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종합 예술이고, 수확물은 작품이다
농사는 종합 예술이고, 수확물은 작품이다
새벽부터 마음이 바빴다. 밤부터 다시 비 소식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아침 일찍부터 분무기를 메고 밭으로 향했다.
농약은 대개 살포 후 최소한 10시간은 지나야 빗물에 씻기지 않고 제 효과를 내는 법이다.
마음이 급해 발걸음을 재촉하며 약을 쳤지만,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2시를 훌쩍 넘겨서야 겨우 작업이 끝났다.
숨을 돌리며 스마트폰으로 기상청 예보를 다시 확인했다.
다행히 비는 밤 11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살포를 마친 시간으로부터 약 9시간 뒤다. 기준인 10시간에는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지만, 이 정도면 약효가 발휘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내려앉으며 "그래도 제때 잘 해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약을 살포하며 콩밭을 둘러보는데 실소가 터져 나왔다.
파릇파릇하고 예쁘게 자라던 콩잎들이 여기저기 댕강댕강 잘려 나가 있었다.
범인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 고라니 녀석, 내가 제 일용할 양식을 정성껏 키워 상이라도 차려놓은 줄 알았는지 아주 야무지게도 얌얌 뜯어먹고 갔다.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밭인데도 겁이 없나 보다.
아주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찬을 즐기고 간 모양새다.
뜯어 먹은 자국을 보니 여러 날 들락거린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인 듯하다.
괘씸할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살기나 원한이 생길 만큼 밉지는 않다.
그저 녀석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조금만 눈치를 보며 피해가 덜 가도록 알아서 적당히 먹고 가 달라는 것이다.
또한 이왕 먹을 거라면 농부 손을 덜어주게 순자르기나 예쁘게 해놓고 가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사소한 타협을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온종일 땀을 흘린 탓에 온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하지만 비가 오기 전에 큰 숙제를 끝냈다는 해방감에 마음만은 한없이 편안하다.
이제 밤부터 비가 내려도 병충해 걱정은 한시름 덜었다.
앞으로 닷새 연속으로 비 소식이 이어지는데, 그저 작물들이 다치지 않게 큰 비만 피해 가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는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말하지만, 농사는 직접 해보면 몸은 고되어도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재미가 있다.
대형 기계로 짓는 거대한 기업형 농업 말고, 내 손으로 흙을 만지는 텃밭이나 재래식 농업은 사실 하나의 '종합 예술'이라는 생각이다.
농민과 편을 먹고 어떻게든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라나려는 작물, 자신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돋아나는 잡초,
그리고 그 치열한 생태계 속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편파적으로 심판을 보며 풍년을 그리는 농부,ㅎㅎㅎ
여기에 마지막으로 하늘이 주셔야 먹을 수 있다는 심성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는 마음까지. 거대한 자연의 무대 위에서
엉켜 벌이는 온갖 행위와 감정의 교류, 이것이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래서 농사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확물이 결과로 나타난 완성 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오늘 밤부터 내린다는 비가 내 예술 작품을 더욱 푸르게 키워낼 달콤한 휴식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2026/07/17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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