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것은 짜릿하다
@garden.park 님이 낭만에 대한 글을 모은다는 소문을 들었다.
낭만?
낭만이 뭐더라....
기억 속에서 낭만과 유사한 무엇을 찾다보니 옛날에 써둔 글씨 한점이 눈에 띈다.
이걸 왜 썼지?
그날 무슨 낭만이 심연 속에서 떠올랐던 걸까?
모르겠다. 난 일정부분의 기억을 대뇌피질에서 도려냈던 것만 같다.
음...그런데 또 하나의 낭만덩어리가 발견되었다.
뭐뭐지? 이건....
아.............................칠흑같은 어둠에 잠겼던 내 기억의 황무지에 갑자기 한 곳에 불이 들어왔다.
그 조그마한 불빛을 따라가보니..........................
숙대입구의 지하 화실이 떠오른다.
약간 퀴퀴한 물감냄새와 곰팡내...그리고 난 뭔가를 뭔가를 수리하고 있었는지 망치를 찾고 있었다.
스무살의 나.
아! 내게 스무살이라는 역사도 있었구나!
30 이전은 신화인줄만 알았는데...
맞아! 내 신화의 기억속 책장을 넘겨보니 난 그 지하화실에서 그림을 그렸었고 홍대 1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러고도 그 화실의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거길 떠나지 못하고 강사노릇을 하면서 몇몇 친구들과 거기서 지내곤 했었다.
그래, 난 망치를 찾아 밖으로 올라왔다.
밤 12시 경이었을까?
통행금지가 있었던 마지막 해였나보다. 행인이 끊어진 거리 저편 골목에 불빛이 하나 보인다.
걸어가보니 작은 방 하나-창에 커텐이 둘러있었지만 희미하게 책꽂이가 보였고 그 안은 꿈 속의 공간처럼 따스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난 문을 두드렸다.
이게 참 희한하다. 심야에 남의 방문을 두드리는 남자라니!
문이 열리고 내 또래의 아가씨가 고개를 내미는데 이건 마치....
치기로 만들었다가 상품화시키지는 않고 인형작가의 방 한쪽에 던져진 일본 인형같은 얼굴이었다.
"망치 좀 빌려주실래요?"
그녀는 기가 막혔는지 날 빤히 바라보더니 망치를 건네주었다. 피식 웃었던가...
난 망치를 쓰고나서 다시 그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에게 망치를 돌려주고 고맙다고 돌아오려는 내게-
" 바쁜 일 없으면 커피 한잔 할래요?"
심야에 바쁜 일이 있을 턱이 없다. 더구나 혼자 있는 아가씨의 방에 들어가볼 수 있다는 이 지독히도 낭만적인 경험을 외면할 수는 없지않은가?
그땐 겨울이었고...그녀가 타준 커피는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기억나는 것은 온 벽을 가득 채운 책이었다.
그녀는 문예창작과 1년생, 난 미대 1년 생, 나이도 같다는 것을 안 우린 순식간에 가즈아대학 신입생인냥 말을 놓고 있었다. 그녀는 시인이 되겠다고 혼자 자취하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단다.
자유? 그 당시엔 여자로서는 꽤 도발적이랄 수 있는 담배, 술, 그리고 금지곡 듣기, 그리고 친구들 아지트놀이...그리고 무제한의 독서....그런 것이 자유인 모양이다.
난 책들을 살피며 촌에서 올라온 학생 눈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가 물었다.
"그 책 읽어 봤니?"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들어는 본 것 같은데..."
"안 봤구나? 톨스토이 책은 당연히 봤겠지?"
"톨스토이...이름은 알 것 같아."
여기서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내 심장을 저격하는 육혈포같은 한방을 던졌다.
"너...상당히 무식하구나?"
그 한마디는 내 인생의 축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어주었다.
그때 이후 난 책을 읽고 시집을 사모으며 시를 읽고 또 지었다.
난 그녀가 익숙한 그 문학동네에서 나도 어색하지는 않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날-난 상당한 시간을 그녀의 공간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녀는 김민기의 금지곡들을 테이프로 들려주었다.
우린 커피와 담배를 나누고 같이 노랠 흥얼거리며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모든 금지된 것은.................................................................. 짜릿하다. 그렇지 않은가?
석유난로의 기름냄새도 더없이 달달하게 느껴진 겨울이었다.
재밌는 스토리네요ㅎㅎ
망치로 시작한 스토리라니..
그죠. 망치로 시작해서 수많은 일들이 이어지지요.^^
"너...상당히 무식하구나?"
치명적인 여성분이셨던 듯 합니다. 이런 저런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글을 써 주셔서 개인적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몇 일 간 쓰지 못 했던 글을 다시 써야겠습니다..! ^^
팜므파탈이 아닌 팜므 직사포랄까요? ㅎㅎㅎ
이런 자리 마련해주셔서 덕분에 가슴이 따스해지네요. 추억으로...
새벽녘에 망치를 찾아헤매는 모습이 퍽 무서워보였을수도 있는데, 용감한 동갑내기 아가씨였나봐요. 도발도 잘하고 ㅎㅎㅎ
저보다 용감한것은 분명했어요.^^지금 시절이라면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죠.ㅎ
ㅎㅎ 이런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어요ㅋㅋ
그 여자분께 받은 영감이 이어져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거 아닐까요?ㅎㅎ
그런지도 몰라요. 그후로 모은 시집이 꽤 되거든요? ^^
망치에서 이어지는 로맨스라니요... 낭만적입니다!
지금도 망치를 보면 그날이 떠오르곤 하지요.ㅎ
이젠 유식해진 중년에 떠올리는 무식한 시절의 로맨스~ㅎㅎ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무식해질 수 있어요ㅋ
지나간 것은 어찌 보면 다 낭만의 안개에 휩싸여버리곤 하죠.ㅎ
소설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멋진 표현.. 잘 읽었습니다.
아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네요! 김님 오랫만에 뵈요. 더 자주 뵐것을 기약해봅니다.
망치를 돌려주는데 커피한잔 하실래요?? 라니...
공포영화 느낌이 나는데요..ㅋㅋㅋㅋ
지금 시절과는 달라도 마이 달라 글치? ㅎㅎㅎ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고갑니다~ ㅎㅎ
오! 재밌었나요?
기분 업!!!!^^
고마워요. 욱님!
ㅎㅎ항상 즐겁게 보고가니깐요~^^
하루 마무리 잘하세요 타타님!
삶 자체가 낭만인 시절에다가 약간의 로맨스...
망치때문에 인생이 바뀌셨네요..ㅎㅎ
좋은 인연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망치......지금 생각해봐도 웃기거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