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정신의 허상

in #kr6 years ago

혹시 임춘애 선수를 아실지 모르겠다.
(이 분을 안다면 최소 40대에 진입하신 분으로 봐야 한다.)
그녀는 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에 빛나는 메달리스트다.
그녀의 이름에는 지금도 '라면'이 따라다닌다.
당시 언론이 라면 먹고 힘을 내 금메달을 딴 신화적인 존재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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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성공 신화를 참 좋아한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정신력 하나로 역경을 딛고 일어나 찬란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들..
그러나 당사자는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라면은 간식으로나 먹었지 실제로는 삼계탕과 도가니탕 등을 먹고 뛰었다고 털어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당시에는 거액이었던 포상금 1억 5천도 일부만 지급되고 나머지는 은퇴 시 지급되었다고 하니 성공 신화의 결말 치고는 참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당시 언론에게 임춘애는 하나의 플라시보였던 셈이다.
성공신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줄 가짜 약제.. 육상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탄생한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여기에 '라면'을 갖다붙이니 그녀의 이야기는 아주 그럴싸한 성공신화로 재생산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라면 소녀'가 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한국에서 헝그리정신의 표상이 됐다.
그녀는 환경과 여건을 탓하는, 한마디로 정신상태가 글러먹은 자들을 훈육하는데 단골소재로 활용됐다.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칼로리를 소모하며 훈련을 받아야 하는 육상선수가 라면을 주식으로 먹고 어떻게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전문적인 영양학 지식이 없더라도 상식선에서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몇 년 전 직원들에게 헝그리정신이 없다며 질책하는 경영자를 본 일이 있다. 그는 열을 내며 난리를 쳤지만 직원들의 표정에서는 황당함과 짜증스러움이 배어났다. 계속되는 질책에 그들의 표정은 차츰 체념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화장실에 가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헝그리정신?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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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환경과 여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행위를 한심한 것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것은 많은 경우에 헝그리정신의 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인간은 분명 환경과 여건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 문제가 있을 경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행위다.

우리 사회에서 헝그리정신은 환경과 여건을 갖추어 줄 책임이 있는 자들이 그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기 위해 사용된 논리가 아닐까? 물론 환경과 여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고 많은 공력이 소모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하게 제공해야 할 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채 개인의 노동과 열정을 경시하고 착취하는 행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전후 세대들이 절박한 생존투쟁의 삶을 살았고 그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지금의 젊은 세대까지 폐허 위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살아야 할까? 또 헝그리정신을 주장하는 상당 수의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에게는 지나치게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주려 하는데 이 이율배반에 대해서는 어찌 변명할 지 매우 궁금하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헝그리정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적절한 동기부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신화의 상당부분은 과장되어있고 완전히 무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며 그 뒤에는 시대적인 특수성과 특혜가 작용한 부분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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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아니라고 우기기만 하고있네요. 이미 꼰대가 몸에 배어있는데. 그 물기 빼는게 왜 이리 어려운지.

사람이 자신의 경험치를 벗어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ㅎ

그러게요. '하면 된다.', '배가 덜 고파서 그래' 같은 것들에 너무 오래 익숙해서...

격하게 공감합니다. 노력이 안되면 '노오오오오력'을 하면 된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입증(?)해 주는 불우한 환경 속의 성공자들, 그들을 대표하는 임춘애 선수. 결국은 착취를 전설로 위장하여 합리화 시키는 일임을 생각해 봅니다.

헝그리정신을 주장하는 상당 수의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에게는 지나치게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주려 하는데 이 이율배반에 대해서는 어찌 변명할 지 매우 궁금하다.

