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앞으로 삶의 바퀴를, 마즈누 까 띨라

in #kr6 years ago (edited)

이 동네에는 종일 볕이 들지 않았다. 대신 흐름을 멈춘 시간이 고여있는 듯 했다. 제멋대로 들어선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빈틈없이 여백을 채웠다. 둘셋이 겨우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마다 혈관에 흐르는 피처럼 시커먼 건물 그림자가 흘렀다. 골목을 헤매고 있으면 늘 숨이 찼다. 억지로 숨을 참고 걷는 탓이었다. 야무나강의 썩은 물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냄새, 온갖 탈 것들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의 냄새와 쓰레기 태우는 냄새, 거리의 동물들이 싸지른 똥오줌 냄새, 집집마다 피워대는 매캐한 향 냄새, 누릿한 버터 냄새, 퀴퀴한 치즈 냄새, 그 모든 냄새들이 뒤섞여 자꾸 나를 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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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집요하게 쫓는 것은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이 동네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유난히도 끈질겼다. 골목의 끝에서 끝까지 집요하게 내 소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이쯤 되면 몇 푼 쥐어주면 될 일이지 뭘 그리 야박하게 구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나름의 이유를 대고 싶지만 이야기가 결코 짧지 않으니 접어두고. 아무튼 이들이 이렇게나 집요한 이유는 티베트 사람들이 돈을 곧잘 쥐어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달라이 라마가 늘 이야기하는 'compassion'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뻔하다. 흔히 소비되는 티베트와 티베트 사람들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나는 좀 꼬인 사람인 걸까?

티베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동네 길 건너편에는 제법 큰 규모의 시장이 있는데, 두 동네를 잇는 육교 위에 동네 걸인들이 모여 살았다. 이 육교가 생기기 전에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들었다. 델리의 미친 운전자들을 떠올리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육교를 건너려면 양 옆으로 줄지어 늘어서 앉은 걸인들을 지나쳐야 했다. 어느 날엔 그 육교 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한 남자의 곁을 지나 걸었다. 육교 위의 사람들은 늘 누워 지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그 곁을 지나쳤을 것이다. 죽은 몸뚱이를 덮고 있던 더러운 천 쪼가리와 누가 피워둔 것인지 알 수 없는 향, 천 쪼가리 바깥으로 삐져나온 죽은 이의 더러운 발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시신을 수습하려는 것인지 두어 명의 경찰이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나는 도무지 그 장면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째서 이 남자는 아직까지도 이 자리에 죽은 채로 누워있는 것인지, 어째서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이 자리에 향까지 피워놓고 있는 것인지.

대부분의 인도 가이드북에 ‘티벳탄 꼴로니’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곳의 진짜 이름은 마즈누 까 띨라 majnu ka tilla. 티베트 사람들은 줄여서 엠티 MT라고 불렀다. 델리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고, 곁으로는 야무나강이 흘렀다. 언제부터 이곳에 티베트 난민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별 거 없는 이 작은 동네가 이제는 제법 유명해진 모양인지 근처 델리 대학교 학생들이며, 외국인 여행자들이며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꽤나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근사한 카페도 있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델리 하늘이지만 탁 트인 루프탑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도 있다. 이 작은 동네에 한국 식당이 두 개나 되고, 신라면은 물론 불닭볶음면도 곳곳에서 판다. 앞으로 앞으로 삶의 바퀴를 밀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복작이며 산다.


떠나기 전에 꼭 스팀잇에 다짐 비슷한 것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못하고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하다 보니 어느덧 이곳에 와있어요. 허둥지둥하는 와중에 일곱 개의 글로 모은 얼마 되지 않는 스팀 달러로 파워업도 했는데 엄청 짜릿하더라고요! 또 다른 시작을 다짐했답니다. 스팀잇이 제 안에 무언가를 심어준 것만은 분명해요. 그것이 돈 욕심이든, 창작 욕심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죠. 자고 일어나면 밀린 피드부터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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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상상하던 티베트와 완전 상이한데요?
제가 그곳에 있는 것 마냥 글을 너무 잘 쓰세요

감사합니다. :-) 우리가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아온 티베트와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특히 난민들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고요. 제시카님의 흥미진진한 남미 이야기 읽어보러 들를게요!

