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17

in #sct4 years ago

太宗曰, 深乎, 黃帝之制兵也. 後世雖有天智神略, 莫能出其閫閾, 降此, 孰有繼之者乎.
태종이 물었다. “황제의 병법은 참으로 심오하오. 후세에 비록 하늘과 같은 지혜와 신과 같은 지략을 가진 인물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이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오. 황제 이후 이 진법을 이어받을 만한 사람으로 누구를 들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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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曰, 周之始興, 則太公實繕其法, 始於岐都, 以建井畝, 戎車三百輛, 虎賁三百人, 以立軍制, 六步七步, 六伐七伐, 以教戰法, 陳師牧野, 太公, 以百夫制師, 以成武功, 以四萬五千人, 勝紂七十萬衆, 周司馬法, 本太公者也. 太公既沒, 齊人得其遺法, 至桓公, 霸天下, 任管仲, 復修太公法, 謂之節制之師, 諸侯畢服.
이정이 대답했다. “주나라 초기에 태공망이 이 병법을 응용하여 기도에서 정전법을 세우고, 병거 3백대와 용감한 군사 3천 명으로 군의 대오를 편성했습니다. 그리하여 6보 또는 7보 앞으로 나가서 대열을 정돈하고, 여섯 번 내지 일곱 번 적과 대전할 때마다 진용을 가다듬는 전법을 가르쳐 주나라 군대를 목야에 전개시켰습니다. 그리하여 1백 명의 용사로 적에게 도전해 무공을 세우고, 4만 5천 명의 적은 병력으로 은나라 주왕의 70만 대군을 격파했습니다. 주나라 사마법은 태공망의 병법을 근본으로 한 것입니다. 태공망이 세상을 떠나자 제나라 사람들이 그 병법을 전수하게 되었습니다. 춘추시대에 이르러 오패의 으뜸인 환공은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다시 태공의 병법을 연구해 군사들을 훈련시켰는데, 모두 절도가 있는 군대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리하여 제나라는 천하를 제패하고 여러 제후들을 복속시켰습니다.”

태종은 황제의 병법이 뛰어나다는 점을 이정에게 언급했다. 그러면서 황제 이후에 저명한 병법가를 궁금해 했다. 이에 이정은 황제 이후에 훌륭한 병법가로 태공망을 들었다. 태공망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육도와 삼략을 지은 사람이다. 육도는 문도, 무도, 용도, 호도, 표도, 견도 등 여섯 가지 도략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삼략은 상략, 중략, 하략 등으로 구성된 병서이다. 특히 육도는 삼략과 함께 가장 오래된 병법서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태공망을 병학의 원조로 받들고 있으며, 당나라 때에는 문묘에는 공자를, 무묘에는 태공을 모시기도 했다.

태공망의 병법도 황제로부터 전수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태공망이 황제의 병법을 응용하여 기도에서 정전법을 세우고, 병거 3백대와 용감한 군사 3천 명으로 군의 대오를 편성한 바 있다. 이런 병법은 4만 5천의 적은 병력으로 은나라 주왕의 70만 대군을 격파하는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태공망의 병법은 이후 사마법으로 전수되었다. 병법은 시대를 거치며 발전과 변화를 거듭했다. 현대의 군사전략과 전술에도 고대의 병법 진리는 녹아 들어가 있다. 시대는 변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보편적 원리는 그대로 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武經七書』, 서울: 서라벌인쇄, 1987
이정(저), 『이위공문대』, 강무학(역), 서울: 집문당, 2018
성백효, 이난수(역), 『尉繚子直解李衛公問對直解』,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4
성백효(역), 『사마법,울료자,이위공문대』,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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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5천으로 70만을 대파하는 전략이 우리 군에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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