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 문제의 문제

in #kr6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산 지 10년이 되었지만, 저는 아직 영어가 어렵습니다. 특히 영어로 논문쓰는 게 괴롭습니다. 다행히 (?) 주변에 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어요.

올해 출제된 수능 영어가 난이도 때문에 화제인 것 같아 한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수능 영어 지문 읽어보는 게 근 이십년 만인 것 같네요. 예를 들면 이런 문제가 있군요.

화석연료와 대체 에너지에 관련한 지문입니다. 제가 봤던 수능 지문들 보다 더 어려워 진 것 같습니다. 이 긴 문단이 네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군요. 솔직히 제 실력으로는 잘 읽히지 않습니다. 그와중에 이 내용의 출처가 궁금해 졌습니다. 찾아보니 이것이군요.

이 책을 대략 훑어보니 주제가 소비중심, 화석연료에 의존한 경제체제는 지속될 수 없다는 내용이고, 사실 주제가 가볍지 않다보니 다루는 내용도 나름 수준이 높습니다. 제 생각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각잡고 읽어야 할 것 같은 난이도라고 생각됩니다.

수능의 지문은 이 책안에 있는 누군가의 기고문(?) 이군요.

솔직히 제가 영어를 잘 못하는 입장에서 원어민의 영어를 평가할 입장은 못되지만 이 글은 문장 중간중간에 절 (phrases)이 너무 많이 들어가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잘 쓴 영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영어 표현을 배우는 데 있어서 좋은 예문은 아니라구요. 특히나 영어를 배우는 고등학생에게는...

게다가 책의 전후맥락을 모른채로 갑자기 이 문단을 툭 던져놓으면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한참을 헤멜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수능이 제한된 시간안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전제가 있지만 일반적인 독해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지요.

어떤 유명한 유튜버가 한국의 수능영어 시험문제를 원어민들에게 풀게 하는 동영상들이 몇몇 있습니다. 다들 멘붕이더라구요. 그들에게도 가독성이 높은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거기 댓글들이 저에게는 충격이었는데, 왜냐면 다들 이정도의 난이도를 당연히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별력이 필요하다느니, 혹은 대학에서 영어논문을 읽기 위해 필요하다느니 하면서 말이죠. 아니 한국대학에서 학부생이 영어학술논문을 왜 읽어야 합니까? 좋게 말해서 전공원서를 읽어야 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정도로 어렵지는 않습니다. 영어 전공 텍스트들은 대체로 가독성에 중점을 두어서 원어민이라면 편하게 쭉 읽어내려갈 수 있는 수준이고, 외국인에게도 적어도 생소한 단어들이 난무하는 경연장은 아니에요.

저도 많이는 아니지만 논문을 읽고, 쓰고, 그리고 심사도 합니다. 대체로 학술논문은 전공과 관련된 용어들을 제외하고는 사용되는 어휘의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글쓰기의 일정한 패턴을 익히면 논문 작성이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어렵습니다 ㅠ) . 심사도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마냥 어렵게 쓰는 건 작성자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 수 있어요. 본인의 논문이 굳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게 싫다면 그리 할 수도 있겠습니다.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문장의 난해함이나 고급진 단어가 아니라 탁월한 논리입니다.

수능 지문에 자주 등장하는 것 같은 미국 인문학 쪽의 논문 작성법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한국에서 미국 인문학 쪽으로 대학원 진학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그 정도 난이도의 논문급 텍스트를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독해를 요구하는 것은 학대에 가깝다고 봅니다. 저라면 영어가 싫어질 것 같습니다.

오캄의 면도날, 혹은 KISS ("Keep it simple, stupid") 원리를 저는 지지합니다. 저도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지라 자꾸 어려운 단어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별로 달갑지 않아요. 예전에 제가 제 딸에게 휴지를 손으로 뚫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속으로 'puncture'같은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제 딸은 금새 'poke the tissue' 라고 답을 하더라구요. 진정한 실력자는 뭐든 쉽게 풀어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수능 때문에 단체로 영어울렁증에 시달리는 상황은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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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고등학교때 이런 불필요한 수준으로 치닫는 영어공부를 강요받지만, 대학 문턱을 넘게되면 (전공이 영어와 상관없는, 또는 상관이 있다 할지라도) 이와는 전혀 동떨어진 수준의 영어만 구사하게 되는 학생들만 남는 것이 대부분이더라구요. 어렵고 가독성 떨어지는 글들만 어떻게 이렇게 꼬아 만들었는지 당췌 이해를 할 수가 없는데, 이것이 대학 입학 현실의 벽이라니.. 대체 누가 쌓았으며 왜 이렇게 쌓은걸까요. 😐

저도 이번 수능시험 몇문제를 풀어보았는데 가관이라고 느꼈습니다. 누구를 위한 시험일까요..