그러게요~ 저도 브라질에 와보니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점들도 많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어요~
감사해요

반갑습니다 가입한지 2일된 뉴비입니다^^
팔로우,보팅 하고가요 시간되시면 맞팔부탁드립니다 자주뵈요^ㅡ^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팔로우와 보팅 감사드려요! :-)

티베트 사람들은 티베트에서 만나야 좋을 것 같군요. 난민 생활은 그들이 고향에서 지켜온 방식을 지켜내기에는 많이 버겁지요...

네, 맞아요. 티베트 안에 사는 사람들과 티베트 밖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날 여지도 없지만,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건너온 사람들과 인도에서 태어난 망명 2세, 3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모습이 반세기를 훌쩍 넘은 티베트 망명 사회의 지금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잘 도착하셨군요 :-) @roundyround 님 글의 팬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이많이 써주셔요!

꺅! 팬이 되어주신다니 감동이에요. 흙흙. 스프링필드님 일기 읽고 킥킥 했어요. 비행기에서 제 앞에 탄 부부가 마시지도 않는 와인을 계속 갖다 달라고 하면서 열 병도 넘게 쟁이는 모습을 보고 진짜 얼굴이 화끈거렸거든요... 아무튼 스프링필드님 응원에 힘이 났어요! 많이많이 쓸게요! :-)

죽음이 일상 곁에 가까이 있네요. 그들은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맞아요. 한 친구는 죽은 형이 여자 아이로 환생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기뻐서 잔치를 열더라고요. 죽음이나 죽음 이후 세계를 삶 곁에서 찾아요.

@roundyround님 글잘봤습니다. 라운디님의 글을 보고 있으면 저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정말 재미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장면 장면이 스케치 되는 느낌이랄까. 저도 전에 티베트에 가보고 싶었으나 결국 상상으로만 끝났었죠. 앞으로 라운디님 글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네요.
여기 팬1 추가요.

안녕하세요. 반가운 가이아님! 저는 티베트 자유여행이 가능하던 시절 막차를 타고 티베트를 여행했어요. 가이아님의 티베트 상상 여행을 돕기 위해 전에 써둔 티베트 여행기도 올려봐야겠습니다! 팬이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

짱짱맨은 스티밋이 좋아요^^ 즐거운 스티밋 행복한하루 보내세요!

짱짱맨 덕분에 스팀잇이 더 좋습니당. :-)

티벳에 다시 가셨나 보군요. 저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티벳 불교대해 관심이 아주 많지요. 특히 티벳의학은 꼭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지요. 이생이 아니면 혹시 다음생에라도?

지금은 인도에 다람살라라는 곳에 있습니다. :-) 티베트 망명정부와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인들이 자리 잡은 곳이에요. 티베트 의학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이곳 친구들이 티베트 전통 의학과 점성술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입을 떡 벌리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듣게 됩니다. 정말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꼭 한번 그와 관련한 글을 써보려고요!

혹시 티벳 사부의전(四部醫典) 1)영문역과 2) 한역(중문역)이 되어진 정보가 있는지 알아봐주실수 있는가요? 서적이름과 출판사 (ISBN) 정도만이라도 알려주시면 제가 구매를 해보려구요. 인터넷에서 찾다가 개론서정도만 찾았거든요. 티벳어는 도전하기에는 아직 여력이 부족하고요.
ps. 달라이라마님은 저에게 있어서는 영적스승님이시지요. 종교를 떠나서 그분의 글을 읽다보면 정말 마음이 정화된 느낌이지요.

번역본이든, 관련 서적이든 틀림없이 피터님께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을 거예요! 제가 둘러보고 정보를 얻는 대로 댓글로 연락드릴게요. :-)

저는 2016년에 이곳에서 그분을 만나 악수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행운을 누렸어요! 만나면 꼭 뭐라도 질문해야지 다짐 다짐하고 갔는데 막상 눈앞에 그분이 나타나니까 눈물만 그렁그렁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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