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업데이트
아무래도 블로그가 최근 본격 비즈니스(?) 블로그가 된 것 같아서, 오늘은 오랜만에 일기를 적어볼까 한다. 애초에 이 블로그가 추구하는 본연의 색깔은 비즈니스와 거리가 멀다. (아니면 이 참에 아싸리 HBR의 케이스 분석 같은 걸 하는 방법도 있겠으나...아.. 아니다 참도록 하자.)
가끔씩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였던 이들이 있다. 한창 자주 만나고 놀고 이야기 나눌 때에는 친구였다가도, 각자의 삶의 궤적으로 인해 갈라지고 나면, 아무리 뜸하게 만나더라도 같이 있었던 세계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마련인 것 같다. 우리는 일상이 누적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일상이 다른 방향으로 누적된 친구들을 만나면 방향의 다름을 갑자기 깨닫게 되기도 한다. 어느샌가 틈이 생겨버린 관계를 마주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 거리에서 친구(였던 이) 1을 만났다. 친구'였던' 이라는 말을 쓴다고 사이가 틀어졌거나 서로 싫어하게 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하도록 하자.
"아.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항상 첫 인사는 이런 방식으로 시작한다. 사실 잘 지냈으면 굳이 의미없는 인사이기도 하고, 잘지내지 못했으면, 오랜만에 보는 서로에게 이러한 것을 터놓을리가 없다. 그러니 이러한 인사는 다분히 형식적인 것이다.
"응. 그냥 그럭저럭. 그러는 너는?"
역시 의례적인 반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사는 정말로 추임새 같은 것이다. 길게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길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잘 이해받기 어려울 때,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그럭저럭'은 정말로 만병통치약일 것이다. 뒤에 '그러는 너는?'이라는 질문을 붙여줌으로써,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어보이고 싶다는 표현을 드러낸다.
그러면 아마 똑같이 '나도 그럭저럭' 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관심있어할 만한 주제 + 내가 상대방으로 부터 듣고 싶은 주제에 대한 활동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통의 관심사가 될법한 주제에 대해 약간의 의견을 교환하거나, 피상적인 질문과 답이 오고가다가 이내 헤어질 것이다. "언제 시간되면 한번 보자"라는 아주 상투적인 인사와 함께. 하지만 대체로 시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고정적이지 않기에,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에 비추어 이야기를 꺼내곤 하지만, 사실 과거의 그 사람이 현재의 그 사람일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대하기도 애매한지라, 결국 의미 없는 인삿말과 정보의 수집을 통해, 상대방의 근황에 대해 약간의 업데이트를 하는 정도로 그치게된다. 나는 사실 이러한 대화가 오고가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편해하는데, 일종의 비즈니스적인 대화가 과거 관계의 색깔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결국 친구로서 존재했던 이가 이제는 정말로 존재'했던'이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삶은 조금씩 그 방향을 명확히 하도록 걸어가고 있고, 그 방향과 흐름에 같이 몸을 싣게 되는 사람들이 아니면, 결국 서로 저 멀리 가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그들을 붙잡을 수 없고, 그들도 나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기억 속에 놓아두는지도 모른다. 그 것이 스스로에 대해, 상대방에 대해 위하고 아끼는 방식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피천득 선생님의 유명한 수필, 인연(因緣)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온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사실 많이 회자되는 것은 첫번째 문장이지만, 나는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라는 문장에 항상 눈길이 간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관계는, 마주했던 시간 안에서만 유효하다. 마주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결국 서로의 삶을 예측할 수 없다. 빈틈과 공백의 나날들이 채운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우리 기억 속에 관계를, 삶을 그때로 박제한 채 오롯이 놓아두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꺼내볼 시점이 되었을 때, 이제 추억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상대방의 삶에 대한 업데이트를 추구하기 보다는,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채 추억을 정성스럽게 닦아놓고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좀 더 속편한 길이기도 할 것이기에. 그래서 나는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종종 마음이 아리다. 내가 간직했던 그 관계들의 빛깔은 이제 색이 바랜 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인연에서 저도 그 문장이 더 와닿습니다. 시간은 결국 그런 틈새를 만들어버리죠. 사는 게 바빠서 빛이 바래져가는 기억들이 많습니다. 아쉽죠..
