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이즘] 진정성의 시대가 이렇게 오다니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진정성, 오래된 미래



마법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진정성'이란 말을 떠들고 다녔습니다. 거품경제가 꺼지고 나면 남은 그것, 바닥에 가라앉은 그것으로 살아야 할 테니까요. 사람들은 생소한 단어를 쓴다고 생각하고 신선해 했습니다. 그때에는 그것이 금방 올 줄 알았고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거라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거품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사람은 관성을 쉽게 바꾸지 못해서 이미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는데도 눈앞에 지나치는 주유소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좀 더 싼 주유소가 나타날 것 같거든요. 그러다 맞이한 사회는 인식보다 기술이 앞서간 당황스러운 사회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거품경제의 그것으로 인식이 고정되어있는데 기술은 벌써 우리 코앞에 새로운 삶을 들이대고 있죠. 뭘요? 공개된 일기장을, 적나라한 CCTV를, 낱낱한 나의 행태를 말이죠. 진작에 알았더라면 이런 기술 사회가 몰려오고 있으니 그것에 브레이크를 걸든지 발전을 유보시키든지 속도 조절을 해보았을 텐데. 아직 인간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산업사회 이후로 인간은 언제나 기술에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재물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말이죠. 무방비로 널브러져 있다가 기술이 펼쳐놓은 새로운 세상에 당황한 인간이 부랴부랴 적응해 가는 양상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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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의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이 인간의 의식과 사생활을 모두 해체시켜 알몸을 만들어 놓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새가 듣던 낮말과 쥐가 듣던 밤말을 모두 기록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먼저 알았으면 기득권 독재 권력들이 인터넷 따위 허가해 주었을 리 만무합니다. (이 시대에도 아프리카의 독재국가들은 선거 때가 되면 인터넷을 끊어버린다고 하더군요.) 인간들이 서로 합의해가며 기술을 진보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닌가요? 정책결정자들은 언제나 기술맹들이니 어차피 소용없었을까요?



무방비 상태로 활짝 열린 안방 문을 유유히 열고 들어온 기술은 우리의 사생활을 낱낱이 기록하고 또 소유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대중에게 내어주고 반항하는 인간의 목을 뎅강 날려버리지요. 이미 기술의 노예가 된 인간은 뒷수습할 여력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술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조작과 속임이 가능하지만, 그것조차 기록으로 남으니 이 기록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생존의 방식은 '진정성 있는 삶' 그것뿐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인간사회의 중요한 미덕이 되어버렸습니다. '진정성', 그게 좀 이해가 안 되고 낯설고 심지어 과도해 보여도, '진정성', 그것이 드러나는 일에 사람들은 면죄부를 주거나 마음을 열고 또는 존경합니다. 거품의 시대에 온통 거짓과 허영으로 쳐 발라졌던 인간관계에 신물이 났는지 말이죠. 사람들은 트루먼 쇼처럼 모든 이들의 인생이 생중계되는 이 시대에 '진정성' 그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간화된' 데이터는 인간 행동의 거짓과 허위를 가차없이 까발리며, 느슨하게 살던 사람들에게 ‘진정성이라는 의무'를 던졌다. 진정성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제 목표를 이야기할 때도 권력이나 성공이라는 단어보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쓴다.

업의 진정성에서 시작된 진정성은 최근 일상의 진정성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차별에 격분하고 차이에 열광하는 다양성의 상자도 크게 열렸다. 다양성과 진정성의 키를 쥐고 소비자를 파트너로 만드는 그룹이 시장의 리더가 될 것이라고 송길영은 단언했다. 공동창작과 리스크 방어의 전선에서 팬덤과 ‘덕후’는 더욱 중요해졌다.

_ 인류는 어떤 ‘새로운 합의’를 했습니까?

