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불친절한 프리뷰: 영화 - 미스 슬로운

in #kr7 years ago (edited)

그림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C%8A%A4_%EC%8A%AC%EB%A1%9C%EC%9A%B4


매우 불친절한 프리뷰를 해볼까 한다.

사실 나는 리뷰나 평론과 같은 작업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이다. 우리가 어떠한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실이나 숨겨진 관계를 명징하게 드러내줄 수 있으며, 해석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해당 작품에 대한 세계를 구체적으로 빚어내거나 외연의 확장을 꾀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프리뷰라 이름을 붙인 이유는, 내가 적는 글을 읽게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을지 아니면 보지 않았을지, 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볼 계획인지 알 수가 없으며, 내 해석이 영화의 감상에 방해가 되거나 고정 관념으로 작동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몇 가지의 감상 포인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리뷰라기보단 프리뷰에 가깝다. 내가 프리뷰를 할 때에는, 줄거리에 대한 소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차피 찾아보면 나오니까.)


영화 미스 슬로운(Miss Sloane, 2016)에 대한 생각의 시작점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

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도 인간성 (Menschheit)을 단지 수단으로서만 사용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하라.

칸트의 정언명령 중 하나.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적으로 수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수단을 배제하고 목적으로만 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목적으로만 대해달라는 것은 다분히 이상적인 주문일지도 모른다.

성별의 뒤집기

젠더 이론을 굳이 영화 프리뷰에서 자세하게 논하고 싶진 않고, 우리가 스스로 체화하고 있는 사회적 (권력이 작동하는) 가치와 방식이 어떻게 전복되고 있는지, 우리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개인 간의 권력 구조에 얼마나 길들여져 왔는지 주인공을 통해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예측의 불편함

누구나 앞날을 예측하는 것에 대해 신기해하고 궁금해하지만, 그 예측이 너무도 정확하게 들어맞아 심지어 누군가에게 읽히는 느낌이 든다면, 사실 대부분은 그에 대해 좋아하기보다는 끔찍하게 여길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예측(예언)에 대해 양면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정확히 들어맞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들어맞지 않아 자신의 자유가 온전히 보전되기를 꿈꾼다. (좋은 운수가 나왔을 때, 그게 잘 맞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나쁜 운수가 나왔을 때, 이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신념의 근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에 대해 쓸데없이 포장하고 이유를 붙이고 있지는 않은가? 극적인 경험이 항상 신념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qrwerq 의 평점: 4/5
한줄평: 가볍게 보아도 괜찮을 시원한 영화, 그런데 알고보면 볼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영화


앞으로 영화 관련해서 무언가 작성한다면, 당분간 이런 식의 불친절한 프리뷰일 듯 싶다. 물론 여기 얼기설기 세워진 몇 개의 철골을 따라 집을 지을지, 무너뜨리고 새로운 건축을 할 지는 역시 읽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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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보면 된다고 하시면서 글은 너무 심오합니다ㅜ 제시카차스테인을 좋아해서 꼭 보고싶은 영화예요. 저는 곧 이 여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배우인 것 같습니다. 정말로 가볍게 보셔도 괜찮은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시카 차스테인이 나온 영화 중에 제일 좋았습니다. 듀나의 평을
빌리자면 생일선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요. (물론 듀나는 사실 논란이 있는 인물이고, 여기서 언급하는 것이 맞나 싶긴 한데, 이 영화에 대한 평 자체는 읽을만 하니 링크해둡니다.) 먼저 영화를 한번 보시고 나서 혹시나 묘한 느낌이 드신다면, 그 때 이 글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은 영화를 보시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불친절한 글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 글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영화를 보시고 나서 이 글을 다시 보신다면 조금 다르게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

앗, 이거 저도 리뷰하려고 생각만 했었던 영화예요! (아직 시작도 못했지만 ㅎㅎ) 제가 정말정말 아주아주 좋아하는 배우예요, 제시카 차스테인! 너무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저한테는 미스슬로운하고 덩케르크가 작년 제가 본 영화 중 베스트예요 :)

찾아보니 생각보다 이 영화(미스슬로운)에 대한 리뷰가 많지 않아서, 한번 적어볼까 하다가, 우선은 제가 영화를 보면서 바라보았던 관점 (이라고 하기엔 골격만 있긴 하지만요)을 적어보았습니다. 저에게는 지면에 인물의 관계도나 행위, 사건의 전개를 담아내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거든요. (이런 방식으로, 결국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고, 글로써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느낌에 해당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연기 정말로 잘하더군요. 그리고 내적으로 뭔가 마력 같은 매력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그런 배우인듯 합니다. 다보고 나니 시간이 후딱 가있었습니다.