자수성가의 신화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자식에게 특혜와 부의 되물림을 하다 물의를 일으키는 것에서 '왜 자신의 자식에게는 헝그리 정신'을 요구하지 않는지 그 대답이 궁금하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이 없죠.
이것에 대한 분노가 이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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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환경문제도 아니고 개인문제도 아닙니다ㅋㅋ 타고나는 실력과 근기와 능력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ㅋㅋㅋ 사회와 주변의 뒷바라지 없이 어떻게 인재가 나오겠나마는 환경만으로는 설명안되는 기인들도 많거든요

뭐든 100프로는 없으니 환경문제와 개인문제 사회문제 세가지가 겹친거죠 뭐ㅎ

헝그리 정신의 신화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 의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큰 틀에서 접근하면 문제가 될 게 없어요. 다 그게 그거죠.

그런데 전 헝그리정신의 신화에 반발하는 사람들, 노력을 노오력이라고 비하하면서 주변 누구 잔소리는 자꾸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기성세대들이 고생해서 인프라와 지식을 다 갖춘 나라를 만들어서 애들 공부 다 시켜놓고 샌님처럼 키워놓고 노력을 다그치는 거나 다 똑같아 보이더라고요.

노오력 거리는 애들 얼마나 뺀질대던지...

보면 거의가 다 어디 직장인들이나 어디 경기도 이런 서울 주변지역이나 어디 어중간한 도시지역에서 홀서빙 알바, 서비스직...이런대서 일하는 이삼십대...

걍 하는 만큼 하게 되는 것 같아요ㅎㅎ 사람 키우는게 환경과 사회의 뒷배경과 받쳐줌이 필요한 것도 맞지만 자기 본연의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일 잘 하더라고요

또 인생이 풀리거나 꺾이고 진로가 잡히고 하는게 전혀 예상치 못한데서 그렇게 되기도 하니...

게다가 사람들 직업도 가지각색이니 뭐...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어렵게 사니 불만이 차오르는 거겠죠. 헝그리 신화 떠들든 말던 헛소리 같으면 무시하면 될텐데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은 뭔가 압박을 느낀적이 있거나 잔소리를 어디서 들어서 그런걸까요?

그냥 무시하믄 속편합니다~

결국 개인의 문제라는 거군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헝그리 정신을 팔면서 개인의 열정과 노동을 헐값에 사도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되니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인생이나 잘 살자는 얘기로 들립니다. 님, 잘 생각해보세요. 일부 사회 비리를 핑계로 뺀질거리는 사람들의 예를 일반화시켜서 색안경 끼고 보지 말구요. 정말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님의 삶과 상관이 없나요? 그런 일들이 님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님이 주장하는 것은 '방관'에 불과해요. 그리고 그런 비판들이 어째서 개인의 노력을 비하하는 것이 될 수 있는 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오히려 개인의 노력.. 그 가치가 헐값에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요..ㅎ

불손한 의도를 가지긴 뭘 불손한 의도를 가져요ㅋㅋ 음모론도 아니고...그냥 자기들이 보기에 보기싫으니까 나름대로 잣대를 들이대서 한 소리들이지ㅋㅋㅋ

인터넷에 떠드는 수다나 호프집에서 비판이랍시고 앉아서 하는 얘기는 쓸대없는 거에 신경쓰고 사는거랍얘깁니다ㅋㅋㅋ

조용히 있는 사람들이 정치나 사회에 관심이 없어서 조용히 있는게 아녜요ㅋㅋ평소 알아서 상식이나 지식은 챙겨뒀다가 투표할때 오면 잘 고려해서 투표도 하고요 설문조사 참여도 하고 때때론 시위도 하기도 하거나 기관에 압력을 넣기도 합니다ㅋㅋㅋ 그게 다 각자의 일이예요

나설때 나서고 피곤한일은 시간낭비하지 말자는 겁니다ㅋㅋㅋ

기득권들이 일부러 젊은애들 취업안되는 세상 만들려고 했다는 얘기처럼 들리네요

거기에 의도가 없다구요?ㅎㅎㅎㅎ
할 말이 없네요.
님의 눈에는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 똑바로 못하면서 남 일이나 참견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모양이니..ㅎ

비판해서 사회 변화시킬수 있으면 하세요ㅋㅋㅋ 별로 큰 힘이 못되는 걸 하고있으니까 그러는 거죠ㅋㅋㅋ 할거면 작더라도 확실하고 분명한 걸 하세요 하다못해 작게는 투표라던지 지식인들을 모아 정리해서 정부기관이나 사회조직에 청원을 한다던지...그게 왜 방관입니까?