"첫째는 데이터를 통한 과학적 사고, 둘째는 업의 진정성, 셋째는 성숙한 공존입니다. 중세 흑사병 이후로 가톨릭의 권위가 의심받고 인본주의 시대가 시작됐잖아요. 코로나 이후 기존의 권위가 의심받으면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판단의 시대가 열렸어요."

_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진정성 사회 가속화... 개인도 기업도 룰 지켜야 생존한다" 송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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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거부할 수 없는 현실



그러나 이런 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당황스럽습니다. '진정성'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개인을 협박하는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기록되어지는 그것은 나의 의사를 물은 적이 없고, 물었더라도 깨알같이 적혀있는 뭔 말인지도 모를 어려운 문구 뒤로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기술 속으로 우리의 사생활을 사은품 몇 개, 포인트 몇 점에 팔아먹었고, 아무 유익도 없는 '좋아요'와 거짓 허명으로 낭비해 버렸습니다. 그것이 족쇄가 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으로 진격해 들어와 버렸습니다. 익명의 대중은 이것을 무기로 한 사람의 명예를 파멸로 몰고 가기도 하고, 조작되거나 오도된 기록으로 인생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여 버리기도 합니다. 대중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유명인의 삶은 부와 명성의 대가가 무엇인지 매우 잔인하게 각인 시켜 주고 있고, 대중은 이제 선동의 앞잡이가 되어 언제든 누구라도 여론 재판에 올려 단두대에서 목을 날려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진정성의 시대를 원했던 건 아닐 거 아닙니까?



함께 열린 건 과도한 '조심성'의 사회입니다. 이제는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않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의식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칫 조금의 실수라도 있었다간 언제든 상관없는 일로 지옥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사고를 도왔을 뿐입니다. 영웅이 되고 싶었던 적도 없습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왔을 뿐입니다. 돌려보고 '좋아요'를 누르며 하늘 높이 띄워 올린 건 대중이지 내가 아닙니다. 그러다 갑자기 몇십 년 전 철없던 학창 시절의 일탈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그러고는 어제의 영웅을 갑자기 일탈의 주범, 최악의 예비 범죄자, 계산된 위선 행위자로 낙인을 찍어 버립니다. 헹가레를 띄워 올리던 손에는 저마다 칼이 들려 있고, 바닥에 처박혀 나뒹구는 영웅의 몸에는 온갖 비난의 칼날이 쑤시고 들어옵니다. 헹가레 칠 때는 언제고. 누가 비행기 태워 달랬나요? 만인감시萬人監視의 시대에 우리는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진정성은 자기다움의 윤리다.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진짜 자기의 것이어야 하고 서로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그 핵심은 약속의 이행과 공동체의 신뢰에 달려있다. 이게 무너지면 위선이다. 그래서 ‘도덕성보다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가 진정성’이라고 실리콘 밸리의 대부 존 헤네시도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에서 토로하지 않았던가.

진정성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 공동체, 인류 전체를 진정으로 대하는 품성이다. 앞뒤가 맞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공인이나 리더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그 진정성을 요구받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_[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진정성 사회 가속화... 개인도 기업도 룰 지켜야 생존한다" 송길영



그렇습니다. 진정성은 이제 피해 갈 수 없는 필수 덕목입니다. 과도기의 우리는 그것을 어지럽게 사용하고 있으나 결국 질서는 생겨나게 되어 있고, 그것을 진작부터 학습한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_ 변화를 끌어낸 건 밀레니얼입니까?

"아무래도요. 밀레니얼은 투명한 세상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일탈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부모에게 동선이 공개되니 학원 땡땡이도 안되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막 대해도 안 돼요. ‘일진'으로 신상(身上) 털려 곤욕을 치르는 유명인들을 얼마나 많이 봤어요. 몸으로 규칙 준수를 배웠으니 감수성의 레벨이 다르죠. 그 와중에 사회 전체가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더 많은 규칙을 생존의 문화로 받아들였잖아요."

