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64. 하이힐과 스타킹을 신은 남자, 드랙(drag)
드랙(drag)은 성소수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생겨난 공연예술의 한 형태이다. 타고난 성별에 따라서 통용되는 옷차림이나 행동등을 다른 성별에 맞춰서 바꿔입고 행동을 다르게 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인데, 그 중에서도 남성동성애자가 본인만의 개성에 여성성을 더해서 만들어낸 캐릭터가 '드랙퀸'이라고 한다. 이른바 여장남자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드랙퀸은 무대위에 설 때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공연정체성이 담긴 드랙퀸 네임을 사용한다고 하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트랜스젠더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는 90년대 이전부터 서울 이태원을 중심으로 하여 알음알음 소개받으면서 극소수에게만 이들의 공연문화가 알려져 있었고, 이들이 양지로 나오면서 매스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약 2 년전 부터라고 한다. 서울 이태원에서 드랙퀸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한 클럽에서는, 이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주말에 공연을 하게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찾아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드랙이 성소수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한 갈래로 흡수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한다는 시각도 등장하고 있다.
드랙 문화의 확산 원인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커뮤니티가 성장하고, 그들이 목소리를 밖으로 내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15년부터는 매년 서울광장에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오늘날의 대중적 판단은, 성소수자라고 분류되는 이들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을 해야 할지, 아니면 정신이상자 혹은 자연의 법칙에 거스르는 변칙적인 자들이라고 악평하면서 거부해야 할지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이것을 개개인의 성적취향으로서 인정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인 성적일탈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용납을 해서는 안되는 것일지를,,, 하지만 성소수자권자들의 주장은 이와는 다르다. 남성동성애, 여성동성애자 등을 포함하여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남여 한쌍의 성적 결합만을 정상으로 보는 것은 다양한 인격성의 특징과 자기권리로 사랑의 대상을 정할 수 있는 것을 강제로 억압하는 것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적 흐름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성적인 것에 대한 관념에 대해서 억지로 쪼아놓고만 있었던 것을, 이제는 양지로 끄집어내어서 진실로 바르게 알아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떳떳하게 밝혀 내어야만 하는 시대에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성소수권자들의 주장에 상당히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로지 정상적인 성적인 관념의 대상과 그 행위를 남과녀 한쌍의 성기결합만으로 한정지어서 인식하는 것은 시대적 발전성과 동떨어진 관념의 틀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부터 벗어나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도 다양한 성적 취향과 애정의 대상을 솔직히 사회적으로 인정을 할 것은 인정을 해주어야 하는 때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시대적 흐름은, 왜 남여의 성적 정체성을 거부하고 동일시 평등시 하려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듯한 현상들이 사회일각에서 자꾸 붉어지고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서, 직업적인 면이나 사회활동적인 면이나 육체노동적인 측면이나 지성적인 직업의 측면이든지, 심지어는 가정생활과 법적인 권리의 측면까지도 남녀를 성적인 차별의 대상으로서 구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더더욱 그 동질성을 강화시키면서 결합시키는 쪽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성소수권자들이 목소리를 키우면서, 자신들의 성적취향과 사랑의 대상을 인정받음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더 이상 차별을 두지 말고 바라보아 달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의 경계를 허문다는 것, 그것은 자연의 법칙과 섭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인간의 지성적 능력이 발전하면서 드러나게 되는 더 다양한 형태의 자기행복 추구라는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설령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전환자들의 경우에도, 선천적인 성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성징을 원하는대로 바꾸었다고 해도, 그것 자체는 자연의 섭리적으로 남녀가 이원화되어져 있는 법칙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든지 성의 정체성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 발전의 차원이자, 사회적 관습적 차원의 문제이지, 자연의 섭리라는 형이상학과 도덕성과 윤리적 관념의 차원으로만 접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남여의 성 경계를 허물고 마음대로 성별을 바꾸는 것이 죄악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마치 유전공학과 생화학적 생체기술을 이용하여, 자신의 신체노화를 억제하고 정해진 수명보다도 몇 곱절을 더 오래산다고 하면, 이것 역시도 신의 섭리와 정상적인 인간의 도덕성에 반하는 악한 짓이 되는 것일까?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커즈 와일은, 앞으로의 세상을 예언하기를 2040년안에 생체기술과 나노공학이 발전하면서 신체의 특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되고, 남녀의 성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레이커즈와일의 예언은 거의 80%이상이 적중되었다고 하니, 앞으로의 그의 예언들도 대부분은 큰 틀에서 적중하리라 예상이 된다. 실제로 지금의 생체공학과 나노기술의 발전수준은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하여, 신체의 장애부분을 잘라내고 새로 만들어서 이식하고 갖다 붙이는 것이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해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속도에 따라서, 과학과 철학 윤리와 도덕의 제정립이라는 난해한 문제가 발생하기는 하겠지만, 결국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지금까지의 당연하다고만 여겨져왔던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나올 수 밖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 신체의특성을 마음대로 바꿀수있다는것... 저로써는 안타까운생각이들기도해요 점점더 발전하는 미래 기대도 되지만 언뜻 우려될 부분도 더 많이 생기지않을까 생각이되네요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도덕정인 경계긴 하지만 생체기술과 나노공학의 발전으로 진정 그리된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상상을 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도덕적인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신체의 특성을 마음대로 바꿀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점점 재밌어 지겠군요....;;
고정된 성관념도 미래엔 바뀌게될 편견인지도 모르죠..ㅎㅎ 오늘도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여전히 참 어렵고 논쟁이 심한 주제가 '성소수자' 인 것 같습니다.
찬성한다 반대한다도 중요한 개인의 관점이겠지만,
적어도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볼 수 있는 자리와 인식정도는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랜 수 천년동안 이어져오던 기준이나 생각의 틀이 부정하고 변화시키려니 참으로 힘든 일이겠죠. 그래도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일부 권리를 보장하며 허용을 했지만, 전통적인 종교적 색채를 띄는 나라에서 그게 가능해질 지 모르겠습니다.
성소수자 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은 들지만...
실제로 만나면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정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합니다. 제 머리로는 상상도 못하겠지요.
저는 사랑이라는 것이 남녀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녀의 인식보다 개개인의 인격으로 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전 성소수자의 퀴어 문화가 확산 되는 걸 좋게 보고 있답니다.
낚시줄 풀리고 잠그는 드랙은 알아도
드랙이란단어가 저런뜻도 있었네요
의미있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