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음모론의 음모

in stimcity •  3 months ago




음모론의 음모

+ Ponferrada, Spain



카미노의 경로에는 여기저기 템플기사단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결투를 벌였던 장소, 그들이 세웠던 성, 그들을 기념하는 장식들.. 템플기사단은 세간에 비의를 수행하는 비밀결사 집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프리메이슨과 더불어 각종 음모론의 단골 소재이며, 성배전설과 연관된 밀교적 전통을 수행하는 악마 집단의 일부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들의 비극적 최후와 함께..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바티칸과 유럽 주요 국가들은 중세 최대의 검거 작전을 함께 획책했다. 그날 밤, 기사단의 핵심 수장들이 자신들의 성에서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들은 악마 숭배와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모독, 통음난무의 의식, 그리고 남색을 포함한 비밀 의식을 행한 죄로 기소되었다. 혹독한 고문과 개종 그리고 배신이 이어진 끝에 템플기사단은 중세 역사의 지도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들의 재물은 압수되었고, 그 단원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기사단의 마지막 마스터였던 자크 드 몰레는 파리 한복판에서 동료 한 명과 함께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그의 마지막 청은 노트르담 성당의 종각을 바라보면서 죽는 것이었다.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나는 사실 템플기사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었어. 그냥 세간에 떠도는 음모론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비밀결사 집단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지. 뭐 그 인상이란 것도 좋은 것은 아니었어. 프리메이슨이라든지 일루미나티 등과 함께 세계정복을 꿈꾸던 악마의 비밀 기사단 정도.. 아마 나처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야.

 
음모론은 아직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단체와 인물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음모론의 단골 소재가 되는 대상들은 역사적 기록도 부족하고, 온갖 소문과 풍문이 난무한 채로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소문과 풍문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빛과 균형을 이루려는 어둠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자들은 이러한 틈을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진위 여부, 실체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소문에 의거해, 정적을 모함하려 드는 것이지요. 마녀사냥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됩니다.

 

1118년, 위그 드 파양과 여덟 명의 기사는 폐허가 된 낡은 성의 뜰에 모여 인류를 위한 사랑의 맹세를 했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난 후, 그때까지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가지 활동인 군사적 삶과 종교적 삶이 양립하면서 오천 개가 넘는 기사령騎士領이 전 세계에 흩어져 존재하게 되었다. 기사단원들과 그들에게 감사하는 수천의 순례자들이 기부한 덕분에 템플기사단은 빠른 속도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들의 부는 이슬람교도들에게 붙잡힌 저명한 기독교도들의 몸값을 치르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기사들의 청렴함에 감동받은 왕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재물을 그들에게 맡겼고, 기사들은 그 재물의 존재를 증명하는 문서를 지니고 여행을 했다. 그 문서는 템플기사단에 속하는 어느 성에서든지 해당 금액의 금전으로 교환이 가능했고, 이런 관습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어음의 기원이 되었다.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그들은 사실 가난한 9명의 프랑스 기사들이었어. 이 열정에 가득 찬 순수한 영혼들이 무작정 순례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성지순례를 떠났지. 그래서 최초의 명칭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들 (Pauperes commilitones Christi Templique Solomonici)이었어. 그걸 줄여서 ‘성전기사단’, ‘템플기사단’이라고 부르게 된 거지.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께 삶을 바친 수도자로 여겼어. 그래서 다른 수도자들처럼 청빈, 순종, 순결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지. 잃을 것 없는 가난한 기사들에게 오히려 청빈, 순종, 순결은 쉬운 덕목이었을지 몰라.

 
어차피 가난했던 그들은 사유재산을 버리고 신에게 절대복종하며, 일생을 독신으로 살기로 서약하였습니다. 심지어 당시 결혼한 상태였던 위그 드 파양은 결혼을 무효화하기까지도 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당시 기사들이 대부분 봉건영주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기사단이었다는 것입니다. 1139년, 교황 직속 기사단이 된 뒤에도 모든 권위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며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후와 왕, 황제, 주교 누구로부터도 구속을 받지 않는 완전히 독립적인 기사단이었던 것입니다.

 


본질을 쫓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제약하기 마련이야. 물론 그러한 제약에서 힘이 나오지. 강한 자들은 그래서 스스로 많은 제약을 걸지. 그건 뭐 당연한 물리법칙이야. 단단한 것은 밀도가 높으니까. 9명의 가난한 기사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스스로 청빈, 순종, 순결로 제약함으로써 무얼 얻으려고 했을까?

 

템플기사단은 언제나 내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했다. 폰페라다 성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템플기사단의 유일한 자취는 아니었다.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기로 결심한 아홉 명의 기사에 의해 결성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전 유럽으로 세를 확장하면서 새 천년 초기의 풍속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귀족이 봉건제도하에서 농노의 피땀으로 부를 축적하는 데 전념한 반면, 템플기사단원들은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 그리고 검을 오직 한 가지 대의만을 위해서 바쳤던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순례자들이 지혜를 찾아 떠나는 것을 도움으로써, 그들은 그 안에서 영적인 삶의 본보기를 발견하고자 했다.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한 가지 대의,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것. 그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어. 지혜를 찾아 떠난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임무 말이야. 그건 내가 살아온 역사이기도 하지.