_[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진정성 사회 가속화... 개인도 기업도 룰 지켜야 생존한다" 송길영



이 덕목은 참으로 엄격해서 개과천선을 하찮게 봅니다. 이 진정성에 따라 오는 덕목인 '일관성'을 얼마나 쌓아왔는가가 그 진정성을 보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작은 빠를수록 좋고 쌓아 온 그것은 함부로 무너뜨려선 안 됩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유행 따라 왔다 갔다 하는 보따리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업業'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겁니다. 이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이 기성세대를 날려버릴 강력한 무기이며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해줄 새로운 업業의 방식인 것입니다.



진정성이 창조한 새로운 사업事業


"과거에 직업의 의미는 효율적인 분업이었어요. 누군가는 쟁기를 만들면, 누군가는 빵을 굽는 식이죠. 지금 직업의 이슈는 소명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소명이 요구돼요. 이젠 서로 강하게 묻고 있어요. 저널리스트는 사회의 공기 역할을 하고 있나? 공무원은 공동체에 헌신을 다하고 있나?"

_ 업의 근본을 파고들어 가는군요.

" "너는 회사에서 뭐 해?", "그냥 근무." 이런 대답으로는 만족이 안 된다는 거죠. 그동안 공무원도 가성비 좋은 직업으로만 여겼잖아요. 그런데 그 안정성은 공동체를 위해 힘들게 일한 결과로 사회가 주는 보상이었거든요. 그 업의 진실에 가닿도록 공동체가 질책하고 감시해요. 각자 그리고 서로 치열하게 묻습니다. 나는 뭘 하고 있지? 너는 뭘 하고 있지? 왜 하고 있지?"

_[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진정성 사회 가속화... 개인도 기업도 룰 지켜야 생존한다" 송길영



업의 진정성, 그것은 시간의 역사를 담보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그냥 돈이나 벌자는 거지.' 해서는 업을 지켜낼 수도 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무표정한 동사무소 공무원에게도 진심어린 친절함, 진정한 미소를 강요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모두가 감시당하고 모든 업에 진정성이 요구되는 세상에서, 그냥 돈이나 벌자고 해선 아무 돈도 벌 수 없게 되고 있어요. 계란 한 판을 파는 일에도 산지와 유통경로를 투명하게 기록해야 하죠. 거리에 쭈그리고 주저앉아 구워 파는 '달고나'에도 설탕의 원산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거예요. 결국 모두가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차별성은 그것을 얼마나 오래 일관되게 지속해 왔나가 되는 겁니다.



분업화 사회에서 무표정한 기계처럼 반복해 왔던 노동의 자리는 어차피 기계로 모두 대체되고 있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 일, 진정성과 일관성이 담겨 있는 그 업業들만 남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어차피 모든 것이 기록되고 모든 것이 공개되는 세상에서 차라리 그 투명성은 홍보의 도구, 가치증명의 증표로 활용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매일 같이, 누가 뭐래도 한결같이 반복해 온 그것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_ 거짓말하면 바로 신상(身上)이 털리죠. 특히 정치와 기업은 진정성 분야에 사활이 걸린 거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이젠 기업의 CSR(사회적 책임 활동)도 낡은 언어가 됐어요. 기업은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를 요구받아요. 과거엔 ‘돈 버니까 좋은 일 좀 해’였지만 이젠 전제가 달라요. ‘소비자인 나는 사회적 책무를 다했는데, 기업인 너는 지켰니?’라고 묻죠. ESG 룰을 못 지킨 조직은 미래가 어두워요. 환경, 사회적 공존, 지배 구조의 건전성이 그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경영 능력이 됐어요. 룰을 못 지키는 기업은 이 사회가 용납을 안 해요."

_ 그야말로 ‘무늬만 공존’이 아니라 ‘공존의 진정성’을 요구받는 거네요.

