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1] 핫해지기 싫다는 식당들... 예의 없는 블로거들 때문에 ‘혐핫(嫌HOT)’ 번진다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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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간에서 이런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손님, 사진촬영 안됩니다… '핫'해지기 싫어요"

뚜껑을 열어보니 사진 찍어주는 대가로 공짜를 요구하거나 다른 손님들의 시간을 방해할 정도로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어대는 ‘예의 없는 블로거들’을 더 이상 참아주지 않겠다는 식당 주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기사에 나온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달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유명 호텔 겸 카페 ‘화이트 무스’에는 '블로거 출입 금지(All Bloggers banned from our business)'라는 문구가 걸렸습니다. 호텔 주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스팅 대가로 방을 공짜로 달라는 블로거나 인플루언서를 더 이상 참아줄 이유가 없다"며 "정 그렇게 호텔에 묵고 싶다면 나가서 제대로 일을 하고 돈 벌어서 방값 내라"고 말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영국 버크셔의 유명 레스토랑 '워터사이드 인'은 음식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안내문을 붙여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이곳의 셰프 미셸 루는 일간지 데일리메일과 인터뷰에서 "다들 사진부터 찍느라 제때 먹지도 않는다. 몇몇은 음식 사진 찍겠다고 의자에 올라서기도 한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로 유명해지는 건 싫다. 내 음식 맛을 기대하는 진짜 손님과 만나고 싶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동교동의 한 일식당 앞에도 '노 포토 노 모바일 폰(No photo, No mobile phone)'이라고 적힌 푯말이 걸렸습니다. 이 곳의 사장 역시 ‘남의 집 사진을 묻지도 않고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걸 원치 않는다’며 이 같은 방침을 내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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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 맛집 사이에서는 ‘핫’해지길 싫어하는 이른바 ‘혐핫’ 신드롬이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혐핫’이란 싫어하다의 한자어 혐(嫌)과 인기 있다는 의미의 핫(hot)을 결합한 단어인데요. 특정 장소가 지나치게 인기를 끌면서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입니다.

식당이 유명해지길 꺼려한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식당들이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연남동에서 꽤 유명한 한식 레스토랑에서 2년 간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익숙합니다. 물론 매일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일주일에 한 명만 저런 사람이 찾아와도 굉장한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제가 식당에서 일할 때의 일입니다. 식당 분위기가 ‘카페+와인바’ 같이 한식당 치곤 굉장히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고 있어 사진 찍기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른바 ‘대포’ 카메라를 가지고 오는 분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오면 스태프들은 초긴장상황이었는데요. (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주문하는 메뉴도 많거니와 아침부터 기껏 세팅해놓은 테이블 화병이며 소품들을 자기들 멋대로 바꿔놓기 일쑤입니다.

거기까진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이 나왔을 때입니다. 테이블 전체가 다 나와야 한다며 의자에 올라가 사진 찍기는 다반사, 다른 손님이 방해를 받던 말던 온 가게를 휘저으며 셔터를 눌러댑니다. 이것 때문에 다른 손님들 컴플레인을 받은 게 한 두 번이 아닙니다..ㅠㅠ 게다가 사진을 찍느라 음식이 식어버리면 음식이 짜네, 식었네 하며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분들도 심심치 않다는 사실... 손님이 늦게 드셔서 그런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반문하면 블로그에 소문 내버리겠다고 협박하시는 분들.. 솔직히 꽤 많았습니다.

물론 아닌 분들도 많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힌 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심지어는 브레이크 타임에 돈을 내고 찍겠다며 촬영 협조를 구하는 분들도 계셨죠. 가게 입장에서도 홍보가 되면 당연히 좋으니 선만 지켜준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앞전의 분들 때문에 모든 블로거 분들이 도매급으로 안 좋은 평가를 받게 되고 식당은 유명해지길 포기해버리는 악순환의 연속이 발생합니다.