조금씩 나이가 들수록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 다른 이들이 바라보는 저 또한 어쩌면 예전의 제 모습을 간직하고 싶을수도 있겠지요. 그러고보면 삶을 걸어나갈수록, 조금씩 놓는 연습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결국 자란다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그러게요. 놓을 수있다는 것이 좋은 건지? 간직하는 게 좋은건지? 하는 의문은 30대말에 어느 정도 정리되더군요. 우리의 마음 속 여유는 과연 언제일까요?
그렇다면 저에게 30대말은 무척이나 두려운 나이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유는 일상에 잠재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여유'를 가지려 '노력'한다는 무언가 모순적인 표현을 적어봅니다. 잘 되지는 않지만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표현이 좀 강하다는 생각을 늘 했는데 본문에 쓰신
이 표현이 참 적절하단 생각이 듭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현재가 아닌 과거에 매인 채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적된 일상의 힘은 참으로 센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이와 나의 관계가 더이상 예전 그 시절의 관계가 아님을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아린 일이겠지만..그게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면서 어른이 되어가는게 아닐까 싶네요. 업데이트가 아리다고 해서 억지로 만남을 피한다고 예전의 그 관계가 그대로 남아있는건 아닐테니까요.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과 그만큼 흘러간 관계를 그저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요 업데이트란...
변한 관계를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서로에게 잠깐이나마 진심을 담은 응원을 보낼 수 있다면, 변해가는 것조차도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너무 좋은 글.. 함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홍보해
그래서 가끔 (점점) 어른이 되기 싫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궁극적인 어른의 형태는 결국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초월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기도 합니다.
좋은 통찰을 주셨습니다. 진심을 담은 응원을 보내는 것 - 얼핏 작아보이지만 최대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네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보자면 몇 년만에 연락하여 '보험'이나 '카드'를 권유하는 친구일 수도 있겠네요.
추억은 현재가 적게 반영될 수록 좋은 것 같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현재의 관계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가장 잘 파악한 친구들일수도 있겠습니다. 그 친구들도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공과 사는 가급적 구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제 성향을 알고 있는 '친구'라면 가급적 제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서도 이해한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친구 딱지가 붙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과거의 친구와 현재의 지인이 항상 같지만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려고 노력합니다. 역시 머리로는 아는데 , 마음으로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감가는 문구네요.
관계는 마주했던 시간 안에서만 유효하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과 막상 오랜만에 만나면
역시 좋았던 추억마저 바래질 듯한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에 있곤 했죠.
늘 qrwerq님의 글은 깊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래서 좋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을 정말로 오랜만에 만날 때엔, 그만큼의 높은 기대를 가지지는 않으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실망할까봐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설렘과 기대는 존재하고 그 것이 맞기를 바랄뿐입니다.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 같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바라보는 과거의 나도 분명히 상대방의 시선에 존재할테니까요-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 아닌가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혹시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인지 미혹에 빠지만....우리들은 각자의 길을 가는 것 아닐까요?
유명한 '무소의 뿔처럼 가라' 라는 법구경 장이 우리들의 삶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당연함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가 마음이 약한것이겠지요. '각자'라는 말의 의미가 마음으로 와닿게 되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맞팔하며 소통하고 지내요^^
네. 감사합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 자주보다보니 그런 틈이 없는데, 사회에 나가면서 조금 다른 선택과 방향으로 흘러가다보니 어느새 많이 달라져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대화의 주제가 한정되고.. 친한 친구들을 만날때조차도 가끔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다른 방향이라도 꾸준히 가다보면, 결국 어느샌가 멀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공통의 관심사, 공통의 주제라는 것이 어쩌면 허상이거나 피상적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한번 볼 때에, 많이 기억해두려 노력합니다. 제가 아는 모습을 많이 기억해두어 빨리 사라지지는 않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