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로봇이 아니어도 좋아요"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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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로봇이 탐이나서 땡깡을 부리다 절대권력에 의해 한겨울에 쫓겨났던 소철은 "나는 트랜스포머가 아녀도 되요"라는 한마디로 풀려나게 되었는데...
어제 1편에 이어
그렇게 우리 형제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동생은 17살, 저는 19살이 되었죠.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잡다한 방황을 했었던 저는 어머님의 식칼꽂기 신공이후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열손가락 내 등수로 공부하는 진짜학생이 되어있었죠.
그리고 전편에 훌쩍이며 등장한 철없던 동생은....
동생 또한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충격을 받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동생은 현재 다섯식구의 대장으로 목공예를 하고 있답니다)
예술가의 자유분방함까지 더해져 절대권력에 항거하고자 하였던 기질이 동생의 머리가 점점 커지며 눈에 띄게 표출되었습니다.
제앞가림 하느라 언제나처럼 독서실에서 늦게 귀가한 어느날
그날따라 왠지모르게 집이 썰렁하게 느껴져서 동생의 거취를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길
"집이 싫다고 집을 나갔다"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대쪽같은 성격상 제발로 나간 동생을 절대로 찾지 않을 것임을.
그날부터 조용하게 살얼음을 걷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죠. 동생은 여름방학에 집을 나갔답니다.
그렇게 동생없이 고요하게 한달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물론 동생으로부터 전화 한 통 없었죠.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연락처를 알지 못하면 연락할 방법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 친구분의 전화 한 통이 집으로 걸려왔습니다. 친구분께서 제동생을 강원도의 한 횟집에서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친구분께서는 동생에게 네가 왜 여기에 있냐고 물어보셨고 이에 동생은 헤벌죽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집을 나와서 횟집에서 삐끼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집안창피할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ㅡ..ㅡ;;)
.......무심히 듣던 저희 어머님은..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하는 분이기에......제발로 들어오지 않는한 아들은 하나인 것으로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셨죠.
시간이 흘러 방학이 끝나서 2학기가 시작되고도 1주일이 지났지만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형으로써 더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고 판단되어 친구분께 전화를 드려 그 횟집 이름을 알게되었고 어머님께는 따로 만나러 간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고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얼굴은 시커멓게 타고 불쌍해 보일정도로 바싹말라있던 동생은 제가 나타나자 하던일을 멈추고 얼음이 되었습니다.
(매일 보던 녀석을 40일 만에 보게 되었으니..)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횟집에 앉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죠. 언제 집에 올거냐고..
동생은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생각이 정리되는대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무슨..생각이 있기나 한건지..에효)
어머니나 동생이나 본인의 생각과 다르면 절대로 하지 않는 똥고집 성격임을 알기에
어조는 강하나 차분하게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한마디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강원도에서 돌아온지 이틀이 지났고
거짓말처럼 동생은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치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어머니는 평소대로
"왔냐? 밥먹어라"
곧 우리 세식구는 저녁을 먹기시작했습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식사를 하면서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저는 모두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지금도 왜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그날 가족모두가 함께 있음에 감사해서..
그런 다짐을 눈물로 했던게 아닐까..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도 남은 우리가 더욱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
아마도 우리 세식구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제 부모님이 두분다 계시지 않은 지금..
언젠가 동생에게 그날 일에대해 한 번 물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던 그날의 다짐처럼
남은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저와 제 동생에게 남겨진 숙제란 생각이 드네요.
아침부터 눈물나게 하시는군요
잘 보았습니다.
님의 인생 한부분 한부분이 작품이네요
콘님도 풍부한 감정을 갖고계시군요.
다른이의 글에 이리도 공감을 해주시니.
항상 진심이 담긴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소철님 글은 이제부터 저녁에 읽어야겠네요. 잘 읽고 감동먹고 갑니다.
@kkw님 항상 출근전에 포스팅하고 출근하는지라
담부터는 저녁에 올릴까요? ^^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감사히 보았습니다.
아드님은 자신만의 세계를 잘 찾아가는 느낌입니다.
물론 이 또한 제3자인 제 느낌이지 아버지이신 선무님의 느낌은 아니겠지만..
때로 완전히 별개인 제 3자의 느낌이 맞는때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철님.
저도 한때 어머니랑 제동생이랑 셋이서 살았습니다.
아버지 사업싶패로 꽤 오래 집을 비우셧고요
셋이서 앉아서 밥먹던 때가 생각나는 군요
어찌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때의 올드스톤님께서도
가족에 대해 큰 느낌을 받으셨을 듯 합니다.
저 또한
그 어떤때 보다 동생이 집에왔던 그날
울음이 터져 식사도 할 수 없었던 그 시간
가족이란 이런 것이란 느낌을 크게 느꼈습니다.
제 글에 공감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따뜻하다 못해 애절한 이야기입니다. 잘보았습니다..
@valueup님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날 식탁에서 세식구가 울면서 느꼈던 그 감정은 분명 하나였었다고 믿고있습니다.
형제 두분다 상남자 이셨군요 어머님이 힘드셨겠지만 한편으로 든든하셨겠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iieeiieeii님 아닙니다.
저와 동생은 실상 쫄보였고 어머님께서 여장부셨죠
그 덕분에 지금의 저도 씩씩한 아내와 같이하고 있답니다 ^^
제 글에 대한 좋은 평가에 감사합니다
소철님 스토리는 월요일 저녁쯤에 하는 가족 드라마 소재로 써도 되겠습니다.
소요님
한땐 '나는 왜 다른 행복한 가족들처럼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했던 때가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각이 바뀌었죠
이러한 모든 일들로 인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요님.
소철님 어머님에 대한 일화는 항상 마음깊은 감동을 주고 생각에 잠기게 해주는 것 같아요 ㅎㅎ 정말 대쪽같으신 분 이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toptimist님 제 글에 공감을 표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머님이 여장부이셨던지라
그 덕분에 지금도 여장부 스타일의 아내와 살고있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저도 소철님 같은 스타일이라(저는 공부는 못했습니다.) 그 마음 알 것 같네요.
부스트유님 감사합니다.
글로써도 그 느낌을 알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심전심이라고 마음이 통했나봅니다. ^^
즐거운 날 되세요~
먹먹해졌습니다.. 어머니가 그리우실 것 같아요
@jinkim님
네 지금도 항상 뵙고 싶습니다.
두분 모두 일찍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신동안
제게 주신 사랑이 컸기에 더 뵙고자 하는 마음을 크게 느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