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in #kr5 years ago (edited)

요즘 내 얼굴이 밝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럴 수밖에. 모처럼 하루하루 설레고 신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소년의 펍 바텐더로 일하는 것도 신나고 무엇보다 4명의 팀 춘자 동지들과 매일매일 이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논의하고 새로운 메뉴를 시식해 보고 커피를 만들어보는 시간들이 즐겁다. 우리는 7월부터 시작될 ‘20세기의 여름’ 프로젝트를 위해 각자가 가진 모든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이런 게 사는 거지. 하며 나는 흐믓한 미소로 동지들과 함께 나눠 마실 와인을 따곤 한다.

사실 지난달까지 나는 딱 죽을 것 같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알콜 중독자처럼 줄곧 술을 마시고 다시 잠들었다. 아마도 깨어 있는 시간이 고통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야심차게 펍을 열었지만 1층 30평, 지하 40평의 공간을 나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였다. 하릴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럽고, 그날 그날의 매출 상황에 일희일비하는 마감 시간이 고통스럽고, 내가 과연 이 일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하는 시간도 고통스러웠다. 매니저의 출근 시간이나 체크하는 한심한 고용주가 되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러는 사이, 애초에 내가 왜 ‘20세기 소년’이라는 공간을 설계했는지조차 까먹었다. 나는 그냥 망하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 코로나 국면을 고통스럽게 버티고 있는 식품접객업 자영업자의 한 명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정부가 ‘방역’의 제스처를 위해 생계에 막대한 고통을 초래하는 통제를 가해도 선거 때 표의 향방에 큰 변수가 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만만한 유권자층인 자영업자.

5월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며 나는 생각했다.

함정에 빠진 건가? 너는 원래 글을 쓰고 말을 하던 놈이었잖아? 글을 쓰고 말하고 창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 그들이 서로 교류하고 멋진 에너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1920년대 파리의 살롱 같은 공간을 꿈꿨잖아? 그래서 우연히 들른 손님들도 단순히 술에 취해 스트레스를 푸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20세기 문화의 긍정적 세례를 받고 영감을 얻기를 원한 거잖아? 그게 네가 꿈꾸던 공간이니까. 그런 공간에서 놀고 싶어서 네 스스로 나서서 만든 게 20세기 소년이잖아. 그런데 설계자 최광희, 너는 왜 이러고 있지? 막다른 골목이야? 그렇다면 돌파구를 뚫어.

어떻게 돌파구를 뚫을 것인가. 막연했다. 통장 잔고는 갈수록 줄어들고 나는 생활인의 불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책도 읽히지 않았다.

5월 21일에 반전이 일어났다. 그날도 잠에서 막 깬 직후에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후원을 받자. 그게 돌파구다. 장충동의 펍이 20세기 소년이 아니라 내가 20세기 소년이다. 그 소년이 지금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러니 누구라도 내 진정성을 아는 이라면 후원을 해줄 것이다..후원이 아니라면 대관절 나 같은 글쟁이는 어떻게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들의 비겁한 방향성에 맞추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레거시 미디어의 외면을 받고 있는 처지에 말이다. 하다못해 오마이뉴스 같은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조차 내게 유럽 여행 중 느낀 코로나 상황에 대해 기고를 의뢰해 놓고 막상 글을 써 보내자 독자들로부터 민감한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며 쩔쩔 매는 바람에 기고를 취소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의견의 자유 시장’이라는 근대의 정신이 21세기 한국에서 코로나라는 역병이 아닌 공포와 혐오를 재생산하는 코로나 여론 정치에 의해 무기력하게 패배했음을 확인하고 절망하였다.

난관에 부딪혔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시,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하여 나는 페이스북에 글값 후원을 해달라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마법이 일어났다. 그날 하루 후원금이 쇄도해 무려 300만 원이 모였다. 나는 애초 10-20만 원 정도의 후원금이 모인다면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이들이 선뜻 내게 후원금을 보내준다는 사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다. 그들은 나를 일.으.켜.세.웠.다. 우선 나는 극도의 불안증과 공황 장애에서 탈출해야 했다. 그건 의지와 지성을 다시 동원하는 것이다. 모든 힘을 기울여 다시 꿈꾸는 용기를 품어야 하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마법은 거기서 그친 게 아니다. 글값 후원을 해달라는 글을 쓴 바로 그날, 누군가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후원금을 보내드릴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좀더 지속적인 도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책을 내보지 않겠냐”고 아주 조심스러운 어투로 제안했다. 나는 그에게 당장 만나자고 역제안을 했고, 우리는 며칠 뒤 20세기 소년에서 마주 앉았다. 작가이자 콘텐츠 디자이너이며 출판 편집인인 두 사람을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나는 직관적으로 “이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안에 대한 접근 방식이 내가’ 구체제’라고 부르는 한국의 현재, 그러니까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자본주의 질서를 불가피한 일상으로 여기는 이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법사 멀린’(@mmerlin)이라는 필명을 쓰는 분은 내가 매일 아침 술을 마신다고 하자 “매일 오전 10시에 20세기소년으로 나올테니 작가님도 나오세요.”라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아침에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면 나는 다시 술독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 역시 내가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될 터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6월부터 매일 아침 그를 만났다. 우리는 장충동에서 가장 가까운 남산 산책로를 매일 함께 걸었다. 그러면서 서로가 가진 생각을 가늠하고, 거리를 좁혀가는 시간을 가졌다. 신뢰는 상대에 대한 성실함에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마법사 멀린의 성실성에 매료되고 있었다.

짧지만 진정성 있는 모색과 소통의 시간을 거쳐, 우리는 20세기 소년을 함께 일구어나가는 데 합의했다. 마침 마법사 멀린과 그의 동지들 역시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고, 우리는 그 꿈을 실현할 공간으로 20세기 소년만큼 적절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로 ‘20세기 여름’을 준비하고 있는 ‘팀 춘자’다. ‘도저히 나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뼈아픈 깨달음에 고꾸라진 지 보름여만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만약 절망에 겨워 20세기 소년을 포기해 버렸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만약 글값 후원을 받겠다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선량한 힘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만약’이라는 전제는 부질 없을지도 모른다. 일은 어차피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도록, 운명지어져 있으니까 말이다. ‘운명’이라는 말을 쓴 건 이게 결코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딱 필요한 시점에 의지와 지성을 다시 동원했고, 그리하여 다른 의지와 지성과 조우할 수 있었다. 내가 지난 5월 21일 이후 겪어온 이 과정이 7월 이후 20세기 소년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다. 내가, 영민하고 선량한 동지들과 함께 그렇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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