"성숙해지라,는 거죠. ‘돈 벌었으니 베풀게’가 아니라 사회 일원으로 ‘공동체 규약을 준수했니?'에 대한 증거를 만들어 가라고요. 이미지용으로 선심 쓰지 말고 공존을 입증하라는 겁니다."

_[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진정성 사회 가속화... 개인도 기업도 룰 지켜야 생존한다" 송길영



지긋지긋한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비리에 사람들의 감각이 무감각해져 그렇지, 그 기준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윗선의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일을 지금은 기업의 총수가 나서서 빠르고 책임 있게 사과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감시의 눈은 경쟁자에게는 유리한 칼자루가 되니 우리는 만인감시 시대의 어부지리로 환경, 사회적 공존, 지배 구조의 건전성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진정성, 이것은 단순히 성숙한 시민의 태도만이 아닙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자신의 경쟁 우위를 증명해야 하는 모든 사업事業의 기본입니다. 네가 공언한 말을 '진정성' 있게 지켜나가고 있니? 나는 언제든 너의 모든 행위를 열어볼 수 있어? 정말 자신 있는 거야? 거짓이었다면, 거품이었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바야흐로 진정성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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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MCITY is AUTHENTICITY



진정성 보증 플랫폼, 블록체인



우리는 이 블록체인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지에 대해서 상상하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가져다줄 진정성의 혁명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피부로 느끼고 있지 못합니다. 누구나 나의 지갑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강력한지, 모든 이들의 말과 글이 기록되는 블록체인이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떤 심문을 해올지, 매우 만만하게 보고 장난처럼 시작한 우리들의 블록체인 생활은 이미 시작된 기록입니다. 임금도 고칠 수 없었던 왕조실록처럼 이미 우리의 삶이 낱낱이 기록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 그거야 물론,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고 네티즌 수사대가 등장한 이후로 계속 발달되어 온 오랜 기능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공식화한 이곳 블록체인에서, 제일 먼저 기록을 시작한 이들이 우리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무섭습니까? 두렵습니까? 도망친다고 기록이 사라집니까? 앞으로 이 '진정성의 플랫폼'을 벗어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CCTV 없는 골목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역으로 이것에 우리의 '진정성'을 낱낱이 기록해 가야 합니다. 그동안 누가 알아주지 않아 억울했던 그것, 매번 홀로 외롭게 쌓아 올리고 있던 그것. '너 애쓴다고 누가 알아나 주겠니?' 하던 그것을, 진짜를. 삭제도 위조도 변조도 불가능한 이곳에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용점수처럼 너를 보증해 줄 테니까요.



"스팀잇 하시는 군요. 그럼 신분은 확실하시네요.'


_ 혼자 사회에서 왜 계속 동류를 찾으려고 합니까?

"외로우니까요. 허기지거든요. 하지만 아무나 하고 관계를 맺고 싶진 않아요. 다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원해요. 그래서 성긴 관계처럼 보이지만 규칙은 엄격해요. 레벨도 있고 퇴출도 있죠. 민폐와 상처를 예방하는 안전장치가 잘 설계돼 있어요."

_ 이젠 소비자가 아니라 파트너라고 해야 맞겠네요.

"파트너죠. 피아(彼我)가 갈라지지 않아요.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공동체로 묶여요. 마켓컬리는 소비자를 컬리족이라고 불러요. 앞으로 시장은 단순히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에요. 내가 생산하는 제품의 이상을 제시하면,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형태죠. ‘좋은 물건 싸게 드릴게요'라고 하면 더 싼 물건 나오면 옮겨가요. 결국 부가가치는 가치를 공유한 관계에서 나와요. 시장참여자는 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게 큰일이에요."

