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먼 페미니스트

in #kr6 years ago



처음 뒷통수에 망치를 내리친 사람은 정희진이었다. 3년 전, 그당시 교류하던 친구들과 <페미니즘의 도전>을 함께 읽었다. 충격이었다. 몰랐던 사실을 알았을까? 아니다. 그의 언어는 무의식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던 세계를 바깥으로 열어주었다. 그러니 '새삼스런' 충격이었다. '현실은 렌즈를 통해서만 재현 가능하다'(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매개체를 통해 현실과 거리두기가 가능하며 그때서야 '겨우', '새삼'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당시에 이어서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읽고 나는 속으로 선언했다. "나는 앞으로 페미니스트야!" 아 스스로 멋있어라.


모두 다 알다시피 이후의 한국 사회는 전례없는 페미니즘 광풍이 일었다. '페미니스트'인 나는, 동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새로운 태도를 꺼내기 시작했다. "야, 그런 말 하지 마." 읭? 이 새끼 갑자기 왜이래?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2016년 말에 트위터를 중심으로 예술계 성폭력 해시태크 운동이 일었을 때도 나는 열심히 '공유하기'와 '좋아요'를 누르며 나의 피씨함을 과시했다. 또 첨예하게 대립하는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생기면 그때마다 등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명문을 읽으며 여성의 언어를 열심히 엿보았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기 직전, 가까운 여성 지인이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인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나는 참을 수 없이 분노했다. 생천 처음 성폭력상담소를 찾아가기도 했고 변호사를 만나보기도 했다. 현재 안희정 - 김지은 사건이 이 땅의 모든 성폭력 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듯이,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똑똑히 목격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니 이긴다고 해도 피해가 더 막심한 싸움이었다. 보이지 않는 큰 벽을 실감했다. 납치당한 사람이 겨우 탈출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알고보니 그 사람도 공범인, 스릴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상황이 이어졌다. 나는 여성의 현실을 체감했다.


그런데 내 내면에서는 점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페미니즘에 공감할수록, 성폭력범을 비난할수록 점점 내 과거가 떠올라 괴로웠다. 떠오르지 않는 과거 앞에서는 더욱 괴로웠다. 그러니까 불과 몇 년 전까지 남성들이 '자연스럽게' 공유했던(심지어 무용담으로 둔갑했던) 언행들이 이제 '범죄'로 불리우고 있었고, 나도 거기서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도 너처럼 죄책감이라도 갖는 남성이 어디있니?" 라는 주변 여성의 후한 평가가 내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도 너처럼.."이라는 말을, 여성으로부터 무슨 면죄부라도 받은 양 여겼던 자신이 더욱 가증스러웠다. 사회에서 폭로된 성폭력범과 나는 본질적으로 다를까?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페미니즘 관련한 글에서 '좋아요' 와 '공유하기'를 멈췄다. 나는 페미니즘에 발언권이 없었다.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오면 그냥 침묵을 선택한다. 중간이라도 가자는 심정으로.


더 절망스러운 것은 '페미니스트'로서 개과천선했다고 믿었던 그 후의 일이다. 가끔 내 입에서는 '말실수'라고 보기 힘든 여성혐오적 언어가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심지어 그 심각함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실수가 아닌 숨어있던 내 본질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나와, 몸에 각인된 나의 간극은 너무나 컸다. 또 어떤 자리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농담들이, 다른 자리에서는 갑분싸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장담할 수 없다. 나는 또 내가 방심한 사이에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본질을 드러낼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나에게 상처받았고 상처받을 사람들에게 사과한다. 미안하다. 나는 '현재진행중'인 여성혐오자라는 사실을, 더이상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너처럼.." 이라는 말은 듣고싶지 않다. 그냥 현재의 나를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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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좋은하루 돼세요.
잘지내보구싶어 댓글달고감니다. 잘부탁드려요.^^굽신

인간이 자신을 담고있는 사회의 통념과 풍습을 건너 뛴다는게 쉽지않은 일이죠

건너뛰는 사람은 못되어도 발맞춰가는 사람이라도 되길 희망해요.

가벼이 생각했던 것들이 무겁게 떨어졌군요.

공기처럼 떠도는 것들이었죠. 이제는 경계해야 할 공기들이 되었습니다.

공권력을 접해보면 많은것이 바뀌죠. 엄마의 피로 손이 젖은 딸에게 "아버지에게 말 조심하라"고 소리지르는 경찰을 만나는 일이 여려운 일도 아니고...
살아오며 배운 시간이 있으니 여자의 입에서도 나도 모르게 여성혐오적인 단어가 튀어나오는 일이 흔합니다. 언젠가 나보다 어린 세대에서는 다르기를 바라는 마음만 남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들 앞에서는 정말 무력해집니다 ㅠㅠ 살아왔던 관성 탓이겠죠. 그래서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이 남은 것 같으니.. 열심히 노력해야겠습니다.

과거에 관행이라고 여겨졌던 수 많은 것들이 지금은 불가한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과거에 행했던 많은 차별 역시 지금은 달라지고 있지요
링컨이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전에는 노예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였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사람들은 변화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변화하고 있다는걸.... 인식하는것 그 자체가 큰 변화지요

네 맞습니다. 변화를 인식하고 일단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저도 같은 이유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지칭하기에는 여전히 얼굴이 너무 간지럽습니다. 인간은 무리를 한데 묶어 부르기를 즐기기 때문에 특정한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붙혔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 제각각이고 미국인이 제각각 이듯이 페미니스트도 제각각인데 페미니스트라는 명찰을 달기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있는 것 같고, 더 강하게 자기검열을 하게 되네요. 올바른 페미니스트라는 데에 기준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저는 그 기준에 완전 할 수 없을거라는 자기 위안과 함께 지금 시대가 변화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고 더 배우고 나아지겠다는 태도로 임하고 있습니다. ㅎㅎ

맞습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한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싶네요. 긴 댓글 감사합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달까요. 모르다가 알게 되고, 반성하고, 또 실수했다가 다시 다짐하기를 반복하는 게 인간이니까요.. 스스로에게 만족할 날이 오길 바랍니다.^^

맞습니다. 뒤늦게 깨달아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될까봐 그게 무섭네요 ;;

여자인 저도 페미니스트는 아닐것 같아요.
이미 자라온 환경으로 익숙하게 이미 때가 타 있는것만 같거요든요.
정신을 차리며 살아야겠어요..

이미 자라온 환경이라는게 생각보다 무섭네요 여자보다는 남자가 곱배로 더 정신차리고 살아야되겠죠.

  1. 부자는 가난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아는 방법이 없을까요?

  2. 부자가 가난한 이의 입장을 대변하고 거기에 동의하는 것이 주제 넘는 일일까요?

  3. 부자가 가난한 이의 입장을 헤어리고자 할때 가난한 이가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은 일일까요?

부자/가난한 사람으로 예를 두었지만 기득권/비기득권,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라고 바꿔 읽어도 상관은 없지요.

기득권/비기득권 비유보다는 뭐랄까요 과거에부터 지금까지 도둑질을 주욱 하고 있는 사람이 경찰 노릇을 상상했을 때의 딜레마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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