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국 관계(박영실) 26,중국인민지원군 철수
정전협정 체결이후 북한에 주둔한 중국인민지원군의 규모는 모두 120만명이었다.
17개군단과 제33사단, 포병, 고사포병, 장갑병, 공병, 철도병, 후방병참부대, 후방경위부다, 지원군 총사령부 및 각 병단기관과 지속부대등
이들 부대는 정전협정 이후 1958년 10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공개철수를 진행
제1차 공개철수는 1954년 9월에서 10월사이 7개사단 총 87,894명
1955년에는 두차례에 걸쳐 철수를 진행
3월과 4월사이에 총 6개사단, 52, 192명,
10월에는 6개사단, 63,257명이 철수
세번에 걸쳐 모두 19개 사단이 철수했으나 기본병력 15개사단, 기타 특종병과부대, 인민지원군 총부, 후근보장부 등 25만명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1956년 8월 종파사건이후 중국인민지원군은 공개적인 철수를 중단하게 됨
1957년 북한과 중국사이에 중국인민지원군의 최종철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됨
1957년 11월 소련에서 열린 공산당 및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1956년 8월 종파사건에 중국이 간섭한 것을 사과, 중국은 북한이 법률적으로 독립국가임을 강조하면서 8월 종파사건은 북한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였음을 인정함(션즈화, 최만원 역, 440쪽)
김일성은 중국으로 넘어간 연안파들의 송환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문제를 제기하고 마오쩌둥은 이를 즉각 수용함
1957년 12월 16일과 25일 마모쩌둥에게 중국인민지원군 철수와 관련한 두가지 방안을 제시
첫째 북한정부가 성명을 발표하여 한반도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주장하고 이에 중국정부가 적극 호응한다.
둘째 북한최고인민회의가 유엔에 서한을 보내고 소련도 유엔에 제안함으로써 유엔으로 하여금 직접행동에 나서도록 하자는 것
12월 30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임위원회와 서기처는 중국인민군 철수방안을 수립함
1958년 1월 24일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1958년 3월에서 4월가지 북한과 중국정부가 성명을 발표한 후, 중국인민지원군의 1/3을 철수시키고, 1958년 7월에서 9월까지 1/3을 철수시키며, 마지막으로 1958년 이전에 남은 1/3을 철수시키자는 의견을 제시
1958년 2월 7일 중국은 북한정부의 건의를 지지하며, 북한정부와 협의후 중국인민지원군이 자발적으로 철수하는데 동의한다고 발표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는 북중이 8월 종파사건으로 소원해지 관계를 복원한다는 의미
1958년 3월 12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부는 철수의 구체적인 절차에 관한 공보를 발표,
1958년에 총3차례에 걸쳐 철군을 진행
제1조는 3월 15일부터 4월25일까지 6개사단 8만명이 철수
제2조는 7월 11일부터 8월 14일까지 6개사단과 특별병종부대를 포함한 10만명
제3조는 9월 26일부터 10월 26일까지 지원군사령부와 3개사단 및 후방공급부대 7만명이 귀국
북한정부는 주체 47년(1958년) 3월 15일-10월 26일까지 세차례에 걸쳐 중국인민지원군이 신의주를 경유하여 완전히 철수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
공식적으로 철수했다고 밝힌 인원은 45만명이다. 그러나 중국이 정전협정 체결 당시 120만명이 주둔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것에 의하면 전체 병력중 2/3정도는 비공식적으로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올린이:admin2019년 12월 11일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