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척]늙음에 관해

in #kr2 years ago (edited)

새 식구 탄생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다 보니, 문득문득 그 반대 편에 있는 늙음과 죽음에 관해 전엔 하지 않던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은 끝이 항상 내 부모에게 가 닿는다. 무한대의 젊음 그 자체인 내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만큼, 그 대척점에서 하루하루 늙어 가는 부모 생각이 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점심에 만난 부모님은 어두운 기색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늘 가던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 임신한 며느리와 아들 앞에서 둘은 "별 것 없더라"며 억지로 웃었지만 30년 넘게 같이 산 내 눈뿐 아니라, 아내 눈에도 뭔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엄마는 놀라거나 충격을 받으면 얼굴이 자다 금방 깬 사람처럼 부스스해진다. 엄만 그걸 모르지만 나는 안다.

초음파로 본 아버지 췌장이 2년 전보다 두 배나 커졌다고 했다. 시설을 갖춘 곳에서 추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체중이 불어서 그럴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것 말고도 전에 '간헐적' 증상이었던 게 이제 상시적 증상이 됐고, 그 나이에 들을 수 있는 많은 얘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술을 안 한다. 담배도 약 25년 전에 끊었다. 증상들은 아버지 생활 습관이나 관리 잘못 때문이 아니다. 원래 그런 거다.
건설 일을 하는 친구 아버지는 작년에 왼쪽 어깨를 수술하고 올핸 오른쪽 차례란다. 친구가 "60년 넘게 쓰다 보니 파트(part)가 하나씩 나가는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 말이 맞다.

남들보다 좀 늦게 결혼하고 마흔이 다 돼서 아이를 보게 됐다. 남의 아기만 봐도 눈을 번쩍 뜨며 좋아하는 부모는 둘 다 환갑을 훌쩍 넘겨서야 품에 손주를 안아보게 된다.
볼록 나온 며느리 배만 봐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엄마, 아버지를 보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가 다른 부모 모습을 보면 늦었다고 자책하게 된다.
내 조부모는 손자들이 결혼하는 것까지 봤다. 내 아이의 조부모는 언제까지 아이와 함께할 수 있을까.

그날 점심을 먹고 각자 집으로 흩어지자는 엄마, 아버지를 기어이 집에 모셔 가 차 한 잔 대접했다. 헤어지는 길에 엄마에게, 아이 귀가 이제 트일 때니 태담 좀 해 달라 부탁했다. 아내 배를 쓰다듬으며 다짜고짜 "우리 포포야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 하는데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 연차를 낸 아버지는 낮엔 엄마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했다. 아버지도, 엄마도 기분이 좋았을 게다. 오전에 아버지의 췌장을 CT로 검사한 의사가 "완전무결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아버지는 원래 검사 예약을 금요일로 잡았다가, 금요일까지 잠 한 숨 제대로 못 잘 엄마 생각에 화요일로 당겼다.

병원 근처 맛있는 국숫집을 알려줬더니 맛있게 먹고는 주변 공원을 거닐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엄마에게 "우리 포포 데리고 XX산에도 가야 하는데"라고 말했단다.
그러시라. 손주 손잡고 어디든 갈 수 있게, 어느 산에도 오를 수 있게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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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리 좋아하시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를 생각하니 저 또한 울컥해지네요(주책맞게)
저도이젠 그럴 나이가 되었다라고요.
양가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해야만하는.. 물론 ‘나쁜 것’까지도요..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모님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삽시다.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포포와 여행도 하시고 많은걸 함께 하시길 바래요~

고맙습니다. 선배님(?)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손주와 즐겁게 많은 날들을 보내시길 바래요.^^

고맙습니다. 선배님 ㅋㅋ

무엇보다 별 일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오래오래 행복 나누시길 바랍니다!!

맞습니다. 정말 다행이예요.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ㅋㅋ 그렇다면 성공!

포포야 칼님 만큼만 건강하자.

자... 잠깐

갑자기 울컥해집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셔서
포포 학교 다니는 것도 보셔야지요.

고맙습니다. 그래야지요 대학교 가는 것도요

3대의 중간에서 힘드시겠지만, 시호님 부부도 건강하셔야 합니다.

네 그래야죠. 술을 좀 덜.... 마시고... 고맙습니다.

아 끝까지 가슴 졸이며 읽다가 결론 보고 마음 놓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런 결과가 없었으면 글을 쓸 수 없었을 거야 ㅜ

맞아요. 아이가 이만큼 컸구나 대견하다가도, 부모님은 그만큼 늙으셨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울컥하지요.
아이가 태어나면 참 많은 것에서 생각이 달라지고 깊어지더라고요.

부모님은 정말 계실때 잘해드려야하는데..
그게 참 말처럼 잘 안되니 문제같아요...ㅎ

부모님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게..!!
잘해야지 하면서도 가끔은 저도 모르게
짜증아닌 짜증(투정)을 부리기일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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