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1

in #sct4 years ago

太宗曰, 高麗數侵新羅, 朕遣使諭, 不奉詔, 將討之, 如何. 靖曰, 探知蓋蘇文自恃知兵, 謂中國無能討, 故違命. 臣請師三萬擒之.
태종이 이정에게 말했다. “고구려가 여러 차례 신라를 침범하므로 내가 사신을 보내어 타일렀으나 듣지 않소. 이에 나는 군대를 출동시켜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하는데, 경의 의향은 어떠하오?” 이정이 대답했다. “신이 알고 있는 바로는 고구려의 정권을 쥐고 있는 연개소문이 병법에 능통하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또 중국이 멀리까지 군을 출동시켜 고구려를 정벌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폐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신에게 3만의 군사를 맡겨 주신다면 신이 연개소문을 사로잡아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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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曰, 兵少地遙, 何術臨之. 靖曰, 臣以正兵.
태종이 말했다. “3만의 적은 병력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고구려를 정벌하려면 어떠한 전략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오?” 이정이 대답했다. “신은 정병으로 공략하려고 합니다.”

太宗曰, 平突厥時, 用奇兵, 今言正兵, 何也. 靖曰, 諸葛亮七擒孟獲, 無他道也, 正兵而已矣.
태종이 말했다. “장군이 지난 번 돌궐을 평정할 때에는 기병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정병을 사용하려 하오?” 이정이 대답했다. “옛날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해 그 군주인 맹획을 일곱 번이나 사로잡았을 때, 바로 정병을 사용한 것입니다.”

오늘부터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를 소개한다.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과 당대의 명장이었던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이 병법에 관해 문답한 내용을 사관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해서 책으로 편찬한 것이다. 태종은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의 둘째 아들로 형 건성을 제거하고 황제에 올라 23년간 통치했다. 고구려를 정복하려다가 실패했다. 이정은 수나라 말기 하급관리로 있다가 이연의 휘하에 들어가 공을 세워 주요 직위에 진출했다. 이후 많은 전공을 세워 태종이 즉위하면서 대국공(代國公)에 봉해졌다.

오늘 태종과 이정의 대화는 고구려를 정벌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고구려가 신라를 자주 침범함에 따라 신라는 당나라 태종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태종은 고구려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이정에게 묻는다. 이에 이정은 대군보다는 소규모 군대를 동원해서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생포하게 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진언한다. 여기서 태종은 어떻게 그렇게 적은 군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정은 적은 병력이지만, 정병 즉 정공법으로 승부하면 승기가 보인다고 대답한다. 정병과 기병의 조화로운 모습이 중요하다. 기병인 듯 보이지만 실제 병력을 운용한 것은 정병일 때가 있으며, 정병인 듯 보이지만, 실제는 기병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정은 정병과 기병의 조화를 강조한 것이다.

참고문헌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武經七書』, 서울: 서라벌인쇄, 1987
이정(저), 『이위공문대』, 강무학(역), 서울: 집문당, 2018
성백효, 이난수(역), 『尉繚子直解李衛公問對直解』,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4
성백효(역), 『사마법,울료자,이위공문대』,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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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아쉽게 느껴집니다.

자랑스런 우리 역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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