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탐하다] #02 숙제하러 여행왔니? - 오쇼 라즈니쉬의 <틈>과 인도 여행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어두면 유익한 책으론 어떤 게 있을까요? 사람들은 여행지 정보가 속속들이 담겨 있거나 현지에서 찍은 생생한 사진으로 워밍업을 시켜주는 여행에세이를 먼저 꼽겠지만 만약 같은 질문을 내게 한다면, 오쇼 라즈니쉬의 <틈>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 당신의 여행지는 인도가 아니라고요? 그렇다 해도 <틈>을 추천하겠습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꼼꼼한 ‘정보’나 빈틈없는 ‘일정’이 아니라, 여행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교통수단, 숙박업소, 볼거리, 식당 등등’ 모든 것을 미리 정해 놓아야 안정이 되는 이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럴 때면 난 그들이 ‘숙제’를 하러 가는 것인지 ‘여행’을 하러 가는 것인지 어리둥절해지곤 합니다. 늘 정해진 대로 굴러가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 여행, 즉 낯선 길 위로 떠난 게 아니었단 말인가, 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대신, 텅 빈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존재를 위해 어떤 것도 기여하지 않는다. 이 땅에 와서 무료하게 있다가 죽는 게 그들이 하는 전부이다." - 오쇼 라즈니시의 <틈> 중에서
짧은 여행에서 돌아와 쉬던 주말, 도서관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를 한가롭게 어슬렁 거리다가 영원으로 통하는 '틈'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그런 활자가 박혀 있는 책을 발견했지요. <틈 - 오쇼 라즈니쉬 지음>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타이틀이 <틈>이 아니었다면 책의 '틈'을 벌리고 '안'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영화가 있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서 보지 않아도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영화. 말하자면 내게 오쇼 라즈니는 ‘너무 회자되어 식상해진 영화’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근데 앞뒤 수식어나 서술어도 없이 책 제목이 <틈>이라니!
'어디 한 번 열어볼까?'
제1장 인생의 틈
제2장 변화의 틈
제3장 사랑의 틈
제4장 존재의 틈
'호오, 이거 정말 멋진 책인 걸!' 그렇다고 해서 내가 <틈>을 읽고 인도에 갔던 건 아닙니다.
네팔여행을 하던 중 부처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는 룸비니(Lumbini)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스페인, 중국, 일본에서 온 여러 나라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은 인도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지요. 나는 파키스탄과 네팔을 여행한 경험으로 인도도 그들 두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도 인도를 여행하고 온 친구를 만나면 그곳은 어땠느냐고 묻곤 했지요.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은 감탄사.
“인크레더블!”
그러나 “인크레더블!”이라고 감탄하면서 '왜 인크레더블한지?' 묻는 내 질문엔 이렇다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결국 나는 '인크레더블의 실체를 확인해보자'는 심보로 네팔 수도 카투만두로 돌아가 인도 비자를 받고 다시 남쪽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네팔인도간 국경에 도착. 아치형 간판에 쓰여 있는 커다란 글씨 - 인크레더블 인디아.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 같은 국가 슬로건. 시시하게 고작 이런 이유로 '인크레더블!'을 그렇게 외쳐댔다니! 그랬는데 갠지즈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에서 지내는 사이 내 입에서도 “인크레더블!”이란 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골 때리는!
바라나시에서 내 룸메이트의 이름은 ‘홈 워크’였습니다. 물론 실제 이름이 ‘홈 워크 Homework’는 아니었지만 보다 더 적절한 닉네임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그는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 누워 지냈습니다. 바라나시 소재 유명 맛집과 숙소 정보를 비교 분석하느라고. 그가 CF 대사마냥 여행안내서를 ‘분석하고, 분석하고, 또 분석’하는 동안 나는 여행안내서도 없이 무작정 갠지스 강변과 거리를 떠돌았습니다.
갠지스 강 건너편에서 모래바람이 일기 시작하더니 모래평원을 뒤덮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고, 화장터 죽은 자의 피부가 불길 속에서 마치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터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소똥을 맨손바닥으로 스윽 비닐봉지에 퍼 담는 노파를 만나기도 했고, 갠지스 강물을 끓여 내놓은 찌아(인도 홍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해 질 무렵 숙소로 돌아가면 각종 여행가이드북을 분석한 홈 워크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곳’이 있다며. 홈워크는 식당에서 만난 고국의 여행자들과 얘기를 나눌 때 가장 활기가 넘쳤습니다. 대화의 패턴은 매번 똑 같았지요.
