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한 언론노동자의 노동절 단상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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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부장 : "1일은 노동절이니 쉬고 싶은 분은 눈치보지 말고 연월차를 쓰고 쉬도록 하세요."

ㄴ차장 : "야 언제 근로자의 날 쉰 적 있어?"

ㄷ기자 : "쉬고 싶은데 차장한테 조심스럽게 말해봐야 겠습니다."

ㄹ기자 : "노동절에도 노동하고 있을 shiho야."


우리 회사 사람들 얘기지만 어디 우리회사 뿐이랴. 노동절에 노동을 안하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신문의날에도 신문을 만들기 위해 나온다. 창립기념일엔 특집을 만든다고 몇달 전부터 고생한다.

안다. 언론고시생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빨간 날 없이 일할 줄 알고도 들어왔다. 문제는 뭐냐. 노동인권에 소홀하고 근로기준법 등을 준수하지 않는 조직을 비판하는 언론사가 정작 자신들 기본 인식이 모자란다는 거다.

노동절? 공휴일 아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법정 유급휴일이다. 빨간 날이다. 연월차 쓰고라도 쉬고 싶어서 전자결재 시스템에 연월차를 입력하려고 해도 시스템이 막아서 안된다. 빨간 날에 연월차를 쓰고 쉬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쉬는 게 디폴트다. 쉬는 게 원칙이고 나와서 일한 사람은 대체휴무를 쓰거나 상응하는 수당을 받아야 한다. 물론 우리회사도 시스템으로 그렇게 돼 있다. 안 그러면 법에 어긋나니까. 하지만 기자들이 그걸 모른다. 노동절에 쉬는 걸 미안해하고, 죄의식을 느낀다.

노동절 뿐인가. 연월차도 마찬가지다. 쓰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다들 제대로 쓰질 못해서 수십일씩 다음해로 이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산업부 와서 격주로 금요일마다 연차를 내고 쉬고 있지만 아직도 21일이나 남았다. 언론사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심각한 곳은 연차 보상 수당도 받지 못한다.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지키지 않는 것보다 인식을 못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모르는데 어떻게 기사를 쓰나? 인식이 없는데 어떻게 노동인권을 조명하나?

하나만 더 꺼내볼까? 곧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된다. 각 언론사는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나부터도 대기업이 먼저 주 40~52시간 근무제를 시험도입한다는 기사를 썼다.

그런데 기자 본인들은? 어디까지를 근무로 보느냐에 따라 하루에 16시간 일하는 셈이 될 때도 부지기수다. 매주 5일씩 근무하는 건 극히 일부다. 대체로 한주 걸러 주 6일씩 하면 감사하다.

정치부에 처음 갔을 때가 2015년 11월이었는데 총선이 있었던 2017년 4월까지 명절 빼고 주5일 근무한 건 딱 한주였다. 오전 7시 15분에 출근해서 늦으면 11시까지 일했다. 근데 일간지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방송은 아예 특례 업종으로 지정됐고, 통신사처럼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 회사는 업무 시간이 더 길다. 쉬는 날 집에서라도 언제든 노트북을 펼치고 기사를 써야 한다.

그럼에도 주 52시간 근무에 관해 아직 내부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언론사가 부지기수다. 서로들 타사가 어떻게 하는지 눈치만 보고 있다. 답은 나와 있다. 사람을 더 뽑으면 된다.

하지만 언론사 살림살이는 점점 더 안 좋아져서 뽑던 수습도 안 뽑는 판이다. 각종 편법이 난무할 것 같다. 서류 상으로는 쉬고 있는데 실제로는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왜냐면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동절, 연월차와 마찬가지다. 쉴 때 쉬지 않는 걸 당연시하고 어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 위에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기자질 할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쉬는날 일한 대가로 주머니에 꽂히는 돈도 다르고, 보람도 다르다. 어찌 보면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할 조직이 언론사인데 항상 가장 늦게 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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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 아직 스팀이 10만원이 안 됐어!

ㅎㅎㅎㅎㅎㅎㅎ 스팀아 얼른 10만원 가즈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만원 되는 그날이 빨리오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댓글 보다가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ㅠㅠ

ㅋㅋㅋㅋㅋㅋㅋ 두분다 화이팅!

갑시다 가즈아!

쉬는 게 디폴트인데 쉬면 좋은 회사 다닌다고 축하받는 더러운 세상....

법정공휴일을 온전히 지킬수만 있어도 행복한 직장이네요 ㅠㅠ

👍🏻👍🏻👍🏻👍🏻

사람 부족하면 일을 줄이든지 사람을 더 뽑든지 해야할텐데 그냥 일을 떠넘겨버리니까요 ㅠㅠ

언론사가 '기사'로 멋지게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언론사간의 차별점도 점점 없어져가고...

예전엔 그래도 신문을 돈내고 구독이라도 했는데
요즘은 기사를 돈주고 본다는 생각은 더 안하는거 같아요...
슬픈 현실입니다. ㅠㅠ

소식은 가장 빨리 전하는 언론사가 변하는 건 가장 느리다니.. 조금 역설적으로 느껴집니다..

법으로 보장된 날도 쉬기 힘든게 현실이네요! 다행히 저는 쉬었답니다^^

저같아도 근무시간 같은거 안따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랫목만 따끈하죠..ㅎㅎ

너무 좋은 포스팅이네요 팔로우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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