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이긴 하지만

in #krsuccess3 days ago (edited)

구름이 잔뜩 껴 침침한 아침, 도시의 빽빽한 건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작은 공원 입구에 젊은 남녀가 아무 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 주변에는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그들을 지나쳐 사잇길로 들어가 공원을 한 바퀴 빙 돌다 나왔다. 아까 그 젊은 남녀가 이제는 공원 옆 건물 앞에 마주 서 있었다. 여전히 둘 다 표정은 어두웠고, 여자의 눈은 남자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었으며, 키가 큰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외국인 남자는 살짝 걱정스럽고,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가 싶기도 한, 그러면서도 약간은 경계하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그 남녀에게 시선을 향한 채 멈칫거리며 걸었다. 나의 얼굴 표정도 저 외국인 남자와 비슷하겠지.

여자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표정은 어둡지만 차분해 보였다. 인상도, 옷차림도, 서 있는 자세도 평범하고 거칠어 보이지는 않았다. 조용하고 얌전한 인상의 남자들도 의외의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인상 따위는 그리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알지만. 외국인 남자도, 나도 그 남녀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아니 생각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문장, 말 한마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좋을 때다.’

7~80년대의 드라마나 소설에 나올 법한 말이었다. 저 상황에 과연 이 말이 어울리는 건가. 나는 이 말을 떠올렸지만, 이 문장을 생각했지만, 분명 이건 내 생각이긴 하지만, 내 생각이 아니다. 단순한 연인의 사랑싸움이라 치부하고 스스로 안도하려는 무의식에서 나온 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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