 
멀린은 폰페라다의 템플기사단의 성에서 그들의 기원에 대해 듣고는, 자신도 템플기사단의 일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법사로서의 삶은, 스스로를 농노로 여기며 비참한 일상을 살아가는 노예의 행렬에서 벗어나, 위험을 무릅쓰고 지혜를 찾고자 순례의 여정을 시작한 순례자들의 가이드가 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례의 길에서만 그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순례자들의 기사들이 이미 역사 속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중세에 순례길에 오른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어. 어디서 강도를 만날지도 모르고, 벌판에는 늑대와 이리 등 맹수들이 지나다녔지. 병에라도 걸리면 마땅히 치료받을 만한 시설을 만나기도 어려웠고, 매일매일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조차 하늘에 맡겨야 하는 매 순간이 의탁된 여행이었지. 그러나 그것은 지혜와 용기를 얻기 위해 멈출 수 없는 여정이야. 그런 순례자들을 가이드하고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야.

 
멀린..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무나 수도자의 삶을, 헌신된 기사의 삶을, 마법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소명, 부르심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르심을 입은 자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구요.

 


당시에는 강도와 맹수, 질병과 불안정한 거처가 순례의 장애물이었지만, 지금은 안정된 일자리와 책임져야 할 가족, 이웃, 친구와의 비교우위에 서기 위한 불필요한 성공, 그리고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재산목록 등이 장애물이지. 매일매일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순례를 멈출 수 없는 사람들, 가슴 설레게 하는 마음속 꿈들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사가 필요한 거야. 그들은 순례자들이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 나타나 순례자들을 도울 임무를 가지고 있어.

 
운명으로부터 비롯된 그들의 성실성은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템플기사단의 헌신적인 봉사와 임무수행은 많은 이들에게 신의를 얻게 되고 그들의 재산은 날로 불어났습니다. 재산만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길에 매일같이 동행했으니, 그들의 지혜 또한 자라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들의 지혜는 이 종교전쟁의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다달았습니다.

 

템플기사단원들의 영적인 신앙심은 그들로 하여금 간밤에 페트루스가 상기시켜준 진리를 몸소 깨닫게 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는 예수의 말씀을.
 
그리하여 그들은 종교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당시의 주요 일신론一神論적 종교인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한데 모으고자 했다. 그때부터 그들의 예배당은 유대교의 솔로몬 성전의 둥근 지붕, 아랍 회교사원의 팔각형 벽, 그리고 기독교 교회의 특징인 중앙 회랑을 고루 갖춘 모습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가는 모든 것의 운명이 그러하듯, 템플기사단원들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막강한 경제력은 왕들의 탐욕을 부추겼고, 개방적인 종교관은 기독교 교회에 위협으로 작용했다.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결과는 역사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악마 숭배와 신성모독, 비밀 의식 등의 혐의로, 당시 템플기사단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던 프랑스의 필립 4세에 의해, 기사단은 해체되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되었어. 마지막 마스터였던 자크 드 몰레는 화형을 당했지. 쟌다르크처럼 말이야.

 
불에 태워지는 이들이 받게 되는 모함은 매번 비슷합니다. 신성모독과 악마숭배, 비밀의식.. 뒤집어 보면 본질에 충실했다던가, 지혜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던가, 아니면 여자가 반바지를 입었다던가 하는 이유들입니다.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은 매우 오랜 시간의 역사가 흐르고, 음모에 불과했다는 사실로 드러나지게 됩니다. 당대에는 그들이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고 불에 태워졌지만, 결국 대부분의 음모론은 ‘음모론의 음모’에 의해 불태워집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음모론은 어쩌면 그것 자체가 음모일지 몰라. 배제하고 싶은 대상을 모함하기 위해 꾸며 낸 이야기들 말이야. ‘종북’이라는 음모, ‘친일’이라는 음모.. 일루미나티에 대한 음모도 그런 게 아닐까? 템플기사단에 대한 음모도 사실 정적들의 음모론에서 비롯된 거라면,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에 대한 음모론도 그런 게 아닐까?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시간이 흐르면 진위는 드러나지겠지요. 그러나 매번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음모론의 패턴이 말이죠. 마녀사냥의 패턴은 언제나 현재의 도덕률, 그리고 종교적 윤리관의 경계를 벗어날 때 발동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파헤쳐 보면 대부분 정적들의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정치적 유불리와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이죠.

 


모든 게 꾸며 낸 이야기만은 아니야. 쟌다르크가 반바지를 입은 것은 사실이니까. 왜 여자가, 전쟁을 치르는 군인이,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되는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용된 것뿐이지. 동시대를 살고 있다면 우리들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을지 몰라. 동성애자 성직자처럼 말이야. 아, ‘플랫어스’도 있지. 템플기사단도 그러했지. 일설에 의하면, 그들은 지혜에 매우 가까이 다가섰던 것 같아.

