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두사선을 넘다) 12-2 박태숙과의 인연, 사업실패

박태숙은 사업을 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엔젤레스에 정착했다. 박태숙 부부는 서울에 올 때면 항상 이대용 부부를 찾았다. 그리고 이대용 부부도 미국에 가면 박태숙 부부를 찾았다. 마치 친동기간 처럼 지냈다.

이대용은 월남에서 돌아와 1989년까지 공직에 근무하다고 퇴임했다. 그 이후 중소기업을 경영했다. 이대용이 퇴임하고 나서 중소기업을 하게 된 이유는 그가 데리고 있던 비서때문이었다. 이대용은 비서를 자신의 딸처럼 생각했다. 아들만 넷을 두었던 이대용은 자신의 비서를 딸처럼 생각했다. 결혼식 주례도 서 주었다. 비서의 남편이 중소기업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자신의 전재산을 투자했다. 이대용의 부인은 극력 만류했다. 그러나 이대용이 고집을 부려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럭 저럭 잘 되는 듯했으나 중소기업의 한계를 넘기 어려웠다. 수출액이 연간 600만불에 도달하기도 했으나 고질적인 운영자금 부족으로 도산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995년 2월 21일 회사를 모두 넘겨주었다. 사채는 이대용이 집과 승용차등을 팔아서 모두 갚았다. 사채를 모두 청산하고 조그마한 전세집을 얻었다.

그런 과정에서 월맹의 치화형무소에서 앓았던 두통이 재발했다. 이대용의 아내는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훨훨털라며 이대용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떠나는 날 아침에 이대용의 부인이 신세를 한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대용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아내에게 잘못을 사과하고 위로했다. 집까지 날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기는 했으나 셋째와 넷째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니, 자신의 실패가 그들에게 교훈은 되지 않겠느냐고 위로했다. 인생이란 결국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뒷일은 이대용 부인이 정리하기로 했다.

이대용 장군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이야기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실시한 인터뷰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그 인터뷰에서 이대용은 자신의 빛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정리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혼자 미국 로스엔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이대용은 박태숙과 남편 이봉덕 회장의 마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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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이 착하게사셔서 하나님이 도와주셨나봅니다.

뭐든 잘하시는 이대용장군이었지만 사업수완은 부족하셨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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