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책방]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 비교 II

in #kr8 years ago (edited)

illustration by @carrotcake


지난 글을 보고 @bree1042 님께서 영어 번역본도 비교를 해보겠다고 하셔서 몇 문장 더 이어본다.

3장까지의 내용 가운데 몇 문장이다.

이윤기 번역유재원 번역
"빈대는 없어요. 없을 거예요." 오르탕스 부인이 도발적인 시선을 던지며 부르짖었다. "맙소사, 거예요, 라니" 캘리밴의 익살스러운 입이 그냥 있지 못했다."삔때, 삔때는 업세용, 업숑." 퇴물 여가수가 도전적으로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있세용, 있숑!" 칼리반의 수많은 입들이 껄껄대면서 소리쳤다.

마담 오르탕스는 프랑스 여자다. 그리스어를 구사하기는 하나 발음이 조금 틀리는 듯하다. 그에 관한 내용이 아래에 소개된다. 유재원 씨는 그러한 마담 오르탕스 부인의 발음을 살려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어 원전을 읽을 수 없으니 확실하지는 않다)


유재원 번역, 문학과지성사, 2018-05-25 출간

이윤기 번역유재원 번역
그가 속삭였다. "두목, 저것 좀 보쇼. 저 잡년이 궁둥이 흔드는 것 좀 봐요, 삐뚤빼뚤! 꼬랑지에 기름이 잔뜩 오른 암양 같군 그래!""이봐요, 저 여자 좀 보쇼." 그가 내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꼭 오리 새끼가 걷는 것처럼 걷지 않소? 통통한 엉덩이를 암양같이 이리저리 흔드네!"

'잡년'과 '여자'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윤기 씨 번역에는 '오리' 비유가 나오지 않는다. '암양' 비유도 조금 다르다. 이윤기 씨는 암양을 '기름이 잔뜩 오른 암양'이라 한 반면, 유재원 씨 번역은 그냥 '암양'이다.

이윤기 번역유재원 번역
"하이고, 산다는 게 다 뭔지! 저 잡년이 끝내 사람 속을 뒤집어 놓네요.""빌어먹을 인생이여, 이 부끄러운 일이 끝나지를 않네!"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윤기 씨 번역은 조르바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여자'에게로 돌리는 느낌을 주는 반면, 유재원 씨의 번역은 그러한 느낌 보다는 조르바 자신에게로 향하는 듯하다.

이윤기 번역유재원 번역
여자가 쓰는 말은, 단어를 잘라먹고 음절을 아무렇게나 뒤섞어 버려 제멋대로 생겨 먹은 그리스 어였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하게 여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신통치 않은 그리스어를 구사했다. 때로는 음절이 얽혀 '나바르호스'를 '나브라코스'라고 하고, '에파나스타시'를 '아나스타시'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도주 덕분에 그녀가 하는 말을 완벽하게 알아들었다.

여자의 그리스어 실력이 나오는 장면이다. 이윤기 씨 번역은 조금 생략되어 있는 반면, 유재원 씨 번역은 구체적인 사례들이 들어가 있다. 여자의 그리스어를 알아들을 수 있던 이유에 대해, 유재원 씨 번역은 '포도주 덕분에'라고 들어가 있다.

이윤기 번역유재원 번역
조르바가 내게 신호를 보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두목, 이 여자 분위기가 잡혔어요. 제발 우리 둘만 좀 있게 해 줘요."조르바가 내게 눈짓을 하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대장, 이 여자 사타구니에 불이 붙었어요. 이제 빨리 떠나슈!"

'분위기가 잡혔다'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인 반면, '사타구니에 불이 붙었'다는 표현은 낯설다. 날 것의 느낌이다. 조르바니까 사용할 수 있는, 무척 조르바다운 표현으로 보인다.

위 번역 비교는 번역의 우열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윤기 씨는 그리스어-불어-영어-한국어 삼중 번역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하였다. 언어마다 하나의 단어가 지니는 의미의 범주는 조금씩 다르게 마련이라 단어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는 손실되는 반면 어떠한 의미는 가미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중번역만이 아니라 모든 번역이 가진 숙명 같은 것이다. 중번역-삼중번역은 그것이 조금 더 크게 나타나는 것. 번역가를 거쳐 새로운 언어로 태어나는 글에는 원문에서 느낄 수 없던 새로운 느낌이 있게 마련이다.

짧은 비교를 마치며
이제 바톤을 브리님에게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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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님 번역본만 읽어봤는데 재미있습니다ㅎㅎㅎ 제가 좋아하는 구절들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었을지도 궁금하네요 :)

조르바님 오셨군요. 조르바가 '나'를 부르는 호칭도 '두목'과 '대장'으로 다릅니다. 조르바 님은 어떤 게 더 마음에 드시는지요? ㅎㅎ

영어판에서는 boss로 부르더라고요.
두목은 왠지 깡패나 조폭, 악당 등의 느낌이 나서.. 대장이 더 어울릴 거 같긴 한데,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제 취향은 두목이 더 끌리긴하네요ㅎㅎㅎ 뭔가 제가 생각하는 조르바랑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영문판도 있는데 읽다가 단어 찾다가 시간 다 가서 멈춰버렸어요ㅋㅋ 리스팀 해갑니닷ㅎㅎ

이전에 읽은 책이 이윤기님 번역본이었나 보네요.

새로운 번역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유재원 번역이 좀 더 원문에 충실한거 같다 싶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윤기 번역은 중역이었군요. 뭐 그래도 중역을 선호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ㅎㅎ

이따가 글 올릴게요. ^^
오늘 올려주신 부분은 내일 찾아서 올려보겠습니다. :)

삼중번역 말고 번역된 거로 읽어봐야겠어요.
비교분석 감사합니다.

역시 완벽한 번역이란 불가능하군요^^ 번역은 정말 재창작인듯.

중역을 하면 할수록 번역가의 재량에 의존하는 원본과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나올수밖에 없는거군요 @_@

하긴 구글 번역기도 언어 몇번 바꾸다보면 도저히 원 내용을 알아볼수 없긴했지요 ㅋ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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