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인 척]정치부 탈출기+산업부 일주일 체험기
오랜만의 대문입니다. by @leesol
죽도록 정치부에서 나오고 싶었다.
2년여 동안 대한민국 헌정사를 축약해서 겪은 것 같았다. 들어가자마자 4달 만에 총선이 있었고, 몇달 뒤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되고 헌정사상 최초의 조기대선을 치렀다. 청와대도 잠깐 출입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도 잠시 출입했다. 대선이 끝난 뒤 호기롭게 '여당팀으로 보내주면 정치부에 남겠다'고 했는데, 이미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다. 설상가상 어디서 웬 정신 이상한 사람까지 들어와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진심으로 탈출하고 싶었다. 편집부로 입사한 뒤 사회부, 국제부, 사회부, 정치부. 무겁고 딱딱한 곳만 출입했다. 이제 다른 곳도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주 인사발령이 났다.
인사 방이 붙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떠나는 발걸음은 단출했다. 정을 붙이고 지낸 사람들 전부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래 출입했던 정당 인사들은 정을 붙이기 힘들었고, 마지막에 출입했던 곳 사람들과는 정을 붙일 시간이 적었다. 2년을 넘게 살았던 국회 부스엔 챙길 짐도 없었다. 회사에 들어가 국회 출입증을 던져주고 꾸벅 인사한 뒤 부리나케 새 부서로 갔다.
산업부. 그 젖과 꿀이 흐른다는 곳. '유통을 담당하는 기자의 집엔 명절마다 택배사 트럭이 한대씩 배정된다'는 등의 수많은 전설이 있는 곳. 그 곳에 왔다.
물론 기업을 출입하며 떨어질 콩고물따위를 기대한 건 아니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마저도 김영란법 시행 뒤 거의 사라졌다고들 하는데 확인한 바는 없다.
뭘 쓰던 정색을 하고 써야했던 업계 용어로 '스트레이트 부서'를 한 번만이라도 벗어나, 조금 많아진 시간과 조금 자유로운 동선을 누리고 싶었는데 얼추 바라던 바대로 된 것이 우선 기뻤다.
부서에서 원래는 날 자동차, 중공업 담당으로 정해두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몹시 좋아하지만, 아내와 같은 출입처에 나갈 순 없었다. 말이 많은 동네라 내가 잘하면 "아내 물먹이는 놈"이 되고, 내가 못하면 "아내한테도 물먹고 다니는 놈"이 된다. 둘이 같이 잘하면 "부부끼리 '단꼬(풀이)'쳤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아내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사가 나자마자 새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민원'을 했다.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을 잘 하는 남자 후배를 기다리던 자동차 1진은 많이 속상해 했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모처럼 마음이 편한 부서에 왔는데 불편한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자, IT 등을 맡게 됐다. 삼성과 LG 그룹사,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 전자관련 기업, KT, SKT, LG유플러스의 통신3사, 카카오,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기업, 게임, 카메라 등 엄청난 나와바리를 둘이서 맡는다. 모 기업 관계자가 내 전임자에게 "기자님은 지금 전자신문 기자 100명과 경쟁하시는 겁니다"라고 했단다.
우선 겉으로나마 전화를 호의적으로 받는 곳이라 마음이 편하다. 출입하게 된 첫날 기업 홍보라인에 전화를 돌리느라 목이 잠길 정도였지만 다들 반가운 척이라도 해 주니 좋았다. 미처 전화를 못 한 관계자는 홍보라인 전체에 공지가 됐는지 먼저 전화를 걸어주기도 했다. 아 말랑말랑하여라. 정치부 출입 첫날 한 정당 국장에게 질문이 있어 전화를 했는데, 본인의 직무가 뻔한데도 퉁명스럽게 모른다기에 사회부 시절 이빨을 드러냈다가 선배한테 혼났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확실히 처음 해 보는 분야라 용어 대부분이 낯설고 기사를 쉽게 쓰기가 어렵다. 보도자료를 보고 쓰는 기사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아직까지 기획기사 발제를 하기엔 아는 게 너무 없다. 블록체인 기획을 하려면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출입하고 바로 그 주 주말에 전자와 자동차 1진기자들이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에 출장을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혼자서 넓은 나와바리를 챙겨야 하는데 마침 LG전자와 삼성전자가 하루 차이로 4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어버버 잘 모르는채로 어찌어찌 기사를 막았다.