“너 캘거타에서 M레스토랑에 가봤니?”
“응, 그 레스토랑 탄두리 치킨이 정말 맛있지”
“그럼 너 뭄바이에서 R호텔에 가봤니?”
“아, 나도 거기서 며칠 묵었어!”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란 여행안내서에 소개된 숙소, 식당, 볼거리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맞장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이 오면 그는 전날처럼 침대에 누운채 여행안내서를 ‘분석하고, 분석하고, 또 분석’했습니다. 나로선 뭐라 할 입장도 아니니, 그저 분석하는 홈워크를 두고 숙소를 나설 뿐.
어쩌다 나는 홈워크와 보드가야까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 그는 ‘이 부근은 도적떼가 출몰한다고 하니 도중에 내려서 사진 같은 걸 찍으면 안된다고 론리플래닛에 씌어 있다’'이 마을 식당은 불결하니 음식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는 등 뭇 여행안내서를 인용해 내 부주의한(?) 행동을 만류하곤 했지요. 보드가야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예의 그 분석(?)에 돌입했고, 그렇게 사흘을 더 보내고 다른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후 홈워크도, 여행안내서도 없이 보드가야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처음 들린 현지 식당에서 인도인 식당 주인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낮부터 좀 마셨지요. 황혼 무렵 식당 주인은 오토바이를 끌고 와선 내게 교외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뒷자리에 올라탔지요. 홈워크가 도둑이 출몰하는 지역이란 곳으로 그는 내달렸습니다. 네란자라 강변의 움막. 움막 안에는 우락부락한 사내 넷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식당 주인이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이에게 나를 소개했습니다. “이분은 나의 구루(스승)야.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을 가르쳐 주는 건 아니지만. 하하하” 머리칼이 하얗게 센 백발의 구루는 나를 한번 껴안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녀석이 식당 손님을 데리고 온 건 처음이군. 물론 데려오려고 한 이들은 많았지. 그러나 다들 두려워서 따라오지 않지. 자넨 좀 특이한 친구로군”
홈워크와 같이 보낸 여행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모험과 예기치 않은 만남과 느닷없는 웃음이 만발한 축복의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내일 할 일은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신 오직 ‘알 수 없음’의 자유만이 가득했지요. 모든 것이 불안정했지만 불안정을 삶의 실체로 받아들이자 모든 것이 편안했습니다. 마치 <틈>의 문장들처럼.
"안정을 지나치게 갈구함으로써 그대는 어려움에 처한다. 안정을 추구할수록 그대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불안정이 삶의 근본 이치인 까닭이다. 그대가 안정을 추구하지 않을 때 비로소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삶이 안정적인 순간은 오로지 그대가 죽을 때뿐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확실해진다...그대가 삶의 불안정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기뻐할 때 성숙이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 - 오쇼 라즈니쉬의 <틈> 중에서
오쇼라즈니쉬의 인도 명상센터를 10년전쯤 다녀 왔었습니다.
스팀잇에서 오쇼 에 관한 내용이 나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다양한 컨텐츠가 스팀에서 오갈수록 건강한 생태계를 이룰 수 있을 듯해서...비록 대중성 희박한 내용이겠지만, 한걸음...한걸음...
리스팀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시길!
풍경이 너무 아름답네요!ㅋㅋ 리스팀해갈께요!
감사합니다. 전세계 많은 곳은 돌아다녔지만 다시 가고 싶은 곳 1순위는 늘, 인도!
노을진 풍경 넘 멋집니다
인도여행 부럽습니다
북부 일부만 다녔는데 다음번엔 남쪽 끝까지 내려갈 작정입니다. ^ ^
글 그림 다 인상 적이네요. 팔로우 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소개글이 무척 강렬하네요. 맞팔합니다. ^^
좀처럼 볼 수 없던 인도 여행기를 보니 반갑군요
석양사진도 멋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tizianotiziana님 지구를 떠돌며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