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in #steem5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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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계유정난이라는 거대한 폭풍 앞에서 두 천재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박팽년은 단종을 향한 지조를 지키며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정인지는 세조의 손을 잡고 정승의 자리에 올라 조선의 기틀을 다졌다.
후대는 박팽년의 절개를 칭송하고 정인지의 변절을 비판하지만
과연 누구의 삶이 더 '잘 산 삶'이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팽년의 삶은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 '깃발' 같았다.
그는 목숨보다 고결한 신념과 명분을 택했다.
비록 육체는 멸해졌을지언정, 그의 이름은 시대를 초월한 도덕적 귀감이 되어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쉰다.
스스로의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 그것이 그가 증명한 인생의 의미였다.

반면 정인지의 삶은 바람의 방향에 맞추어 움직이는 '돛' 같았다.
그는 현실과 타협하는 대신 세종 대부터 이어온 학문적·문화적 성취를 세상에 구현해 냈다.
사실 정인지처럼 현실에 순응하고 실리를 좇는 이들은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생존과 성취를 위해 대세에 타협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가장 흔한 본능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인지의 삶을 실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포장하기엔
마음 한구석에 깊은 환멸이 남는다.
권력의 편에 선 대가로 그가 누린 지나치게 호화롭고 탐욕스러운 생활 때문이다.
그의 타협이 진정 나라와 학문을 위한 고뇌의 결단이었다면
그는 왜 맹사성처럼 살지 못했을까.

맹사성은 권력의 중심에 서서 실질적인 정치적 업적을 쌓으면서도
비가 새는 집에서 소를 타고 다니며 청렴함을 잃지 않았다.
현실과 타협해 업적을 남기는 길 위에서도 얼마든지 도덕적 절제를 지킬 수 있음을
맹사성은 몸소 증명해 보였다.
반면 정인지의 화려한 부귀영화는 그의 실리적 선택이 결국 개인의 영달을 위한
변명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흔하고 안전한 정인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외롭고 위대한 박팽년의 길을 걸을 것인가
혹은 현실의 업적과 개인의 청렴을 모두 지켜낸 맹사성의 길을 도모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다.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두는 사람인지 알고 내 선택의 무게를 온전히 책임지는 것이다.
결국 잘 산 삶이란, 세상의 흔한 흐름과 권력의 달콤함에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내가 선택한 가치 앞에 마지막까지 당당할 수 있는 삶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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