_[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진정성 사회 가속화... 개인도 기업도 룰 지켜야 생존한다" 송길영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신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블록체인이라는 증명시스템의 선도자로, 동류의 파트너들과 함께 연대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마치 공갈빵이 난무하던 사회에서 '공갈빵 금지법'이 채택된 이후 유일하게 진짜 빵을 만들어 왔던 오랜 장인이 마침내 시장을 홀로 독점하게 되는 일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진정성'과 '일관성'에 가치를 두고 업業을 개척해 왔던 이들과 시장을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의 규칙은 엄격합니다. 레벨도 있고 퇴출도 있습니다. 스팀잇의 명성도는 '진정성'과 '일관성'이 아닌 단기 자본의 어뷰징에 그것을 팔아먹어 버려 하찮아졌지만, 책 100권, 영화 100편, 음악 100곡, 100여개의 도시여행으로 증명하는 <위즈덤 러너>의 <위즈덤 레이스>는, 미래도시 [스팀시티]의 시민권이자 도래하고 있는 '업業의 진정성 시대'에 자신의 '진정성'과 '일관성'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표가 되는 겁니다. 블록체인 위에 쌓아 올린 그것으로 말이죠.



그때에는 다들 그랬습니다. 여직원 엉덩이를 툭툭 치며 희롱을 일삼아도 '짓궂으시네~' 하고 넘어가고 그랬습니다. 심지어 그게 관심이라고 애정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관행을 변화하는 사회의 기준은 용납해주지 않습니다. 그것,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입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변화할 줄 알았더라면 엉덩이를 들이밀고 손을 끌어다 얹어 놓아도 정색을 하며 버럭 화를 내었을 일입니다. 지금 그런 후회를 하는 이들이 산처럼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두들 관행처럼 하던 시절에도 따르지 않고 자신을 바로 세운 이들에게, 사회는 무한대의 기회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고르고 골랐더니 남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죠. 변화하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산 이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 블록체인은 그래서 기회의 장입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기준이 서고 모두가 인식을 공유한 뒤에는 경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작부터 알고 먼저 실행하여 쌓아 올린 이들에게는 저기 저 위의 '가입일 0000년 00월'과 빼곡하게 쌓아 올린 포스팅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될지 지금은 가늠도 하지 못합니다. 블록체인 위에 기록된 글들, 삶들, 소통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알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소수가 누렸던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다수에 의해 끌어내려 질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몰라서 못 했을 뿐이지만 모두가 안 뒤에는 이미 늦은 초기 진입자들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샀다 팔았다 한 코인 거래의 기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돈이나 벌었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기록해 가고 있는 생각의 가치와 삶의 가치, 업業의 가치는 어디 가지 않습니다. 심지어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블로그 플랫폼인 이곳의 기록은 두고두고 인류의 연구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때에 누가 어떤 생각을 기록했는가, 사료로서, 역사의 증명으로서, 개인의 보증으로서 말이죠. 어마무시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 '진정성'의 업業의 시대. 마법사는 흥분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록은 기록으로 증명됨과 동시에 기록으로 반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변辯'할 필요가 있습니다. 엄한 놈이 나에 대해 엄한 말을 늘어놓지 못하도록, 나의 말을 기록해 가야 합니다. 자신의 말로 자신을 증명해가는 일. 그것이 우리의 업業입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의 업業의 가치를 서로 보증해 주는 행위로서의 보팅과 댓글, 리스팀. 이것이 커뮤니티이고 공동체이며 진정성의 시대의 진짜 사업事業입니다.



"내가 생산하는 제품의 이상을 제시하면,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형태죠.
‘좋은 물건 싸게 드릴게요'라고 하면
더 싼 물건 나오면 옮겨가요.
결국 부가가치는 가치를 공유한 관계에서 나와요.
시장참여자는 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게 큰일이에요."

_바이브컴퍼니 송길영 부사장. 빅데이터 전문가



그렇답니다.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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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라든지 인플루언서라든지 블로거라든지 뭐든 간에 2년 이상 활동한 유저는 실제로 좋은 사람이 아닌 이상 수사망에 걸리거나 물의를 빚어서 좌초하곤 합니다. 오래 활동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도 어떤 보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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