기사 말미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제주 애월읍에 있는 한 식당은 100% 예약제로 문자메시지로만 예약을 받는다구요.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에 있는 몇몇 식당은 간판도 전화번호도 없으며 심지어 회원증이 없으면 입장도 못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 주인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우르르 몰려드는 손님보다는 초창기부터 자기 가게를 찾아준 단골 손님에게 집중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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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보니 이연복 셰프의 사연이 떠오르네요. ‘냉장고를 부탁해’로 유명세를 얻은 이연복 셰프의 가게. 한때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곳으로 유명했죠. (저도 몇 번 도전하다가 그냥 포기했습니다) 아무튼 당시 이 가게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는데요.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대략 이런 내용었습니다. 원래 이연복 가게는 고급 중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자신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손님들이 짜장면과 탕수육만 먹고 가서 방송 출연 전보다 출연 후 가게 수입이 더 적자라는 내용입니다. 또 예약자가 너무 많아서 원래 자기 가게를 찾아준 연남동 단골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내용도요. 유명해진 것도 좋지만 그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가게가 망가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식당 주인 입장에서 유명세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저런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곳이 늘어난다는 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네요. 저 역시 여행을 좋아하고 맛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심코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았을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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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블로거들이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썼다고 한 집들은 알아서 걸르게 되더라구요...빈수레가 요란하기도 하고 정말 맛보다는 사진으로 핫한곳 다녀왔다라고 인증 남기기밖에 안해서 믿고 거릅니다^^

네, 저도 해외여행 갈때는 많이 소개된 곳은 안가게 되더라구요,, 한 20군데 중에 1곳 정도만 성공하는 것 같아요

매너의 문제라고 생각되네요. 노 키즈 레스토랑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되구요. 저는 매너있게 보팅 하고 갑니다. 체력이 딸려서 쪼끔만 찍고 가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헙ㅎㅎㅎ 부족한 체력이신데 감사합니다ㅎ 저도 팔로우 합니다ㅎㅎ

유명맛집이라고 블로거들이 소개해준
집을 어렵사리 찾아가서
진짜로 맛없게 먹고온적이 많았답니다.

전 사실 맛보다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소란스럽고 그러면 맛도 더 없는 것 같고 그렇더라구요ㅠㅠ

어느 분야에서든 항상 일부의 배려없음과 무심함이 문제가 되는것 같습니다.

그렇죠. 일부 때문에 대부분이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죠.

혐핫, 이라니. 저도 여러 맛집, 핫한 공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굳이 찾아가본 적이 많아요. 가서 유명한 만큼 맛과 분위기를 즐기려고 하는데 다른 몇몇이 사진찍느라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리도 계속 옮기는 등의 행동으로 좀 불쾌했던 적이 있네요 ㅜㅠ
그냥 핸드폰으로 음식 사진 몇개 정도야 괜찮지만 다른 손님들의 식사와 휴식을 방해한다면 장사에 더 악영향을 줄거같아요. 사진 촬영 금지라고 해도 지지합니당 ..!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기사였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블로그를 하느라 식당에 가면 가끔 사진을 찍는경우가 있는데 이게 같이 식사하러 간 사람들에게도 예의가 아닐때라고 느끼곤 합니다.
그게 가족이든 지인이든 그래서 올해는 여러가지로 조심하려고 합니다.
블로거지로 불리고 싶지는 않아요^^
뉴비라 팔로우 하고 갈게요^^
https://steemit.com/@hodolbak

그쵸, 같이 동행한 사람한테도 실례일 수 있습니다. 저도 뜻이 맞지 않는 이상 한쪽이 싫어하면 안찍게 되더라구요,,저도 팔로우 합니당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본인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사진이 소중하다면 주변과 가게의 사정도 둘러볼줄 알아야겠죠.

문제는 그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ㅜ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죠!

일부 해로운 벌레들때문에, 꽃을 찾아가기가 어렵게 되는 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건강한 생태계가 될 수 있도록 선순환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그러게요. 저도 예쁜 곳보면 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데 저런 식당이 늘어나면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ㅠㅠ

싱아송님의 칼럼은 차분히 생각을 돌아보게 해주는 힘이 있는것 같아요^^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ㅎ 앞으로도 유의미한 글 많이 써야겠네요ㅎ (그리고 씽어 쏭! 이라고 읽어주시면 됩니다ㅎ 띄어쓰기가 없어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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