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사이공 억류기) 25, AH 동으로 이감하다.

in #steempress5 years ago (edited)

11월 1일 아침, 불굴의 투지와 신념으로 반공의 길을 걷고 있던 록 신부와 탄 신부가 어디론가 이감되어갔다. 경비원의 말에 따르면 두 신부는 E동으로 이감되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날 오후 경비원들은 귓속말로 이대용에게 11월 2일 오전 H동으로 이감된다고 알려주었다. 이후에 이회장의 비밀편지와 영계백숙이 비밀리에 차입되었다. 이회장도 이대용이 H동으로 이감될 것임을 알려왔다. 월공장교로 부터 통보받았다는 것이다.

이대용은 이감에 대비해 일기장을 비롯해서 지니고 있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동안 신세진 경비원들에게 이별의 선물로 나누어줄 의류, 일용품, 식품들도 따로 정리해 놓았다. H동은 A동에 인접해 있어 AH동이라고도 불렸다.

서 영사와 안 영사는 D동으로 이감되어 있다가 1976년 5월, AH 동으로 다시 이감, 계속 그곳에 수감되어 있었다. 이대용은 A, B, D동의 격리 감방에서 25개월을 지내다가 이제야 매일 햇빛도 받을 수 있고, 감방안에서도 철장을 통해 하늘을 내다 볼 수 있는 AH동으로 가게 되었다.

이대용은 격리감방에서 마지막으로 음식을 끓여 먹으려고 감춰두고 사용하던 깡통화로에 비닐봉투와 헝겊조각으로 불을 피웠다. 화로 양쪽에 깡통 두개를 두고 냄비를 대신하여 큼직막한 미제 깡통에 불을 부어 걸쳐 놓고, 영계백숙 닭다리 2개를 집어 놓고 닭국물이 끓으면 라면을 조금 넣을 준비를 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라면을 먹었다. 일품이었다.

설걷이를 마친다음, 마지막으로 짐을 점검하고 모기장을 치고 자리에 누웠다. A동과 B동에 있을 때는 개의 감시는 받지 않았다. 그러나 D동에서는 노루처럼 생긴 훈련된 개가 복도에 배치되어 수감자들을 감시하다가 감방안에서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사납게 짖어댔다. 그러면 간수가 올라와 각 감방을 점검하곤 했다.

D 동 구대장은 이대용에게 최고의 악질 반동분자이니 철저하게 감시하라고 했던 인물이다. 그는 보통의 월남 사람과 달리 키도 크고 얼굴도 한국사람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이대용을 악질이라고 했지만 3개월이 지나고 나서 이대용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977년 11월 2일 오전 6시, 남대위는 통역 경비원을 데리고 와서 이대용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공관장님께서 오늘 이곳을 떠나 AH동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ㅈ돔 있으면 석방되어 귀국하게 될 것입니다. 비품은 이곳에 그대로 두고, 개인 짐만 가지고 가야 합니다. 짐운반은 경비원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부디 행운을 빕니다."

형무소에서 2년 넘게 있었지만 간수로 부터 이렇게 공손하고 친절한 인사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 인사를 마지막으로 남 대위와 이별했다. AH동으로 왔더니 A동 구대장을 했던 은발의 늙은 경찰 대위가 AH동 구대장으로 전보되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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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조짐이 보이는 듯^^

오랜만에 먹어보는 영계백숙에 넣은 라면이 얼마나 맛이 있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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