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in #steemzzang4 hours ago

가을은 하늘빛조차 눈물로 가득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겹눈을 달라고
손가락 끝에 불을 붙이고 기도하던
밀잠자리의 눈물과

노란 꽃을 잃고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이제 빛은 없다고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던 산수유가
빨간 열매를 품는 날까지
비바람은 풀잎 하나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양팔을 늘어뜨리고 지쳐 돌아가는 여름에게도
할 말이 할 일보다 더 많이 쌓여있었다

눈물로 출렁이는 하늘에 손을 적셔
가슴을 쓸어내리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상처를 내던 갈숲에서도
웅크리고 있던 그늘이 홀씨가 되어
새 하늘을 찾아 날아간다

image.png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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