그러게요. 저도 궁금해 졌습니다. 이렇게 실용성이 없는 시험문제를 만들어낼 때 누가 최대의 수혜자가 될 것인지가요..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ㅎ

아마도 결국엔 변별력 때문인듯 한데요. 그나마 다행인건 앞으론 영어 과목이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로 바뀐답니다. 수능에서 빠진다네요

그런가요?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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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문제로군요. 저도 예문이 별로 잘 쓴 글로 보이지 않습니다.... 참고로 답은 1번. 꼬아서 쓴 예문을 읽기보다는 지문가지고 추론해야 쉽네요.

예, 저도 지문을 먼저 보고 읽으니까 좀 낫더라구요. 하지만 실생활에는 거의 쓸모없는 스킬이죠. ㅎ

보기에서도 답을 고를수 있는 전형적인 객관식이네요...대충 본문만읽어도 1번아님 5번인데..영어가 왜 저렇게 어려워야하는지..아직도 이해불가...눈도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수능치고 나면 다시 쳐다보기 싫어질 것 같아요. 기본기 없이 난이도만 높아지니 꼼수만 늘죠.

수학능력시험이 아니라 재수생양산시험같습니다

이정도는 되어야 대학에서 배우는데 문제가 없다는

수학능력이라면 몇번이고 봐서 운전면허처럼ᆢ

통과하는 자격시험이 적당한데 말이죠

재수학원이 최대 수혜자인가요? ㅎ

그렇죠
무려 1년간 ᆢ혹은 그 이상 학원을 이용해줄 고객을ᆢ
얻으니까요

교육이 라는 배가 산으로 가고 있쥬...
특히나 유학파 박사님들 덕에 더욱...

유학파 박사 때문인가요? 학생들은 많이 혼란스럽겠어요.

교육 정책이 큰 틀에서 유학파 박사들의 이론에 많이 좌우된다고 합니다. 미국파냐 유럽파냐에 따라 달라진대요.
그렇다고 수능 문제까지 관여하는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유학가서 안 좋은 것만 배워왔나 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지문을 읽지 않고도 풀 수 있는 문제 같아요ㅎㅎ 좀더 엄밀히는 지문 안보고도 보기가 2개로 압축되고 그다음은 지문을 대충만 봐도 풀수있는.

일단 더 비싸면 굳이 쓸 이유가 없으니 expensive가 제외가 되고 delayed가 장점이 될 수 없으므로 1과 5가 남는데 솔직히 여기서 바로 renewable이 (한정적인 화석연료에 비해) 더 abundant하므로 바로 1이 답이다로 전 결론이 나지만 그 부분은 좀 애매하다면 지문 대충 보면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므로 결국 1이 답이란걸 쉽게 알 수 있는 것 같은데 1이 답이 아니라면 어렵다 인정ㅎㅎ

물론 수능 전체 문제를 본건 아니라서 솔직히 전체적인 난이도나 실용성은 잘 모르겠네요ㅠㅠ 이 문제만 놓고봐도 만약 지문을 곧이곧대로 다 정확하게 해석해서 하려면 고등학생 수준에선 어려울 것 같아요ㅠㅠ 그런데 수능 영어는 그렇게 푸는게 아니라고 배웠습니다ㅋㅋ

저도 영어를 잘은 못하지만 논리력으로 커버하곤 했습니다. 사실 수능포함 대부분의 영어 문제 특히 GRE도 논리력을 묻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그때 영어단어 안외운걸 후회합니다ㅠㅠ 논리력이 이런 독해에는 도움이되지만 기본적인 회화나 글쓰기에는ㅠㅠ 그래서 결국 논리력 위주의 영어 시험이 저한테는 참 편하긴 했는데 정작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대안을 내라면 모르겠지만요ㅎㅎ 과거의 영어시험은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그야말로 문법과 단어에 치중하는등 더 별로였다고 알고 있어서ㅎㅎ

사실 출제자를 마냥 비난하기는 그렇죠. 나름의 변별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다만 기왕 이렇게 영어공부에 많은 시간을 들일거면 좀 더 인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갔으면 바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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