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로봇이 아니어도 좋아요" ㅠㅠ

in #kr7 years ago

대문.jpg

어제 스신 이선무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작은 아들을 집에서 내보내셨다는.. 순간 어릴적 두가지 기억이 번쩍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초딩시절 이야기입니다.
2학년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12월 어느날 아버지께서 산타할아버지께 얘기해주시겠다며 갖고 싶은 것을 말하라 하셨습니다.

"3단 변신 로봇이요~"
큰 목소리로 갖고 싶은 것을 말하고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날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이브날 선물을 들고 오실 산타할아버지를 보겠다고 버티느라 졸린 눈을 비비고 비비다 결국 잠이들었던 저는 잠에서 깨자마자 벌떡 일어나 머리맡에 놓여있던 선물상자를 발견하였고 두근두근 조심스레 포장지를 뜯었습니다.
점차 형체가 드러나는 모습...(히야...드디어 나에게도 변신로봇이 생기는구나..) 잔뜩 기대에 부풀어 꺼낸... 로봇선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기뻤지만 내용물을 꺼내자마자 기분이 확 잡쳐 로봇을 팽개쳐버렸습니다.

박스에서 꺼낸 로봇은 변신을 할 수 없는 팔다리만 움직이는 평범한 로봇이었습니다. (그 실망감. 그 좌절감. 아!!!)
아침을 먹자는 엄마말도 못들은척 드러누워 땡깡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로봇이 변신로봇으로 바뀌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감히 감사를 모르는 대다수 엄한 가정속 아이들의 결말이 그렇듯.....저역시도 곧바로 상황이 정리됩니다.
화가 잔뜩난 어머니의 손아귀힘에 질질끌려 집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내복바람에 맨발로 쫓겨난 저는 도저히 집 앞에서 계속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 친구들 보기에 쪽팔렸기 때문이죠.

당시 저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어있는 2층집이 있었습니다. 철거를 앞둔 건물이 흉물스러워 무서웠지만 달리 갈 곳이 없었지요.

엉거주춤 담을 넘어가다 철조망에 걸려 내복이 찢겨져나갔고 이내 생채기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상처가 쓰라려 아프기도 하였지만 그건 참을만 했는데 정작 한겨울 맨발이 너무 시려웠습니다.

제기억에 쫓겨난 시간이 오전 10시쯤이었던것 같습니다.
너무추워 폐가 2층 방에서 몸을 잔뜩 말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것도 서러웠지만 날이 추워 콧물이 얼고 발이 시려운 제 신세가 처량했습니다.

그와중에 드는 생각이 가관입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쫓겨난 집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였습니다.
우선 저와 친했던 고깃집 아저씨에게 한 끼 얻어먹고..친구 승호네에서 옷과 신발을 구한 후..그다음은..음..뭘로 돈을 벌어서 살아가야할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아침,점심,저녁 내리 세끼를 굶은지라 뱃속에서는 계속 꼬르륵 소리가 저의 오감을 괴롭혔고 깨진창문으로 들어오는 눈송이에 처량함마저 느끼고 있었습니다.

폐가에는 다행히 버려진 옷가지와 신문지가 있어 그 와중에 옷을 껴입고 신문지와 박스로 나만의 보금자리까지 만들어놓긴 했지만 추위로 인한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하는 깜깜한 한밤중
조용하지만 똑똑히 기억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혀엉~ 혀엉~"
"왜!"
"엄마가 반성했으면 집으로 오래~"
"나 집에 안 가!"
"혀엉~ 집에 가자~"

동생의 훌쩍이며 매달리는 필사적인 권유에도 꿋꿋하게 버텼고 협상이 결렬된 동생은 힘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깜깜한 한밤중을 가르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를 집에서 내보내셨던 바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 나오지 않으면 앞으로 집에서 살 생각은 하지마라!"
"열 셀때까지 나와!"

순간 엄청난 고민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불공정한 외압에 항거하던 나의 투쟁을 접어야 하는 것인지..
이내 결정하였고 답하였습니다.

"나가요~"
"다섯, 여섯"
"담 넘어야해서 그렇게 빨리 못 나가요!"

그리고 담을 넘어 어머니의 뒷편을 고개를 떨구고 졸졸 따라갔습니다.
현관에는 걱정스레 기다리시던 아버지와 눈물을 흘리던 동생이 저를 마중나와있었습니다.

저는 권력자의 공권력에 당당히 맞서 항거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이 날은 결국 제 인생에 있어 최초 항복한 날로 각인되었습니다.

항복의 댓가는 처절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피땀흘려 번 돈으로 사온 귀한선물을 집어던진 죄.
집을 버리고 오히려 나가버린 죄.
반성하지 않고 잘못했다고 빌지않은 죄.
모든 죄목들이 낱낱히 읊조려지고 검사이자 판사였던 어머님에 의해 처리된 판결.
관람석의 아버지와 동생은 동정어린 눈길만 보낼 뿐 집행자인 어머니의 처분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이 모든 상황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변신로봇이 아니어도 좋아요" ㅠㅠ

지금은 어느 원자형태로 분해되어 또다른 세상으로 갔는지도 모르는 로봇만이 저의 심정을 이해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이선무님 둘째아드님의 자유행에 화이팅!

