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예술품이 될 수 있는가? (1/3: 들어가며)

in #kr6 years ago (edited)

들어가며

시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시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기능에 충실한 복원품으로서, 산업 디자이너의 현대적 해석품으로, 다이얼과 케이스에 새겨진 장식적 문양으로부터, 금과 플래티늄, 티타늄 등의 소재가 지닌 순물질의 물성에 매혹된다.

어떤 사람은 시계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들은 시계 장인과 정밀 기계가 만들어낸 상품에 기예(技藝) 이상의 '어떤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물건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을 예술로서 칭송한다. 브랜드나 제작자로서는 참으로 뿌듯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계에서 ‘무엇이 예술인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쉽지가 않다. 주인 되는 사람이야, “(이 시계) 딱 보면 예쁘지 않나요?” 할 수 있겠지만, 어떤 것은 다수의 사회적 합의가 있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모던 아트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모던 아트는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기준에 분절점이 있다. 어떤 이는 모던 아트가 '아무것도 아닌 예술'이라 일축한다. 이들은 고전 예술과 모던 예술을 비교하면서 “고전 회화는 딱 봐도 예쁜데 현대 회화는 그렇지 않다”며 클리셰적 불만을 토로한다. 그렇지만 '현대 미술의 클리셰'는 아무리 들어도 진부하지 않다. 그 이유는 현대 미술이 일반 감상자들의 궁금증을 제대로 해소해주지도 않고 무심하게 제 갈길만 바삐 가기 때문이다. 물론 고전 예술에도 좋고 나쁨의 취향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현대 미술에 비하면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고전 미술은 최소한 형태는 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은 시계를 좋아하면서 동시에 평소 현대 미술에 의문점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서 준비했다. 우리는 “왜 예쁜가?” 혹은 “별거 없는 것 같은데 왜 의미가 있는가?”하는 예술을 다루고, 그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시계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것들의 미학적 가치를 논할 것이다.

현대 시계의 미학적 가치는 아직 충분히 논의된 바 없다. 이것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범주의 오류(category mistake) 때문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7. 결론>에 설명을 적어뒀다. 그렇지만 필자는 현대 시계가 예술의 표현 영역으로 확장되길 희망하는 사람이다.

참고로 이글을 읽는 이 중 예술가가 있다면, 필자는 시계를 주제로 작업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 충분히 해봄직한 일임을 말하고 싶다. 이곳은 제대로 해낸 사람이 몇 없어, 뜯어먹을 것이 많은 들판이다. 잘만 할 수 있다면 거부(巨富)의 주목을 받아 상당한 재력을 축적하는 일도 있을지 모른다. 무책임하게 들릴진 몰라도 이것은 아예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어 보인다.

sunflower04 데미안 허스트는 그의 초창기 예술 작업인 스핀 페인팅(spin paining)에 파네라이 시계 다이얼을 붙여 미술을 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글이 독자에게 수용 불가능한 지점이 있던 시계를 다시 한번 바라보는 계기였으면 좋겠다. 읽는 분들의 미감 수용체가 확장되는 체험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바람이 좋은 어떤 주말, 테이블 위에 올려둔 본인의 시계. 그것의 아름다움을 곱씹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계가 왜 좋은지, 다음에 살 시계는 어떤 것이고, 그 미학적 이유가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보는 체험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 종국에는 “예쁘다”는 언어를 다각도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계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확장에는 고통이 필연적이다. 미감을 확장하는 훈련에는 예술 사조라는 가시밭길 행군이 포함돼 있다. 읽는 분들의 고통을 최대한 덜어내기 위해서 고전 미술에 대한 설명을 과감히 생략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짐을 조금 던 행위일 뿐이다.

당신은 아마도 몇 번을 꾸벅대며 졸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지점이 있다면 피로사회에 절어 사는 여러분들을 위로하는 필자의 배려라고 너그럽게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그럼에도 지루함을 떨쳐낼 수 없다면 과감한 생략 또한 길이 될 수 있다. 부디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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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면하려기 보다는 미술사를 배울 때 미의 가치가 다변화된 시대를 학습했기 때문에 특정기준을 통한 비평을 삼가하는 게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soyo님. 좋은 표현이십니다. 대중과 평론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에 대한 가치관이 다면화됐고, 획일적 가치관으로 아름다움의 우열을 가리는 행위를 자제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해석해주실 수 있다면 제 '실수'라는 표현과 soyo님의 말씀 간 접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실수 라는 단어는 제가 지나쳤네요 : )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아... 제가 단어를 잘못골랐나봅니다.
지적이나 비판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오 아녜요 아녜요 @soyo님 저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만한 댓글을 남겼나봐요. 소요님과 제가 대화중이고, 교류의 일환으로 댓글을 주고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 건설적인 댓글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어려운 내용일 텐데 왠지 술술 읽혔습니다. 덕분에 모르던 것도 많이 알게된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착각이지요. 찬찬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spaceguy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스낵 텍스트라 생각하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친절하게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기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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