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고양이 이야기

in #kr6 years ago

어느 순간부터인가 학교에 고양이가 살게 되었어요.
몇 년 전이었는가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던 녀석이었습니다. 마치 강아지인 마냥 손을 내밀면 다가오는 아이였죠. 학생들도 그런 녀석의 애교가 싫지 않은지 매점 앞에서 만나면 먹고 있던 것을 나눠주곤 했답니다. 가끔은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로 들어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게 했지요. 그럼에도 교사입장에서도 그 녀석이 얄밉지는 않았습니다.

그 고양이는 꼬리가 마치 피카츄처럼 찌그러져 있었죠. 아마도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 흔적인 거 같았어요. 사실 그런 괴롭힘을 할 생명체는 사람 밖엔 없겠죠, 그런데도 그 녀석은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고 사람의 손길을 즐기니 참 대단한 아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학교 건물 1층 바닥 아래에 공간이 있어요. 그 공간에 환기가 되도록 해 놓은 환기구 한 곳의 철망이 소실된 곳이 있는데 어느 순간 그 고양이는 그 곳을 자기집 현관으로 하여 1층 바닥 아래 공간을 집으로 이용하는 거 같았어요. 분명 주무관님들도 그렇고 여러 선생님들도 그렇고 그 곳에 그 녀석이 살림을 차렸음을 알았을 텐데도 그 환기구를 철망으로 막지 않았어요. 마치 그 녀석이 그 곳에 자리잡고 우리 학교의 일원이 됨을 인정하는 듯이요.

그러던 어느 순간 그 녀석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어요. 암컷이 었던 녀석이 임신을 한 것이지요. 그렇게 새끼를 낳고 쪼그만한 세마리 새끼 고양이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한 마리는 그 아이처럼 노란 고양이이고 다른 두 마리는 얼룩덜룩한 아이들이었죠. 그 고양이들 모두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았기에 학생들의 귀여움(어쩌면 괴롭힘일지도)을 받으며 생활했죠.

그렇게 마치 학교 구성원 중 하나처럼 사람을 따르며 함께 지내던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그 녀석의 새끼로 짐작되는 고양이들만 간혹 보였지요. 근데 늘 사람을 겁내지 않던 그 고양이 가족들이 사람 그림자만 보여도 도망을 갑니다. 그로 미뤄 짐작해 봐서 그 노란 고양이가 사람에 의해 일을 당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됩니다.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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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주치자 슬금슬금 도망갑니다. "냐옹"하고 부르니 뒤를 돌아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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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 구멍이 '고양이들의 집' 현관입니다. 여전히 막아두지 않았고 여전히 고양이들은 저곳을 집처럼 이용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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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가려던 녀석이 집 입구 앞에서 멈추더니 저 자세로 저를 바라보네요.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걸까요? 근데 녀석 모습이 앞서 말한 그 노란 고양이와 너무 흡사합니다. 분명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었는데 말이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고양이는 말이 없네요. 저는 그만 갈길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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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인지 또 다른 고양이를 만납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리오라고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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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로록 도망갑니다. 제가 무섭게 생긴 걸까요? 사람이 무서워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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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고양이가 도망간 곳을 지나치는 데 문득 옆을 보니 한 마리 더 있네요! 오늘은 세 형제(혹은 자매, 남매) 고양이를 다 만나게 되는 날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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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다가오면 도망갈테니 그냥 가던 길 가라는 눈빛이군요. 그래서 '안녕' 하며 그냥 손만 흔들어 주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이 오면 긴장하고 도망가는 고양이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고양이들이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이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부디 저 고양이들이 계속 우리 학교에서 무사히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가끔 길을 걷다 햇볕에 발라당 누워있는 모습도 보여주고 자동차 아래에서 삐죽 얼굴을 내미는 모습도 보여주면서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아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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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를 그려주신 @dorothy.kim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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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들이 더이상 없는 날이 오려나 모르겠네요.. 모두가 사람들이 키우다 버린 결과물인것 같은데.. 이뻐하는것도 사람.. 미워하는것도 사람.. 모두가 사람에 의해 돌아가네요~ 저 작은 구멍속의 보금자리는 그나마 따뜻하길 바래야 겠네요~

길냥이들이 늘어나서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사람이 만든 문제이기도 하지요. 부디 길냥이와 같은 버려진 반려동물에 대해 좀 더 따뜻하게 대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나왔으면 좋겠고요. 고양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잘 살길 바라지요.

귀여운고양이들~ 건강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부디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

고양이들이 많네요. :)

말씀대로 사람에게 잘못 안하고 편안히 계속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서로 잘 공존하고 살아가면 좋겠어요. 급식소에서 나오는 잔반을 좀 나눠줘도 좋을 거 같고요. 고양이가 있다고 따로 사람에게 해코지 하는 것도 없으니 말이죠.

한국은 길냥이들이 이곳 청설모 수준으로 많은 것 같은데
미국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길냥이의 대부분이 사람에게서 키워지다 버려지는 것이라 어쩌면 반려동물을 쉽게 버리는 의식에 그 문제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이와는 다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고요. 음... 어떤가요? 미국에서의 반려동물을 버리는 것에 대한 인식은요?

법은 잘 모르겠지만 버려지는 동물을 거의 못본 걸로 봐서 법제도가 강력하거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선진화된 것 같습니다. 제가 키우는 강아지를 잠시 밖에 두고 집안일 하다가 잊고 있었는데 옆집에서 바로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고 그러더군요.ㅎㅎ 제가 실수했다고 수습하고 들어왔습니다.^^

왠지 부럽단 생각이 드네요. 미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키울 땐 마치 가족이라도 되는냥 아들이니 딸이니 동생이니 하다가 매몰차게 버리니... 이에 대한 인식이나 관련 법규의 강력함이 부러운 면이 있어요.

그러게요. 고양이들이 보면 어미가 새끼들과 항상 같이 다니고 그러던데...
또 모르죠, 갑자기 어디서 나타날지도..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전 세번째 고양이처럼 얼굴에 색이 섞인 녀석은 좀 무섭더라구요.ㅜㅜ
전 마주쳤으면 깨깽했을 거 같아요.ㅋㅋ

색섞임이 호랑이 같기도 하고 그렇군요, 다시보니. 뭔가 얼굴 반반 색이 다르고 하니 어릴 적 봤던 마징가z의 아수라 백작 같기도 하네요. ^^;;; 근데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놀라서 도망가려고 자세를 잡던 걸요.

전에 tv에서 이런 고양이들을 추적, 관찰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사람이 잘못한 게 원인이더군요...ㅠㅠ

어떻게 반려동물을 버릴 수 있는지, 그렇게 길냥이를 만들어 놓고는 그 길냥이를 또 미워하는 것 역시 사람이지요. 좀 더 길거리 동물에게 상냥해졌으면 좋겠네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너무 사랑스럽네요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워야할 거 같아요.

학교 고양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흐믓했는데 마지막이 마음 아프네요.
아직도 길냥이나 유기견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노란 고양이 얼굴이 무척 슬퍼 보이네요.
앞으로 냥이들이 편안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 하네요ㅡ~~

이상하게 길냥이를 보면 쫒아내거나 없애지 못해서 안달인 분들이 있긴 하더군요. 울음소리가 불길하다던가 쓰레기 봉투를 찢어서 지저분하게 한다던가 하는 이유로 말이죠. 말씀 듣고 보니 노란 애 눈빛이 슬퍼보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저 아이들이 다 평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찾아 오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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