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칼날

in #kr-writing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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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잊지못할 과거가 있지요.
제겐 중학교 2학년과 3학년이 절대로 잊지못할 과거입니다.
이 이야기는 저의 인생이야기 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3년 전부터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초기엔 잘 되지않았죠.
고생하다 3년이 지나고나서부터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본격적으로 제궤도를 찾아 성장일로를 걷기 시작하였는데...
예고도 없이....교통사고로 인해 돌아가시게 된 겁니다.
그로인해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되셨습니다.

사업이란 것이 모두 그렇듯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도 성공 할똥말똥 하지요.
아버지의 사망보험금과 가해차량 운수업자의 보상금이 합해져 사업에 재투자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셨습니다.
아버지의 목숨과 바꾼 보상금으로 이룬 사업이었기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피곤에 지친 몸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님은 집에서는 거의 잠만 주무시게 되었죠.
집에는 언제나 저와 제 동생 이렇게 둘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희 형제를 하나하나 챙겨주실 수 없었던 어머님은 도자기 안에 넉넉한 돈을 넣어주셨고
돈을 쓴 사용처만 종이에 잘 적어놓으면 다음날 도자기 안에는 변함없이 같은 양의 돈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부재와 일로 인한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미안한 마음을 금전으로나마 채워주시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간섭하는 사람도 없겠다 돈도 있겠다 그때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고 친구들과 술도 마셨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당연히 소위 '노는 아이들'부류에 들어가는 첩경이었고 저 또한 그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죠.

결국 반에서 3등으로 성적이 추락하게 되었습니다.(위에서가 아닌 밑에서)
물론 이전에도 천재소리를 듣던 그런 아이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선을 넘게 되었죠.
중학교 3학년이 담배피고 술마시고 결국 패싸움이 나서 어머님이 학교에 불려오시게 되었습니다.
실상 그 이전에도 어머님을 학교로 모시고 오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사업하시느라 통화도 할 수 없고 한밤중에나 오신다고 둘러대며 피했었는데..
결국 선생님은 어머님 회사 전화번호를 알아내시어 제가 모르게 면담을 하셨더랬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11시쯤 집에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꺼져있어야 할 집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어머니는 혼자 마루에 앉아계셨습니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죠.

"여기와서 앉아라"
"오늘 학교에 갔다왔다"
"전교에서 꼴찌를 해도 엄마는 상관하지 않는다"
"네 인생 네가 사는 거니까"
"그러나 애비없이 여자 혼자 키워서 저런 꼴이란 얘기로 네 아버지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어머니께서는 부엌칼을 꺼내 탁자 위에 힘껏 꽂으셨습니다.
(말로 표현하니 이렇지만 실제로 저와 같이 그 자리에 계셨다면 어머니의 행동이 얼마나 위협적이었었는지를 아셨을 겁니다)

"네가 아버지의 이름을 계속 욕되게 하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너와 나 그만 살도록 하자"
"어짜피 나는 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부터 더 이상 살기싫었는데 너랑 네 동생 때문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날...
어머님께 약속하였습니다. 반드시 바뀌겠노라고 그리고 앞으로 절대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게 살겠노라고.

혹시 '타임'이라는 각성제를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노는친구들은 끊고 타임을 밥삼아 먹으며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자지않고 진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그때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연합고사를 봐서 총점 200점 중 140점대 이상을 받지 못하면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없었고 그럼 당연히 대학에 갈 수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공업계, 상업계 고등학교도 120점대는 맞아야 했었죠.
물론 제 성적은 당시 체력장 20점을 합해도 100점도 되지 않았었고요.

결국 저는 연합고사에 189점을 맞아 당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은 제가 행한 일을 기적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 세네번씩 코피를 흘릴 정도로 정말 말도 안 되는 노력을 했던 6개월이 지금의 제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바뀐 인생은 당시에는 살 떨리도록 칼을 꽂아가며 진심을 가득 담아냈던 어머니의 말씀과 울림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아마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순~해보이는 얼굴로 사기나 치고 다녔을지도 모르지요.(사기꾼들이 보통 순하고 사람 좋게 생겼다더군요)

주저리주저리 제 인생 이야기를 한 오늘 '제 인생을 바꾼 칼날'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고나니
이유도 없이 부엌칼을 좋아하는 제 자신이 이해가 됩니다..

언젠가 포스팅하겠다고 해놓고 아직도 자료를 모으지 않아 쓰지못한 부엌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맘껏 꺼내 놓을 수 있는 스팀잇이 마냥 좋은 @sochul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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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이란 말에 어메 기죽어
떨어진게 삼등이라네 ...

