 운명은 그 방향의 극단이다. 네 놈이 한 발을 잡아채면 버티는 게 아니라 '이 새끼가' 탁! 쏘아보며 열 발, 백 발을 뒤로 물러나 버린다. 네 놈이 절벽에서 밀어버리겠다 협박하면 오호라 당해주지 하며 제 발로 뛰어내려 버리는 것이다. 이놈의 운명은 겁주고 협박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놈이니 나는 그놈에게 반발하고 되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하게 동조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놈이 질렸다며, 너 같은 놈 처음 봤다며 손을 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게 나의 운명이다. 마법사의 운명이다.



살색의 감독이 되려면 적어도 그 정도 배짱과 용기는 있어야 한다. 운명을 극복하지 못할 거면, 운명이 내놓으라는 것에 열 배, 천 배를 놈이 못 먹게 발로 밟고 강물에 처박아 버려야 한다. 그게 낫다. 울고불고 애걸복걸하는 것보다 그게 멋있다. 그걸 너는 하지 못할 거다. 너는 기껏해야 일당이나 버는 엑스트라나 하고 있을 테니.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냐고 고달프지 않냐고 안쓰런 시선으로 묻겠지만, 그렇게 안 살면 다른 방법은 있냐고 되묻고 싶다. 어차피 한 길로 모는 운명이라면 그 길의 끝까지 먼저 달려가 버리고, 어차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국면이라면 그 국면의 바닥까지 먼저 달려 내려가 버리면, 세상에 그렇게 편한 게 없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다.



살색의 감독으로 살고 싶었던 건 아니다. 운명 이노무시키가 길은 이것뿐이라고 엄포를 놓으니, 딴 길은 없다고 협박을 해대니, 그러자면 스크린은 갑갑하고 나는 차라리 마법사가 되겠다며 살색의 실사판을 마구 찍어대 버렸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그걸 기적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기라 하고, 누군가는 패륜이라 하고, 누군가는 행복이라 하고, 누군가는 위험한 인간이라 부르지만, (고맙다. 인간으로 여겨줘서) 나는 씨발 운명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운명의 뒷통수를 날려가며 앞질러 다니고 있는 것이니, 네가 보는 건 이게 뭔지 모르겠는 이상한 광경들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나를 만나거든 연기를 하지 말고 살을 섞어야 할 것이다. 운명 보다 선택을, 마음을, 용기를. 내가 찍는 실사는 온통 살색이니 가면으로 온몸을 뒤덮고 나올 거면 불에 타 죽을 각오는 해야 하는 것이다. 신음소리가 너무 뜨거워 온몸에 불이 붙어 버릴 테니까.



오늘 <20세기의 여름>에 살색의 감독을 꿈꾸는 또 한 명의 청춘이 조인했다. 아 그는 청춘이 맞다. 젊은 마법사와 띠동갑이란다. 그는 '조까'하는 마음으로 등짐을 지고 벽돌을 나를지언정, 자기 자신이 아닌 채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 나갈 거라고 했다. '조까'하는 마음으로. 마법사는 그렇다면 좋아! 씨발 성공도 하고 전과자도 되고, 동료를 위하기도 하고 동료를 팔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바람도 피고, 부자도 되고 노숙자도 되는 거다, 대신 '함께', '계속' 하는 거다 선언하며 그를 캐스팅 했다. 그런 거다. 조카튼 운명에게는 '조까' 하고 앞질러 가서, 도덕이고 법이고 다 조까고 살고 싶은 대로 살면 그만인 거다. 그게 살색이다.



<20세기의 여름>에는 이런 조카튼 살색의 인간들이 자꾸 모여들고 있다. 누군가는 정신병원이 천국 같았다 하고, 누군가는 현실감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유체이탈을 감행하고, 누군가는 내가 내 맘대로 직장 때려치는데 왜 부모가 걱정을 하냐며 어이없어하고, 또 누군가는 멍청하게 구는 인간들에게 '아, 같은 사람들끼리 그러지 좀 맙시다.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비수를 날리며 담배꽁초를 버리는 대신 앉아 쉴 수 있는 평상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너도 앉으라고, 나도 너 같은 놈이니 담배나 피자며.



그래? 그렇다면 나도 한 까치. 마법사는 안 피던 담배를 한대 꼬나물고는 "마법사님 원래 담배 피셨어요?" 묻는 질문에 "(아 씨발 책에 다 써놨는데, 330페이지 '46장. 저는 가끔 담배를 피웁니다.' 30페이지만 읽고 시대의 걸작이라고 평하는 조카튼 인간이 거기까지 읽었을 리가 없지 생각하며) 혼자 있을 땐 안 피우고 같이 있을 때만 펴요." 답한다. 그 말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다.



너랑 하고 싶다.
줄 건 줘야지.



그러니까 나랑 도덕이고 법이고 다 조까고 영화 한 편 찍자는 말이다. 살색의 영화로다가. 갑갑한 스크린이 아닌 광활한 인생의 무대에서 벌거벗고 춤추다 잡혀가면 유치장에 쪼그리고 앉아 숨겨 온 담배 하나 나눠 피며 '아 씨발 조카튼 인생 언제 끝나나' 키득거리더라도, 살색에다 분칠은 하지 말자는 말이다. 그걸 너랑 하고 싶단 말이다. 그래서 너를 캐스팅 했단 말이다. 그러니 줄 건 줘라.



네 마음 말이다.
살색의 네 마음 말이다.



"그래도 이 말만은 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고통이라면 맞는 사람보다는 때리는 사람이 되자. 선택할 수 있다면 마조히스트보단 사디스트가 되어 권력도 누리고 떵떵거려도 보자. 마조히즘이 타고난 성향이라 바꿀 수 없다면 좀 더 의미 있게 맞아 보자. 세상을 바꾸는 일에 앞장서다 맞아 보고, 남 돕는 일에 나서다 맞아 보고, 억울한 사람과 함께 몰매도 맞아 보자."

_ <개새끼소년> 46장. 저는 가끔 담배를 피웁니다 中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15.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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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쉬지않고 담배를 피웁니다 ㅠㅠ

ㅋㅋㅋㅋㅋ 명문이네요

너랑 하고 싶다.
줄 건 줘야지.

이걸 지금 봤네
왜 아무도 말을안해 ㅋㅋ

두 가지 생각이 너무 극단적이라
아직 정립은 못했지만
멀린 진영이
제 인생은 더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드는 중이였어요.

마음을 어디다 놓고 왔지만
찾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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