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살며 글 쓰기

in #kr4 years ago

글은 구체적 삶 속에서, 역동 속에서, 사람과 자연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건져 올려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글만 쓰는 글쟁이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소위 전업 작가들 말이죠.

어떻게 글만 쓰며 살면서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경험과 직관의 세계에서 멀어져 있는데요? 그건 말이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관념의 똥 덩어리들로 가득찬, 훈련된 언어의 조탁을 동원해 사람의 영혼을 잠깐 홀릴 수 있겠지만 금세 잊혀지고 마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20세기 소년의 여름을 준비 중인 팀 춘자의 멤버들은 모두 작가들입니다. 혹은 생활인입니다. 혹은 몽상가들이죠.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모여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치열하지만 즐겁게 토론하고 실제로 수행하며 수행의 결과물에 대한 냉철한 모니터링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성실하게 사는 글쟁이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저녁에 각자의 거처로 돌아가 글을 씁니다. 그 글들은, 물론 내가 그 과정에 함께 했기에 더욱 생동감 있게 읽히겠지만, 살아가는 것, 살아가면서 수행해야할 온갖 미션들에 대한 고민과 성취에 대한 소박한 희열과,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글에 대한 근거 없는 신성을 바탕으로 생활로부터 괴리된, 귀족형, 혹은 양반형 글쟁이들에 대한 냉소를 더욱 확실하게 신념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쾌감은 내가 살아 움직이며, 인간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를 매일 체험하고 있다는 겁니다. 글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이 글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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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 작가님 이 글 너무 감동입니다.
사실 전 나태의 아이콘인데 20세기 소년을 만나 버닝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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