  • 내일 계속...
Sort:  

모든 죄목을 낱낱히 읊조리는 장면이 상상이 됩니다 ㅎㅎ 어머님이 정말 현명하셨군요 어린 시절 누구나 그런 일들이 있지요 저 역시 돌이켜보게 되네요~

훈하니님도 혹시 쫓겨나본 경험이..
완전 우등생이셨을 것만 같은데
의외의 댓글이셔서 ^^

한번이 아니라 해마다 하셨겠죠....^^
그때부터 연중행사 라는 말이 유행을 한 것 이고요.....!!

아닙니다 @cheongpyeongyull
절대권력자에게는 저때 딱 한번 대들고 접었습니다.
이건 절대로 이길수 없는 게임이란 사실을 알게된거죠.
제가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ㅋ~🤣

현실미소 지으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편이 기대 됩다 항복은 하셨지만 그래도 어릴때 상남자셨는데요 ㅎㅎ 저녁때까지 안들어가시다니🤣

@iieeiieeii님 감사합니다.
근데요 최고권력자 엄마에게는 빨리 항복하는게 낫더라구요.
잘못하믄 삶 자체가 피폐할 수 있겠더라구요.
당시의 제 경험에서 우러난
그 이후 공권력에 결코 반기를 들지 못했다는 😝

저도 그랬었는데요ㅇㅎㅎ

올드님도 그러셨다고요?
다른분이 그러셨음 믿겠는데 스팀잇 주필께서 그러셨다는 건 못 믿겠습니다. ^^

어릴쩍 엄마가 열까지 센다는 말이 왜 이리 무서웠던지요~
엄마의 그 말이 무서워지지 않을 중학생 무렵 한창 사춘기에 몸부림 칠무렵 날나리 고등학생 언니들에게 잡혀서 "열 센다 있는거 다 내놔~ "
그때 알았어요 어쩌면 평생 이말에서는 자유로워지기 틀린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소철님을 글을 보니 그때 기억이 떠올라 등골이 서늘합니다. 헤헤~~
오늘 같이 더운날 좋은 추억을 기억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rosaria님 경험에 따른 느낌 알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들에게는 한번도 써묵지 않았었는데 이제 저도 써묵어 볼까요?
'왜 이러세요?'라고 하는건 아닐지.

하긴 지금도 시험때면 항상 '자 답지 걷습는다 셋 둘 하나' 이건 저 또한 지금도 겪는 공포입니다 🤗

살면서 하나 두울 셋이 제일무서웠어요 ㅠㅠ

단 한줄
그러나 그 한줄이 정말
그 심정 이해합니다.

단순하지만 사람을 충분한 공포로 몰아넣는.

@hyesung님은 이제 셋 두울 하나로 하시길 ㅎㅎ
덕분에 웃다 갑니다.

어우 다시생각해도 정말 싫은소리네욬ㅋㅋ
저때문에 웃으셨다니 기분이 좋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그땐 공권력에 항복 하셨지만 이제 힘을 기르셨으니 더 이상 항복하실 일은 없겠죠? 저도 함께 소철님의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한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tata1
지금은 공권력을 가진듯이 보이는 세입자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ㅎㅎ
뭐 결국은 밥도주고 재워주는 절대권력자 옆에서 돈벌어오는
쓰다보니 왠지 제가 앵벌이가 된 이 기분은 또 뭐지? ㅜㅜ

소철님이나 내나~성실무쌍한 우리 앵벌이 만쉐이!^^

^^
맛난 점심 드세요~

아..
글을 참 맛갈나게 잘 쓰시네요.
쫓겨난 아이가 진짜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 쫓겨난 애가 접니다 ㅜㅜ
당시에는 '집 나가서 어떻게 살까?' 라는 고민만 하나 가득했던 시간이었죠.
정말 깝깝했었던 것 같은데 ^^

네 감사합니다 내일 반전의 2탄도 기대해주세요~

어렸을 적 반찬투정을 하다가 하루종일 굶은뒤에 백기를 흔들었던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 뒤로 소세지없이도 밥을 잘 먹었다던 후문이...

ㅋ~ 부스트유님도 항거의 시기가
하지만 역시 당시의 절대권력에게 ^^

그러나 다 우리 잘 되라는 공권력이었으니 .
지금은 소세지 없이도 밥 잘 묵는 어른이 되셨으니 공권력은 잘 사용된 듯 합니다. ^^

어린 시절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 @sochul

Thank you my friend
I am posting in the morning and evening.
In the evening, I translated the post in Korean in English in the morning

That is so thoughtful my friend. I learnt the basics of korean from a korean lady. I posted it on my blog. You can check. Try and leave a comment on it to tell me what you think. If its worth upvoting, feel free to do so. I look forward to another of your post today.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3
JST 0.030
BTC 65634.72
ETH 3493.40
USDT 1.00
SBD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