이게 방관인가요.

절 바꾼다고 크게 변하나요? 감정소모에 시비지...바로 이런걸 하지 말자는 겁니다ㅋㅋ

아무것도 안하면서 사회에 애정이 많은척 입으로만 비판이네 토론이네 뭔가를 헐뜯고...고매한 뜻을 품었으면서 눈앞의 한사람 지 친구나 가족이 맘에 안드는 소리하면 싸우고...

그러면서 분명하게 하는건 없고 하는 일이라곤 기계적인 정신으로 띡띡 생산직 어디서 부품만지거나 바코드찍고 끝나면 7일에 3번은 술판벌이고..

그 꼴을 봤으니 전 제가 본걸 말한거고 님이 뭔가 고매한 뜻을 품어서 확실한걸 하고자 했다면 하시면 됩니다.

하긴하는데 그게 자기 할일일 때 하는 거죠... 방관하잽니까? 애들 취업안되는건 걔들 다 들일만한 자리나 숫자가 안되니까 내치는 거고요ㅋㅋ

젊었을 때 고생하면 성격만 더러워진다라는 명언이 생각나네요. ㅋㅋㅋㅋ

그것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누군가의 이기심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지금 젊은이들이 예전에 헝그리정신으로 살던분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삽니다. 앉을수 있는 의자 숫자를 줄여놓고 노력이 부족해서 자리에 못앉는다고 나무라는건
뭔 헛소리인지요. 그런소리 하는분들 할 때까지 굶기고 싶네요..

자기들은 대학 졸업하면 바로 취직됐고 돈 벌어서 집 사면 바로 오르고 했으니까 젊은 세대가 살기 쉬운 줄 알더라구요..ㅎ

맞습니다. 그렇게 강조하고 싶다면 본인부터 실천해야지요.
그리고, 본인이 실천하더라도 다른이에게 강요할 권리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그렇지도 못하면서는 더더욱 말도 안되는 일이죠.

지금 조모씨 일가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맞팔 부탁 드려요~

팔로우했습니다. 리스팀하면 항상 했는데 깜박했네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공감 쾅~

감사합니다..^^

한국에는 구조맹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노오력 부족 탓으로 돌리고 정신머리가 글러먹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 역시 노오력 신화를 믿지 않습니다

임춘애 선수의 라면 이야기는 그 당시 위정자들에게 '노오오오오력'을 강요하기 위한 좋은 에피소드였지요 ㅎㅎ 실제로 라면은 간식으로 먹었다고 했는데도 말이죠 ㅎㅎ

노력보다는 돈이 사람을 만들고,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 자체가 좌우하고 그 모든 것들도 결국에는 운 앞에는 무너지는 듯 합니다 ㅎㅎ

노력으로 뛰어넘기에는 구조의 벽이 너무 강고하죠. 다들 알고 있는 얘긴데 이걸 부정하고 딴소리를 하고 싶어하는 꼰대들이 여전히 많아요.

가관인 것은 그 꼰대들 역시 그 정도 노력은 하지도 못한다는겁니다...

그냥 유교병폐 짙은 이 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시비걸고 어른노릇 하고 싶은가봐요;;ㅋㅋ

배고픈데 무슨 정신이 생겨요? 우리 아들에게 헝그리 정신이란 경험해보지 않아서 상상도 안가는 것인 듯 했습니다.

그런데 헝그리정신이 없다고 다그치는 인간들이 있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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