@corn님 잘 보시면...
'밑에서'라고 ^^

그런가요 ㅋㅋㅋ

그것은 당신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네 인생에서 통찰력을 얻으려면 반갑습니다. @sochul . 그리고 저의 목표 달성을 도와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안녕,

ErnstJan

It is my joy to help those who try like you.
I expect to be able to meet frequently through srteemit.
Thank you for your comment.

That's really nice. I almost couldn't sleep tonight. Now I am writing about Guus Hiddink and South-Korea in 2002. Do u think that is a good thing to write about?

정말 좋네요. 나는 거의 오늘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저는 2002 년 거스 히딩크와 남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좋은 것 같니?

Is there a south-Korean chat somewhere where I can post my story?

내 이야기를 게시 할 수있는 곳에서 남북 대화가 있나요?

Thanks

Oh, it seems like a great idea.
Koreans think of Guus Hiddink as a hero in memory.
He even calls him Hyeon-dong in Korea as the name of a Korean. Hahaha
He also became a 447th honorary citizen in Seoul, Korea.

Write it once. Your Korean is not perfect, but I think Korean steemians will like your posting.

And do not use #coinkorea when using tags.
This tag is only attached to the crypto currency related article in Korea.

The tag to use
kr / kr-newbie / kr-writing These three are the most effective.

@sochul I uploaded the new blog. I hope my Korean makes more sense now;). I've used your tags and didn't use #coinkorea. Thank you for your tips and support. Is it right that he became the first foreigner to get such a reward?

No, it is not.
But Hiddink is the only foreigner that the entire Korean people knows. ^^

He also got a blue dragon that's what I meant. I bet he's well known;)

글을 잘 읽었다고 해야할지... sochul 님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이기에 글을 읽었다기 보다는 삶을 들여다봤다는 말이 맞을것 같습니다.
어머님께서 그 날 손에 쥐신 칼날은 아마도 sochul 님 한분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어머님, sochul님의 가족, 그리고 sochul님의 글을 읽고 영향을 받고 변화를 얻은 이들 모두의 인생을 조금씩 바꾼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아마 나비효과라고 하나요. 부엌칼을 쥔 어머니의 손에 절절하고도 비장한 사랑이 담겨 있었기에 그날의 그 칼날이 더 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합니다.
소중한 삶의 한 조각 잘 보았습니다. 저도 시간이 지나고 기회가 된다면 제 이야기도 조심스레 꺼내봐야겠습니다ㅎㅎ 언제나처럼 많은 것을 느끼고 갑니다 ^^ 좋은 하루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 :)

@marginshort님.
제 자신의 이야기에 이리 공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담입니다만 대학에 간 후 어머님께 여쭤봤습니다.
그날.. 진심으로 칼을 쓰려고 하셨냐고.

어머니는 정말 그랬다고.

지금도 저는 그날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말이죠.

제 이야기가 제 인생뿐 아니라 나비효과를 불러온다면 영광일 것 같습니다. ^^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음을 각오하셨으니 새로 태어나지 않을수 없으셨겠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엄하게 기르신 그 마음이 찡하게 전해져옵니다. 느끼는게 정말 많습니다. 저도 점심시간에 어머니께 전화한통 드려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ochul Letter of the 21st century

Thanks for reply

You are welc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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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끈기가.. 어렸을대부터 준비가 되어있었군요..!

지금도 두비님이 보여주신 사진의 모습을 순간순간 계속 고민하며 살고있죠.^^
모두 좋은 결정으로 멋진 결과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비님~

이런 일이 있었군요.... 잘 헤쳐나오셨어요 그동안.

제 어머님이 계셨기에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계기가 없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오오 역시 어머니..

@slaseho
어머님이란 존재는 신이 내려준 사랑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적이면서 뭔가 울컥한 느낌입니다. 한편으로는 @sochul님이 바른(?)길로 나아간것에 대해 참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 싶은 내용이네요ㅎ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쉽지 않은데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감사합니다 @koreaculture

저는 어머님이 계셨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어머님이 계셨기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Great post! I love it :)
伟大的职位我喜欢它

Thanks for your reply.

오 수철님에 인생중에 한장면이군여 정독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리구 인생에서 중요한사람에 말한디가 사람에 운명을 바꾸는군요

그저 보통사람인 저의 글을 열심히 보아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yj-kim님 제 아이디는 별게 아닌 소철나무에서 따온 거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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