 
정적들이 템플기사단을 해체하며 내세운 우상숭배의 명분으로, 템플기사단원들이 ‘바포메트’라는 우상을 섬겼다는 죄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포메트’라는 이름을 암호로 해석해보면 ‘sophia’ 즉, 지혜가 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정죄한 영지주의자들이 섬기는 여신으로 ‘세상의 창조자’이자 ‘여인의 몸을 빌어 세상에 헌신한 존재’로 여겨지는 ‘막달라마리아’입니다. 이 대목에서 템플기사단의 비밀은 성배의 전설과 연결됩니다.

 


어쩌면 그들은 루르드의 베르나데트처럼 ‘원죄없는 잉태’를 발견했는지도 몰라. 그들의 지혜가 그 부분에까지 이르렀는지도 몰라. 그러나 때가 이르지 않으면, 순례자는 순례를 계속할 뿐이야. 지혜는 연약한 자에게는 자신의 몸을 숨기지. 용감한 자만이 지혜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어. 지혜의 빛은 모든 것을 비추기 때문에 연약한 자는 감당하기 어렵거든.

 
폰페라다의 템플기사단의 성에서 멀린과 일행은 조금 허탈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장소가 아닐까? 기대하며 올라간 성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일부는 부서져 폐허가 되고, 성과 성벽 일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곳에서 이들은, 이건 일루미나티의 음모가 틀림이 없다며 분개했습니다.

 

“멀린, 이건 일루미나티의 음모가 분명해요. 우리들의 입장료를 갈취하려는..”
“맞아요. 우린 속은 거예요.”

 
한스와 잭이 어이없다는 듯 일루미나티를 성토합니다. 멀린도 허탈합니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건만, 평범한 옛 건물과 성벽뿐인 ‘템플기사단의 성’에서 일루미나티의 상술에 당했구나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음모는 거창하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보장해 줄 듯 떠들더니, 막상 보험금을 타려면 온갖 조항을 들이대며 주지 않으려 드는 보험사, 좋은 대학만 나오면 인생이 탄탄대로 일 듯 구라 치는 부모들의 협박, 수백조의 잉여금을 쌓아 놓구서도 임금 올리자는 소리에 회사 곧 망한다며 엄살을 떠는 기업들, 행복하게 잘 살게 해 주겠다며 당선시켜 주면 세금만 올리는 정치인들.. 중세의 기사단과 이교적 비밀결사 집단들을 뒤지지 않아도, 굳이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를 이리저리 짜 맞추지 않아도, 실존하는 음모는 우리 주위에 넘쳐 납니다. 그리고 이들과 대항하기에도 우리의 정신력은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음모론의 음모라.. 일루미나티가 실은 천사들이 아닐까? 세상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출해 낼 천사들의 기사단이 일루미나티가 아닐까? 그래서 이를 두려워하는 기존 권력, 종교 세력들이 모함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혼란스럽습니다. ‘음모론’, ‘음모론의 음모’, 다시 ‘음모론의 음모의 음모’.. 뭐 이럴 수도 있겠습니다. ‘NASA의 음모’, ‘NASA의 음모에 관한 플랫어스의 음모론’은 결국 새로운 지구본과 세계지도를 팔아먹기 위해 퍼트린 출판사의 음모라는.. 어차피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대상에 관한 이야기들은 수도 없는 낭설로 연결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스스로의 판단과 신념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직관적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를 시작한 스페인은 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도피해온 템플기사단원들을 맞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기사들은 스페인의 왕들을 도와 무어인과의 싸움을 이끌었고, 순례길을 수호하던 산티아고 기사단을 포함한 스페인의 기사단들에 통합되었다.
 
정확히 저녁 일곱시, 템플기사단의 오래된 성의 문을 통과하는 나의 머릿속에 이 모든 역사 스쳐 지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성전聖傳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 눈앞에서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예배당-대부분이 폐허로 변했으므로, 예배당의 남은 부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은 횃불로 밝혀져 있었다. 예전에 제단이 서 있던 곳에 템플기사단원들이 입었던 세속적인 복장을 한 일곱 개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들은 두건 달린 망토와 쇠사슬 갑옷을 입고, 쇠로 만든 투구를 쓰고 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했다.
 
… 그때에야 나는 우리가 참가하고 있는 의식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템플기사단의 입문식이었다.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그때까지도 멀린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혜를 찾아 순례를 떠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템플기사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을.. 단지 이미 마법사로 살아온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 인해 그는 템플기사단과 동질감을 느끼고, 이전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그렇다면 나도 템플기사단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음모론의 음모를 넘어, 소명을 인식하고 직관의 부르심에 순종한 멀린은, 이미 템플기사단이자 마법사였습니다. 그리고 폰페라다의 템플기사단의 성에서 자신의 검을 받지 못한 작가처럼, 멀린은 일루미나티의 입장료 횡포 따위에 분개하며 가볍게 성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작가에게도, 멀린에게도, 운명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검은 여전히 자신만의 장소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혼자였다. 안내자도 없었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남미의 한 나라에서 온 나를 성전은 돌아갈 길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내쫓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신비로운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걸어야만 했다. 내 검의 비밀과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이제 그 길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음모론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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