저에게도 덩케르크는 매우 좋은 영화였습니다. 사실 덩케르크는 관점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기에, 정리하기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만, 시간에 빽빽하게 들어찬 여백(餘白)을 읽곤 합니다.

저에게 덩케르크는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였어요. '이런게 천재성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진행방식을 뒤엎었죠.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진짜 기막힐정도로 신기하고 잘 짜여진 구성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 어떤 친구는 오리지널 덩케르크 영화가 더 명작이라고 하던데... 언제 한번 그것도 봐야겠어요 ㅎㅎ

그와 반대로 제가 본 미스슬로운은 배우의 열연과 연출, 스토리의 합이 잘 맞물려돌아간 영화라는 느낌이예요. 일단 캐릭터 자체가 너무나도 매력적이라서 그 기운에 빨려들어갔구요.

저처럼 영화를 본 실관람자 입장에선... 쓰신 리뷰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겠고, 공감하고, 그게 최선의 리뷰일 것 같아요 :) 신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신념의 가치가 대체 무엇이기에 저렇게 지키려고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

저에게 덩케르크는 영화 그래비티(Gravity)의 전쟁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크린에 여러 조형물을 꽉꽉 눌러담지 않아도, 긴장감이 촘촘히 짜여진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를 일종의 서사라고 생각한다면, 그 것이 완전히 중립적일수는 없겠지만 덩케르크는 여백을 통해 관객을 끌어들이는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관객은 그 영화에서만큼은 여백의 중심에 서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에 비하면 미스슬로운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션임파서블의 로비스트 버전인줄 알았어요. 제시카 차스테인이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은 상상이 잘 가지 않네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신념을 위해 자신도 내던질 만큼 순수하지만 무척 계산적인 동화 말입니다. :)

써주신 표현이 정말 딱 맞네요! 오히려 전쟁영화인 덩케르크보다 미스슬로운이 더욱 휘몰아치고 액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전 과연 제가 슬로운처럼 내 신념을 지키기위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를 영화내내 생각했어요. 결론은.... 난 아직 멀었구나..

음, 오히려 이런 프리뷰가.. 배려가 담긴 친절한 프리뷰가 아닐까요? ㅎㅎ

아직 영화를 보지않아서 생각의 시작점들이 와닿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qrwerq 님의 이 포스팅을 한번 더 본다면 아~! 하고 반응이 오지 않을까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미스슬로운 조만간 보던가 해야겠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아이러니하긴 한데, 여기 글에 적어둔 생각의 시작점들이 와닿지 않아야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와닿아버리면 영화를 볼 때, 그 관점들에 (그에 녹아든 생각에) 지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가급적 프리뷰를 쓸 때, 이러한 시작점이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 일반적인 지점을 서술하고자 노력합니다.

관점과 별개로, 재미있고 시원한 영화입니다. :)

영화를 보고나서 와닿는 것은 관계없지않을까요? ㅎㅎ 이미 배려해주신 덕분에 선입견을 갖고 영화를 보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보고나면 다시 이 포스팅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음.... 지금 다시 보니 산문도 잘 맞으실 것 같네요. 그냥 재미를 운문에서 더 느끼시는 거였구나

전반적으로 제가 적는 글은 운문의 특성을 가지는 산문이라 빈틈이 많습니다. 운문이 더 재미있기는 합니다. (사실은 자판을 많이 치기 귀찮아서라는 모종의 이유가...ㅎㅎ)

음 이거 말고 다른 글에도 댓글 달았는데 거기는 아예 빈틈이 없던데요 ㅋㅋㅋㅋㅋㅋㅋ

사실은 글자(검은색)가 빈틈이고 공백(하얀색)이 글자입니다. (...)

헉... 저 혼자 껍데기만 해석하고 있었나보군요 ㅜㅜ

저는 모든 글은 언제나 그 사람의 껍데기를 반영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껍데기는 아무런 연유 없이 만들어지지는 않을테고요- 그래서 실망(?)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ㅎㅎ

허걱, 다음부터 님 글 읽으러 오기 전엔, 세수부터 하고, 커피한 잔 마시고, 정신집중한 뒤 들어오겠습니다. 사전 경고도 없이, 느닷없는 칸트라니...정말 불친절하시군요. 앞으로 얼마나 더 불친절할 지 꼬나보기 위해 팔로우합니다

앗. 기대하겠습니다ㅎㅎ 제 글을 찬찬히 보시다보면, 여기 글쓴이는 이미 주화입마에 빠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칸트 말고 칸쵸로 시작할 걸 그랬나봐요. 아재 개그라 죄송합니다. (...)

사실 진짜로 영화 프리뷰 글을 칸쵸로 시작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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