여기 있는 동안 건강검진 때마다 나오던 알콜성 성인병과 스트레스를 좀 덜어 내고, 여유가 있을 때 책도 좀 읽으려 한다. 나이 든 기자들은 매일 모든 신문을 정독하는 걸 대단하게 여기고, 남의 기사를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책 많이 읽는 기자가 기사를 잘 쓴다. 똑같이 무식한 기자가 쓴 걸 백날 읽어서 뭐하나. 물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일 조석간을 확인하는 건 직업적으로 당연한 거다. 출입하는 분야 전문지를 읽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어야 잘 쓴다. 그걸 알면서도 실천 안하는 나 같은 기자는 암것도 모르고 기사 썼다가 기레기 되기 십상이다.
a change of air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보팅주사위 당첨도 축하드립니다.
https://steemkr.com/kr-overseas/@floridasnail/2018-1-8
tip! 1.14
오옷 그런 거구만요. ㅋㅋㅋ 고맙습니다.
축하드려요 시호님 ^^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어 낼 수 있으셔서 다행입니다 :)
고맙습니다! 쌍따봉야야님!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으로 가심을 축하드립니다.^___________________^
시호님도 이제 1:100 시작이군요^^ 무리없이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알콜 안녕~ 스트레스 안녕~ 하시길...
일주일이 되도록 젖과 꿀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ㅋㅋㅋ 고맙습니닷.
와 IT라니 축하드립니다 ㅎㅎ 암호화폐 관련한 기사도 이제 쓰시는건가요?
써야죠. ㅋㅋㅋ 지금 IT 지식이 도화지 상태라 블록체인이 그나마 만만한 아이템이긴 해요.
많은 일들을 격으며 달려오셨군요
그럴수록 건강은 꼭 챙기시길~~~!!!
넵 고맙습니다. 건강 챙겨야죠. ㅋㅋ
안녕하세요 시호님, 정치부 탈출을 축하드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이제 새로운 분야에서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시네요 잘 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ㅎㅎ 여유있는시간이 좀 많이 있으셨음 좋겠네요^^ 화이팅 입니다~~
성민님 늘 고맙습니닷
아이고 별말씀을요 ㅎㅎ 화이팅 입니다~~ ^____^
'기사를 잘 쓰는 기자는 책을 많이 읽는 기자다'라는 말씀에 100프로 동감합니다.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ㅎㅎ
네 올해는 책 좀 읽겠습니다 ㅋㅋㅋ
저는 방송 언론분야에서 일을 해본 사람이 아니라서 , 그 쪽 세계가 어떻는지는 모르지만요, 아마도 한국 땅에서는 정치부기자 생활이 제일 빡세고 피곤한 정도가 심할거에요.
음 양목님 그래도 정치부 기자들 잘 먹고 다닙니다. ㅋㅋ 배고픈 사회부 경찰팀 후배들이 젤 힘든 것 같아요.
산업부와 스팀잇은 묘하게 잘어울리는 듯합니다. 책도읽고 의견도 논하고.. 정제되고 차별화된 기사 화이팅입니다! ^^
넵 지금은 경제지나 전문지 따라가기도 벅차지만 열심히 잘 해보겠습니다.
축하드려요!! 시호님!! ^^ 정치는 잘 모르는 저지만 계셨던 2년간 얼마나 힘드셨을지 상상이 갑니다. 100명과의 경쟁이긴 하지만 마음만은 편한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직까지는 마음이 참 편안하네요. ㅋㅋ 이제 로사리아님 레시피 하나씩 들춰보면서 아내한테 맛난 것도 좀 해줘 보고 그러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